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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 Aug 31. 2024

나의 아빠는 왜 집을 나갔을까(3)

119

아빠가 집을 나가기 딱 6개월 전.


방에 들어가 혼자 술을 마시던 아빠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했다. 엄마는 아빠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멍하니 서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아빠가 내 이름 세 글자를 부르며 소리쳤다. 쳐다만 보고 있지 말고 어서 119를 부르라고.


핸드폰을 집었다. 그리곤 패닉에 빠진 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119 번호가 뭐였더라, 말을 꺼내고서 아차 싶었다. 엄마는 난동을 부리는 아빠의 두 팔을 세게 붙잡고 있었다. 119에 전화를 했다. 금방 구급대원이 전화를 받았고, 나는 웅얼댔다. 아빠가 술에 많이 취해서 119를 불러달라고 하는데, 어떡해야 하나요.



"그런 걸로는 신고 안 됩니다."


구급대원은 싸늘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아빠는 말없이 집을 나갔다. 그리곤 일주일만에 돌아왔다. 엄마는 아빠가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차라리 아빠가 여행을 가서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다. 내게 소리를 지르며 119를 부르라는 아빠가 너무 무서웠으니까.


아빠가 다시 돌아온 날, 엄마는 저녁상을 차렸다. 평범한 저녁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밥을 먹었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숨이 막혔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그 상황으로부터 나는 도망치고만 싶었다. 밥을 허겁지겁 먹고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가 무슨 말을 꺼낼지 몰랐고, 아빠가 내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아빠는 말없이 출근을 했다. 엄마는 아빠가 집을 나가서야 한숨을 쉬며 숨을 돌렸다. 나는 말없이 학교에 갔다. 억지로 들어야 했던 연기 교양 수업에서 나는 펑펑 울며 대사를 쏟아냈다. 교수님은 내게 연기를 공부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연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반 년이 흘러갔다. 아빠는 종종 퇴근길마다 사온 케이크 한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걸었다. 오늘 학교는 어땠는지, 뭘 배웠는지.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런 저런 것들을 배웠어요. 대답을 듣는 아빠의 얼굴은 마치 내게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것만 같았다. 이틀 간격으로 케이크 박스가 내 책상에 얹어질 때마다 내 대답은 점점 단촐해졌다. 나중에야 아빠는 내 책상에 말도 없이 케이크를 올려놓고 내 방을 나갔다.


냉장고가 한 두 입 먹은 케이크 상자들로 가득할 즈음에 아빠는 집을 나갔다. 아마 마지막 케이크는 복숭아가 얹어진 과일 케이크였던 것 같다. 그날로부터 며칠 아빠가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 나는 이걸 엄마에게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니면 아빠에게 연락을 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겠거니 했으니까.


엄마와 나는 아빠가 마치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혹은 우리 집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항상 있는 것처럼 지냈다. 그 지옥같은 침묵의 생활은 가을을 넘어 겨울, 봄이 되어 여름이 지나 다시 가을이 찾아올 때까지 지속되었다.



어느 가을날 아빠가 내 삶에서 사라졌다. 같은 해 가을 나는 약국에서 우울증약을 사먹기 시작했다. 그걸 먹으면 속이 메슥거렸다. 말해야 할 것을 꾹 참은 속에서 당장이라도 무언가 터져나올 것처럼 속이 아팠다. 엄마는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아빠가 할아버지 집에 가 있겠거니 했다.


다음 해 가을이 찾아왔다. 엄마에게 우울증약을 먹는 것을 들켰다. 엄마는 이딴 걸 왜 먹냐며 내게 화를 냈다. 니가 우울하면 얼마나 우울하다고 이런 걸 먹냐면서, 약을 먹어야 할 건 당신이라면서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약을 먹는 내가 죽도록 싫은 모양이었다. 화를 내는 엄마의 두 눈이 마치 괴물을 보듯 했었으니까.


그 때 엄마의 그 눈빛에, 내 안에서 무언가 터졌다. 그 일 년 간 무덤덤하게, 아무런 감정표현도 없이 살았었는데. 갑자기 내가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아빠는 대체 어딜 간 거냐고, 엄마는 왜 내게 화를 내는 거냐고, 이게 설마 다 내 탓인 거냐고. 그동안 속에 쌓아놨던 모든 것들을 엄마에게 쏟아내었다. 주먹으로 내 머리를 때리고 벽을 때리고 가구를 발로 차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엄마가 내게 진실을 토했다.


니 아빠, 집 나간 거야. 나도 니 아빠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

나도 미치겠어. 나도 미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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