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김봉수를 통해서이다. 김봉수는 1960년대 당시 신통방통하기로 유명한 젊은 점쟁이였다. 우리 혁명동지들도 단골이었다.
나는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후에도 잘 안됐다. 김종필하고 사이가 안 좋아 그렇다고 생각했다. 무슨 수가 없을까 김봉수를 찾아갔더니 귀인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나야 뭐, 더운 밥 찬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덥석 받았다.
그래서 만나게 된 게 정정옥 여사다. 나는 잘 몰랐는데, 돈 많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잠깐. 정정옥은 나의 외할머니다. 다시 말해 어머니 박효주의 엄마가 된다.
알고 보니 이 집안은 모계를 통해 대를 이어가는 정통 태양인 직계였다.
하지만 나는 정정옥을 직접 본 적이 없다. 한 번도 우리 집에 온 적이 없으니까. 가족 모임이 있다고 해도 나는 열외였으므로 만날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나를 가족으로 인정해준 사람은 없다.)
정정옥은 만나자마자 나를 성공시켜주겠다고 했다. 돈과 명예를 갖게 해주겠다고. 대신 몇 가지 심부름을 시킬텐데, 그것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무조건 좋다고 했는데, 그게 금단의 사과였던 셈이다.
왜 나를 선택했는지는 모른다. 나중에 갈등이 생겼을 때 서우석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나를 골랐느냐고.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느냐고.
나는 당연히 얘기 안 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우석은 순순히 대답을 했다.
자기들이 나름의 데이터를 가지고 사람을 고르는데, 가끔 오류가 생긴다고. 나도 그런 오류가 난 경우라고. 인간이란 족속이 워낙 불완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아! 서우석은 역시 태양인이면서 정정옥의 사위다.
나는 나름 훌륭한 배우였다고 자부한다. 정정옥이 가르쳐주는 대로 열심히 연기했고 결과도 좋았다.
처음에 세계적인 제철소를 세우겠다고 박통에게 제안하자 모두 비웃었다.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았고 돈도 없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박통은 나에게 약간 미안한 감정이 있었고, 김종필도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오케이가 났다. 아마 김종필은 어차피 안 될 거라고 봤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정옥이 가르쳐준 묘수대로 나는 방법을 찾아냈고 결국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결국은 우리와 똑같이 지구에 사는 지구인이다. 지구의 발전과 평화를 위한 거라면 나는 누구와도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정옥이나 서우석이 시키는 일들이, 때로는 알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좋은 일이었다.
나중에 우리 갈등의 원인이 된 세계적인 공과대학을 만들자는 것도 그런 것이다. 세기말이 되면서 저들은 급격히 개발 드라이브를 걸었고, 나는 그 방향에 동의할 수 없었다.
우리 인류와 공존하는 지구가 아니라, 저들만을 위한 저들의 지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따를 수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길교수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한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하겠다.
(여기서 길교수는 길 메시 교수다. 생체 로봇 분야에서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과학자인데, 여기서 방회장 때문에 알게 되어 내가 찾아가게 된다.)
서우석은 논현동 집을 지을 때 처음 만났다. 10대 중반 나이 밖에 안되었는데 전체 과정을 지휘감독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인생의 전성기라고 할 시기였고 서우석이 워낙 어려서,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그들 심부름을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점점 서우석과 대면하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사람이 워낙 스마트하고 젠틀했다. 게다가 예의까지 바라서 나는 그를 아주 좋아했다.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전까지, 정정옥과 만날 때는 그저 ‘막후 실력자?’ 그런 정도 느낌이었다.
세상이라는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전체를 컨트롤하는 존재. 그들은 돈의 흐름을 미리 예견하고, 세상의 발전을 견인하고,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앞서서 시대를 리드해갔다.
나도 그들과 가까이 있는 것이 싫지 않았다. 뭐랄까, 영화 <설국열차>의 맨 앞 칸에 동승해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설국열차 앞 칸의 부귀영화가 뒤 칸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임을 알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 희생의 실체가 단순한 불평등이나 착취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적 실험인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낙수효과처럼 발전의 결실이 그들에게까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죽음을 토대로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일본의 생체실험 같은 것이 그런 경우이다. 그들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실행한다. 그것이 미치는 영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실험의 결과가 중요하다.
