나의 아빠는 왜 집을 나갔을까(4)

삭제된 기억

by 눅눅

우습게도 사랑을 바랐던 때가 있었다. 이미 떠나간 사람에게 무얼 그리 바랐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은 그리웠던 것 같기도 했다. 더 이상 아빠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나를 불러주던 애칭도, 종종 흥얼거리던 콧노래도, 더 이상 내겐 전혀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아빠를 사랑했다. 돌아올 리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퍼부었다. 유일한 소식통인 핸드폰을 붙들고 전화를 할까 말까 하루종일 머뭇거리다가, 해가 떨어지면 마음을 고스란히 접어 그대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손에 닿으면 금세 펼쳐질 수 있는 위치에 그대로, 접어둔 것이 빛바래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까이에 놓고 싶었다. 내가 당신에게 가진 유일한 것은 이제 그것뿐이었으니까. 더 이상 내게 남은 건, 당신에 대한 아주 흐릿한 기억뿐이었으니까.


그러니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떠나갔으니 억지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떠나간 만큼 자유롭게 편히 살아가라고, 굳이 내게 얽매여 붙들려있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전하지 못할 사랑을 붙들고 오늘도 여전히 내 마음은 곱게 접혀, 다 닳은 모서리에 눈물을 적시곤 책상 위에. 손이 닿는 가까운 곳에. 그렇게 올려두었다.




***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발을 구르고 화를 냈다.


약을 먹어야 하는 건 나야, 네 아빠는 집을 나간 거야.

너랑 나를 버리고 떠난 거야, 우리는 버려진 거야.


그 얘기를 들으며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없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뇌가 삭제한다더니, 그게 사실이었나보다.


엄마와 나는 퍽 잘 지냈다. 아마도 잘 지냈을 것이다.

엄마는 돈을 벌기 시작했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의 삶은 문득 평온을 되찾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속 한 구석에, 무언가 중요한 조각이 빠진 것만 같았다.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이렇게 덮어두면 되는 걸까.

찜찜했다. 해선 안 될 일을 하는 기분이었다.

아니, 오히려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기분같기도 했다.


점점 머리가 굳어갔다. 슬픔도 기쁨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 즈음에 나는 우울증 약을 먹으면 곧바로 구토를 했다.

제대로 무엇 하나 장기가 멀쩡히 굴러가는 게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내게 의문으로 남은 것들은 많았다.

앞선 글들을 읽어보면서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당시에 내가 적어둔 일들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일까?

나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 온전한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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