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빠는 왜 집을 나갔을까(5)

변화, 그리고 바뀌지 않는 것

by 눅눅

2024년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는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정신을 차리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 그동안 내겐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24년은 정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시간이 통째로 날아간 것처럼, 아니면 다른 영혼이 내 몸에 들어와 1년 간을 살았던 것처럼.


2024년 1월, 나는 엄마가 생전 하지도 않았던 일을 하며 고생하는 게 너무 싫어서, 주식을 시작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다. 적은 돈으로, 소소하게 용돈벌이로. 한 달에 20만원씩만 수익을 내자.

내 나이의 주변 친구들이 한창 재테크라는 것을 시작할 때였다.

하지만 그건 내 인생에서 최악의 선택이었다.

백만원, 이백만원, 그렇게 소소하게 시작했던 주식은 어느새 거래 단위가 천 단위를 넘었고,

같은 해 7월 즈음에 나는 이미 미친년이 되어 있었다.


모아두었던 5천만원을 다 잃고, 3천 가량의 빚이 생겼다.

그 5천만원에는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모아주었던 주택청약 천오백만원, ISA계좌에 있던 3천만원, 그리고 내 통장에 있던, 내가 벌었던 돈이 있었다.

3천의 빚은 신용대출에서 얻었다. 잃은 5천을 벌고자 3천을 빌렸는데, 그 3천마저도 전부 잃었다.


선물거래나 코인 같은 것을 한 것은 아니다.

미국 주식 중에서도 위험하다고 소문이 난 급등주, 상폐주, 동전주 거래를 했었다.

처음엔 3천 만원 정도를 넣어 단숨에 1억 단위까지 벌었다. 그런데 욕심이 났다.

더 벌고 싶었다. 욕심이란게 그랬다.

매일같이 밤을 새며 주식 거래를 했다.

벌었던 1억이 8천으로 줄어들고, 5천으로 줄어들고, 다시 3천이 되어 본전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미쳐 있었다.

1억을 다시 벌고 싶어서, 손대면 안 될 통장을 손댔다.

엄마가 만들어준 주택청약 통장. 그 안에 있는 돈을 담보로 대출을 했다.

결과는 뻔했다. 나는 대출받은 돈까지 잃었고, 담보로 묶어둔 주택청약은 그대로 날아가버렸다.


지옥같은 7월, 그 여름에 나는 자살을 시도했다.

죽고 싶었다. 살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정신과를 안 간 지 몇 달이 지난 상태였다.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복구 불가한 쓰레기였고,

더 이상 집을 나간 아빠가 보고싶다며 울고불고 짜댈 수 없는,

집안을 풍비박살낸 미친년이었으니까.


그 즈음에야 더 이상 나는 아빠고 뭐고 삶이고 뭐고,

그동안 내 안에 있던 모든 우울과 불안조차도 무시할 만큼,

그저 죽어버리고 싶었다.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서.

가진 돈을 다 날리고 빚까지 만든 인간을 딸이라고 둔 엄마에게 너무 죄송스러워서.


내 손을 붙잡고 엄마는 은행을 갔다.

다신 주식 같은 걸 하면 안 된다는 약속을 하곤,

엄마는 그동안 아껴 모았던 적금을 깨 내 빚을 전부 갚아 주었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때부터였을까, 평일에만 일했던 엄마가 주말까지 일하게 된 게.

일주일에 7일, 그렇게 매주 한 달을 꼬박.

엄마는 쉬지 않고 일했다.

나같은년 때문에.


***


24년 9월쯤, 출판사 두 곳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한 원고가 언제쯤 완성되냐는 연락이었다.

내게 원고가 있을 리 없었다.

그 해 내내 주식에 미쳐있던 년이 성실하게 글을 썼을 리가.


각 출판사에 한 달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무슨 정신으로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24년 하반기는 그렇게 원고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계약작을 다 쳐내니 이제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아졌다.

돈,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2025년 1월이 되자마자 나는 새로운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웨딩 쪽 일이었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일은 고됐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뛰어다녀야 했고, 상사와 고객들에게 미친 듯이 깨져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25년 3월, 웨딩 일을 한 지 몇 개월밖에 안 됐는데, 스카웃을 받았다.

더 높은 월급과 더 나은 직책이었다. 대신 본가와는 매우 먼, 지방이었다.