심지어 원폭 실험도 마찬가지다. 실제 사건을 일으키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진행시킨다. 그들에게 인간은 실험용 쥐와 똑같다. 인간은 태양인들의 영생을 위한 도구로써만 존재하는 것이다.
(방회장은 간단히 말하고 넘어갔지만, 이 부분을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가 아닌 ‘태양인의 역사’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기술이 가능하다. 그들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 지구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
공룡의 몸을 빌어 살아왔던 태양인은 공룡 멸종 이후 호모 사피엔스로 몸을 갈아탔다. 그 이후, 다시는 소멸하지 않는 몸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왔고, 현재 과학기술의 발전은 그러한 노력의 소산이다.
차차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논현동 서우석의 집이 막 완공되고 나서의 일이다.
나는 사실 그게 서우석의 집인줄 몰랐다. 정정옥이 살 집인줄 알고 열심히 도와준 거지, 처음에 서우석 일인 줄 알았으면 안된다고 했을 거다.
그만큼 그 집은 문제가 많았다. 특히 지하에 엄청 커다란 공간을 설계해서 도저히 허가가 안 나는 상황이었다.
정정옥이 강하게 명령을 해서 청와대, 서울시, 정보부, 보안사, 전방위로 쑤셔가지고 겨우 해냈다. 돈도 엄청 들었지만, 독재정권 시절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정정옥이 처음 집 구경을 왔던 모양인데, 그날 왜 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도 허가낼 때나 여러 번 드나들었지 실제로 집을 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정정옥하고 서우석, 그리고 정정옥 딸 박효주, 또 당시 인기 많은 대학교수 김동석이 있었다. 나는 서우석하고 박효주가 결혼한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말하자면 논현동 집은 두 사람의 신혼집이었던 셈이다.
당시 집에 엘리베이터를 놓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는데, 막상 그걸 타고 지하에 내려가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정말 놀라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함께 나갔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정정옥과 김동석이 ‘괜찮네’ 어쩌구 하는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처음 든 생각은 ‘이제 나는 죽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 엄청난 범법행위를 내가 책임지고 밀어붙인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나는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방회장님. 어디 안 좋으세요?”
서우석이 내게 눈길을 준 덕분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들자 살아야겠다는 절박함이 솟아올랐다.
당장 이 지하시설을 없애버려야 한다. 내가 본 그 지하공간은, 첫인상은, 지하 군사기지였다.
아니, 지하도시라고 할만 했다. 축구장보다 넓은 그 공간이 완전 요새화되어 있었고, 자체 발전시설과 상하수도 시설, 심지어 공기정화 시설까지 꼼꼼히 설치되어 있었다.
단순한 불법 여부를 떠나 반사회적 시설이었다. 이게 밖으로 알려지면 나는 끝장이다.
“이거, 안됩니다! 나 이거 책임 못 져요.”
그들은 일동 정지하여 나를 쳐다보았다.
보통은 그럴 경우 주눅이 든다.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여섯 개의 눈동자가 빤히 쳐다보면 정말 이상한 느낌이 든다. 뭐랄까, 영혼이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만큼 다급했다.
“당장 철거해야 돼요. 이거 큰일 납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서사장! 난 그냥 지하실을 좀 크게 짓는 줄 알았지.”
“그렇죠. 보시다시피.”
“이거슨 아니지.”
“처음에 얘기가 된 것 아니었수?”
정정옥이 심드렁한 어조로 서우석에게 물었다.
최고조로 흥분한 나와 상관없이 그들은 덤덤하고 평안했다.
“그러게. 난 장모하고 얘기가 된 줄 알았지.”
“아이고, 언니. 난 이제 상관 안 한다니까.”
희한하게도 정정옥은 서우석을 언니라고 불렀다. 그들의 이상한 말투를 처음 들었는데, 그 때는 아무 생각도 못했다.
