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형-회피애착 유형의 연애 에세이
어느 날, 2020년 12월 18일의 일기
좋아하는 것을 써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는, 좋은 음악을 듣는 것. 에어팟의 소음 감소 기능을 켜놓고.
두 번째로는, 약을 하나 집어먹는 것. 이번에는 꾸준히 비워낼 마음을 먹고.
세 번째로는,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
여기가 바로 문제다. 제대로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면 상황이 준비되어도 나는 한 문장조차 적어내릴 수 없다.
핑계는 많았다. 마음이 복잡하여 카페를 찾았고, 생각이 많아져 산을 탄다는 변명으로 시간을 때웠다. 이야기의 끝맺음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나의 보잘것 없는 고민들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앞날을 바라볼 수 없을만치 내 삶은 힘겹고 괴로우며 고통스럽고 또 무의미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간을 흘려보내며 오늘 하루도 서럽게 보냈구나,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구나, 내일도 그런 하루를 보내겠구나. 나는 내일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알 수 있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푸른색을 좋아한다. 하늘보단 깊은 바닷물 색. 꽃은 프리지아를 좋아한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노란색. 스무살, 연극학부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적에 노란색 크레파스로 스케치북을 가득 채웠다던 어떤 정신병동에 지내는 어린 여자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좋아하는 것을 그려보라는 말에 그 여자애는 노란색 크레파스를 집어들어 스케치북 위에 나비를 그리기 시작했다더라. 적어도 백 마리 정도의 나비가 그려진 스케치북은 그냥 노란색으로 줄곧 색칠한 것처럼 보였다. 교수님은 노란색이 우울을 뜻하는 색이라 설명했고 그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 중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반박했다.
노란색은 우울한 색이다. 마찬가지로 푸른색도 그렇다. 따지자면 회색도 우울한 색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정도 그러하며, 진녹색 또한 우울하다. 보라색은 우울하고, 흰색도 우울하다. 세상에 우울을 뜻하는 색은 많은데 사람들은 오직 푸른색만 우울하다 여겼다.
올 2월, 나는 조금씩 몇 장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작정 다른 그림을 따라하기를 백 장을 넘게 그리다가 하나 둘 밑그림 없이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나는 내가 그린 마음에 드는 그림 하나를 엽서로 뽑았다. 그 엽서에는 노란색 잔디가 그려져 있다. 연두색으로부터 차츰 옅어져가는 노란빛 잔디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퍽 우울해졌다.
다음날이 기다려지지 않는 삶을 살다보면 작은 것 하나에 의무감을 부여해 다음날 눈을 뜨게 만드는 사소한 노력을 해야했다. 생각보다 내 우울감은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있어서 그것은 분노로 표출이 되거나 눈물로 표출이 되거나 목구멍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되곤 했는데 그 마지막 단계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멀쩡한 척을 할 수 있는 연기력이었다.
좋아하던 것을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상황이 그러하여 내가 놓아야 하는 것들은 올해 들어서 더더욱 많아졌다. 외출을 하여 시간을 보내고 돈을 쓰는 것,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모으는 것, 읽고 싶은 책을 맘편히 사는 것. 사소하면서도 그간 내 버팀목이 되어주던 것들이 사라진 순간에 나는 무너지는 대신 마법의 대사를 뱉었다.
이제 질렸어. 더 이상 안 할 거야. 원래 그렇게 많이 안 좋아했어.
시간 낭비야. 돈이 아까워. 그냥 안 하기로 했어.
대체할 문장은 차고 넘친다. 사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도.
얼마 전엔 눈이 왔다. 사진도 안 찍고 대충 창밖만 내다보다가 그러려니 했다. 이 세상엔 눈이 내린다는 이벤트 없이도 충분히 내 마음을 울적하게 하는 요소들은 많았다. 예를 들면 추운 겨울 날씨라든가, 내 상황이 절대 해결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불행한 가족력이라든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집 구석에 처박혀있는 내 모습이라든가.
어느 것 하나 타이밍에 어긋나지 않게, 그 모든 게 맞물리는 순간에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만약 죽어서 다른 사람들의 연락에 답장이 없으면. 그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는 걸 어떻게 알까? 그럼 나는 죽은 이후에도 의도치 않게 몇 몇 사람들과 손절을 하게 되는 상황이 되는 거였다. 가뜩이나 내 장례식에 부를 사람도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죽은 사람의 핸드폰 컬러링에 이 사람은 죽었다는 것을 알리는 서비스가 도입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꽤 괜찮은 사업 아이템일지도 모른다.
베란다를 쳐다보며 여기서 떨어지면 정말 죽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 시간과 얼굴이 터지기 직전까지 목을 스스로 조이는 행동을 멈출 수 있는 약은 정신과의사와의 면담이 없이는 구하기 불가할 거였다. 그러니 나는 플라시보 효과를 노리며 시중 약국에서 판매되는 약한 정도의 항우울제를 먹어댈 수밖에 없다.
내 삶은 이미 시궁창, 구렁텅이에 빠져도 미래를 꿈꿨던 빨간 머리 앤은 아무쪼록 대단한 아이였다.
그리고 다시 지금.
4년 전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럼에도 딱 하나만 덧붙이고 싶은 것.
아직 너는 잘 살아있다.
비록 너의 엄마는 고새 많이 늙었지만, 너는 일 년에 아빠를 만나는 날이 이틀도 채 되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너의 곁에는 3년이 넘도록 너를 사랑해주는 남자친구가 생겼고, 그토록 가기 싫어했던 병원을 생각보다 꼬박꼬박 다니고 있다는 것.
그리고 너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을, 너는 아직도 꽤나 많이 사랑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