냉큼 월셋집을 계약하고 내려갔다.

그렇게 7월까지, 정신없이 일했다.


웨딩 일은 내게 퍽 잘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까다로운 고객을 상대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고, 비위를 맞추는 게 힘들었다.

모든 일이 그렇다고들 하지만 특히나 일생일대의 마지막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들은, 한 명 한 명 전부 다 히스테릭했다.


스트레스성 위염이 생기고 매일 아침 코피를 흘렸다.

술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했고, 새벽 3시까지 미친 듯이 술을 마셔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 짧은 몇 개월 동안 스트레스와 음주 때문에 20kg가량 살이 쪘다.

옷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하나 둘, 내 건강을 걱정했다.


결국 일을 그만 뒀다. 월셋집은 아직 6개월가량 계약이 남아 있었다.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 그 생각이 들었을 즈음에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그동안 돈을 벌고 생활비로 썼어도, 5백 얼마가 남아 있었다.

7월, 작년 7월에는 잃었지만 올해 7월에는 벌 수 있을 거라는 망상이 도졌다.

다시 주식을 시작했다. 미친년.

갖고 있던 돈 5백 얼마에다가 또 대출을 5백 정도 받아 이제는 천만원을 홀랑 잃었다.

미친년.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밤 창문을 열어놓고 몸뚱이를 반쯤 밖으로 내놓았다가,

그대로 중심을 놓으면 바로 떨어질 수 있을 만큼 몸을 창틀에 기대었다가,

엄마한테 마지막 인사라도 해볼까,

남자친구에게 그동안 정말 미안했다고 문자라도 남겨볼까,

그렇게 이기적인 생각과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증오에 울면서 창문에 끼인 몸을 빼냈다.


죽지도 못할 거면서 미친년이 쇼맨십은 끝장났다.

그냥 그대로 죽어버릴 걸, 당장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나를 증오한다.

전화 너머, 엄마는 대체 왜 주식을 또 했냐며 울었다.

더이상 널 도와줄 돈이 없는데, 빚은 또 어떻게 갚으려고 그러냐며 엄마는 꺽꺽 울었다.

옆에 있던 남자친구가 내 손에서 전화기를 뺏었다.

나를 책임지고 고쳐놓겠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남자친구가 전화를 끊었다.

바로 다음 날, 남자친구는 내 손을 붙잡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도박중독, 주식중독 상담센터에 데려갔다.


매주 한시간 반에서 두 시간 가량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는 내가 주식을 도박처럼 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술을 매일같이 소주 2병에서 3병을 마시는 것도, 알콜문제가 있다고 했다.

나는 중독에 취약한 사람이라고 했다.

갖고 있는 핸드폰을 구형 기기로 변경하고, 통장을 단 하나로 줄이라고 했다.

카드도 주거래 은행을 제외하고 전부 없애고, 주식 거래 어플을 삭제하라고 했다.

내 인생에 이제 주식은 없는 거라고 했다.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잃은 돈만 억 가까이 된다는 건, 내게 큰 문제가 있는 거라고 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하기 때문에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야 할 때라고 했다.


일을 해서 땀흘려 돈을 벌고, 헛된 돈을 바라지 말기로 다짐했다.

평일에 나갈 수 있는 단기 알바를 구하고, 술을 끊었으며, 새 작품을 계약하고, 가족으로 고양이를 데려왔다.

근무 시간이 적어 한 달에 오십 남짓 밖에 벌지 못하지만, 9월부터 현재까지 5개월이 넘도록 꾸준히 일하고 있다.

술은 8월부터 지금까지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다. 술이 당기지도, 술에 취한 기분이 그립지도 않다.

계약한 새 작품은 9월부터 대형 연재처에서 유료연재를 시작했고, 얼마 전 완결을 맺었다.

8월에 데려온 아기 고양이는 지난 12월에 중성화를 잘 마쳤고, 지금 7개월을 바라보며 쑥쑥 크고 있다.

남자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나를 보러 서울에서부터 이 지방까지 내려오고,

엄마와는 일주일에 두어번씩 전화를 해서 안부를 나눈다.


이제야 아주 조금, 내 삶이 정상궤도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전부 내 잘못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이제야 겨우, 하나 둘씩 꿰매어가고 있다.