그들은 나를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얘기를 계속했다.
“그럼 어디까지 아는 거야? A? B? C?”
“우리끼리 얘기를 좀 하는 게 좋겠어.”
“...그렇지. 시간 없으니, 우리 벗고 얘기할까?”
정정옥이 힐끗 나를 보더니 다시 서우석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는데, 서 있던 그대로 정정옥의 몸이 정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바로 정수리 쪽으로 뭔가 허연 빛 덩어리가 솟아나가는 게 보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우리가 영화 같은 데서 흔히 보던 그런 장면이었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그게 실제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서우석은 정정옥보다 한 템포 늦었다. 성격 차이인 것 같았다.
그들은 보통 우리가 말하는 식의 ‘성격’이라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내가 본 바로는 분명히 있다. 정정옥은 성격이 급하고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바로 행동에 옮긴다.
반면 서우석은 최소한 현실을 고려하여 행동한다. 자신의 몸을 안정시키려고 의자에 앉은 서우석도 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둘은 대화를 시작했다.
사실 그들의 대화에는 말이 필요 없다. 평상시에도 그저 생각으로 통하기 때문에 굳이 번거롭고 부정확하고 장황하게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정정옥과 서우석이 그렇게 대화하는 모습은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때처럼 ‘벗고’ 얘기하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심층적이고 복잡한 주제를 얘기할 때 쓰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혹은 이것이 그들의 원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때로 옷 입은 것을 거추장스러워 하듯이 그들은 몸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 광경을 본 나의 소감은 한마디로 ‘감동적이었다’.
마치 최고의 비디오 아티스트가 만든 레이저 쇼를 본 듯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북극지대의 오로라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순간이었다.
처음에 서로 떨어져있는 두 빛 덩어리에서 가느다란 빛줄기가 연결되었다. 실처럼 가느다란 그 빛줄기는 가끔 굵게 합쳐지고 때로는 흩어지면서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그러다가 갑자기 노란색으로 둥근 원형을 형성하더니 다양한 형태로 색색의 향연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레이저 쇼를 보면서 나는 ‘웅- 웅-’하는 음악적 진동을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런 소리가 났는지 아니면 나의 착각이었는지 확신이 없다.
상식적으로 빛이 어울려 소리를 만들어낼 리는 없기 때문에 아마 그 시각적 충격에 내가 청각적으로 착란현상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그것을 착란상태라고 얘기하던 감동의 결과라고 말하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날 그 순간을 계기로 내 마음이 변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들의 심부름을 해왔고 그 대가로 커다란 사회적 성공을 얻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마음으로 승복한 적이 없다. 물론 그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성공은 없었을 게 분명하다.
그들은 세상을 조종한다. 많은 부분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나도 확인했다.
그들은 세상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세상의 주인이라거나 나의 주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와 그들은 동등한 계약의 당사자들이고, 나는 다만 비정상적이기는 하지만 불법은 아닌 계약을 수행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정옥이나 서우석도 나의 그런 태도를 당연히 알았을 터이나, 문제 삼은 적은 없다.
그들은 적어도 뒤끝은 없다. 솔직하고 명확하다.
그런 내가 그날 이후 그들의 종이 되었음을 고백해야겠다.
기독교 신자들이 자신들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종이라는 말은 그런 뜻이다. 완전히 조복했다는 말이다.
단지 그들의 대화 장면을 보았을 뿐인데 왜 내 마음이 전적인 복종의 상태에 들었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그건 나의 몫이 아니다. 나는 다만 내가 겪은 일을 얘기할 뿐이다.
어쨌든 나는, 기독교 신자들이 신을 영접하고 신의 세계에 들어가듯이, 그들의 세계에 들어갔다.