***


챕터명과는 전혀 관련없는, 지난날의 내 엉망으로 얼룩진 2년간의, 숨겨온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리 익명으로 글을 쓴다지만 부끄럽고 창피하고 쪽팔리다 못해, 그 지난날의 일들을 머릿속에 꺼낼 때마다 나는 자기혐오로 죽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내겐 보살펴야 할 고양이가 있고, 미래를 함께 꿈꾸는 남자친구도 있으며,

내가 그 어떤 미친짓을 해도 돈없는 엄마라 한번에 빚을 갚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말하는,

나 때문에 살아가는 우리 엄마가 있다.



나의 아빠는 왜 집을 나갔을까?

나는 아빠가 집을 나간 이후로 약 7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 누가 아빠를 힘들게 한 건지, 엄마인지 나인지,

아니면 정말 바람을 펴서 집을 나간 건지, 새로운 사랑이 생긴 건지,

치매가 시작된 할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나간 건지,

정말 엄마와 내가 있는 이 집이 지긋지긋하고 숨도 안 쉬어지고 꼴도 보기 싫어서 나간 건지.

정말이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가 죽는 순간까지도, 어쩌면 엄마가 죽고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 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문제에는 정답이 있다.

어떤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전제가 잘못됐다.

아빠가 집을 나갔다는 건, 애초에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그냥 결과다. 아빠는 집을 나갔다.

어떤 이유에서든, 2019년 9월, 그 끔찍한 가을에 그냥 집을 나가버린 거다.


애초에 문제가 아닌 것을 붙들고, 정답을 찾으려 애썼다.

답은 없다. 이미 결과일 뿐이다.

한참 전에 있었던, 스물한살의 내가 겪어야만 했던 결과.


몇년동안 정신과약을 먹고 정신과의사와 상담을 하면서,

나는 아빠가 집을 나갔다는 것에 대해 그 이유를 알아야지만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이유를 알게 되면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게 아무리 터무니없는 이유라 할지라도, 가장이 집을 버리고 아내와 딸을 버리고 떠난 것에는 분명 마땅히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문제에 대한 정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신과의사와 상담을 하면서 늘 했던 말이 있었다.

그 이유를 알아야지 내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무것도 모른 채 시간만 흘려 보내는 건, 살이 썩는 지도 모르고 그저 붕대로 꽁꽁 감아 속에 파묻어 두는 것과 같다고.

나는 이 썩은 팔의 상처를,

아무리 아프고 힘들고 괴롭더라도 소독액을 붓고, 필요하면 살점을 잘라내고 꿰매며, 연고를 듬뿍 바르고, 치료하고 싶다고.

그렇게 치료가 끝나면 흉터가 덕지덕지 남은 팔을 남들이 아무리 보고 욕할지언정,

나는 몇겹씩 켜켜이 꽁꽁 묶었던 붕대를 풀고 이 세상에 그제야 내 몸을 드러내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고.

후회하지 않고 아빠를 온전히 내 마음속에서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지난 2년간, 그 수많은 일을 겪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그건 나의 오만이다.

아빠는 집을 나갔다. 그건 결과값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한 그 이유를 찾아내려는 건, 나의 오만이다.

그건 굳이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썩어문드러져 곰팡내가 나더라도, 그 이유 만큼은 들출 필요가 없다.


구태여 알 필요 없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 없다.

아빠가 집을 나간 건 과거의 일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는 붙잡을 수 없는 먼짓바람이고, 희뿌연 바람은 기억을 왜곡시킬 뿐이다.

왜곡된 기억은 나를 더욱 절망으로 빠뜨리고, 끝없이 과거를 헤메이게 만들며,

결국 그 안에 갇히게 만든다.


그러니 내가 할 것은 확실해졌다.

받아들이는 것.

과거를 붙잡지 말고 놓아주는 것.

앞을 향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

꾸준히 일을 하고, 성실히 돈을 벌고, 사랑으로 고양이를 키우고, 남자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그동안 혼자 고생했을 엄마에게 잘 하는 것.


내가 해야 할 것은 단순하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

내 곁에 남은 사람은, 내 곁의 사람.


가끔 그리워할 순 있겠지만, 아빠가 죽은 것은 아니니.

그럴 때마다 전화 한 통 하면 되는 거다.

그러면 된 거다.


그러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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