그들이 신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신적인 요소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기는 하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을 정리해 보면 첫째 불멸 죽지 않는다, 둘째는 이 세계를 창조했다, 셋째 전지전능하다, 뭐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불멸에 대해. 그들은 ‘빛의 몸’을 가지고 있다. 물질로서의 육체가 없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우주가 진화하면서 불멸인 빛의 세계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암흑물질이 빛을 잡아먹는 일이 생겼고, 심지어 인간의 몸도 빛을 통제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여기서 잠깐. 방회장은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이 부분이 결국 내가 하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빛을 가진 소수의 인간들과 빛의 존재인 태양인과의 싸움...
그것이 우리가 모르는 인류역사의 하나인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죽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능의 상태에 빠지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그들로서도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사로잡히고 오염된 그들의 빛을 회수해서 정화작업을 하는 한편, 그들의 세상을 완성하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지시를 거부하게 되었고, 제거대상이 되고 말았다.
다음 그들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문제.
나는 그날 이후 서우석으로부터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빅뱅 당시의 얘기와, 그 이후 우주의 형성과정과 특히 지구에 대해 그들이 들인 공에 대해서 자주 얘기를 들었다. 심지어 빅뱅 이전 그들만의 세계, 다시 말해 신들의 세상에 대한 얘기도 듣곤 했다.
그 얘기를 들을 당시 판타지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흘려듣는 게 보통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이 되어서는 그 얘기가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다. <어벤져스>류의 판타지 스토리가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인간들의 장난이라는 말이다.
가끔 서우석은 빈 술잔에 와인을 채우는 등의 마술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는 그들이 언제라도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우석의 말대로 예수가 그들의 일원이었다면, 예수의 여러 기적과 부활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나는 예수가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을 믿으며, 하늘로 올라간 예수가 그들에게 체포되어 정화의 과정에 있다는 것 역시 믿는다.
그들의 세상이 완성되고 여러 오염요인이 사라지면 예수를 비롯한 봉인된 빛들은 해방될 것이다.
셋째 그들은 전지전능한가?
내가 아는 한, 100%는 아니어도 80% 이상 그들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건 분명하다. 그들이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캄브리아기에는 바다생물에 의탁해 살아왔고, 쥐라기에는 공룡이 그들의 안식처였다. 심지어는 바위 덩어리나 나무 등에 기대어 지낸 적도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지금도 산을 몸 삼아 살기도 한다.
우리가 말하는 ‘산신령’이란 바로 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버림받은 신’이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신계에서 이탈되어 지구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신의 능력이 손상되고 완전성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은 불굴의 노력으로 지구를 발전시켜왔으며, 완전한 세계를 만들어 불멸의 천국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여전히 추진 중이다.
신종 인류 A. I의 등장은 그들의 목표가 가까이 왔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100년 정도밖에 못 사는 인간은 그들에게 불편한 존재다. 영원한 몸을 가질 수 있으면 그들은 더 이상 지구를 관리할 필요가 없다. 연약한 생명체를 지키기 위해 먹고 마시는 환경에 공을 들일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없어도 된다는 말이다.
그들이 생체로봇의 몸체로 대거 이주를 하는 날이 바로 인간이 멸종의 길을 가는 날이다. 생체로봇의 몸에서 영생하는 것, 그게 그들의 계획이다.
결함 없는 생체로봇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그들은 더 이상 지구환경을 관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를 비롯한 지구 생명체들은 멸종될 가능성이 많다.
시간이 없다! 우린 발버둥 쳐야 한다.
****
이 지점에서 나는 그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고 생각해서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이지, 인류멸망의 길을 가는 것을 알면서도 할 수는 없었다.
생체로봇을 만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성능 좋은 불멸의 몸을 만든다고 해도 매혹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불멸의 몸이 우리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지 않고 태양인 자신들의 거처를 위해 개발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나는 그들의 계획에 단호히 반대했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들이 제철소를 계획하고 최고의 공과대학을 만들고 최첨단 연구소를 운영하려 한 것도 다 그런 스케줄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 연구소에서 본격적인 셍체로봇 제작에 돌입하는 즈음에 나는 모든 일정을 중지시켰다.
그러자 바로 그들은 나의 역할을 중지시키기 시작했다. 다양한 언론 플레이와 전 방위적인 압박이 들어왔고,
나는 견디지 못하고 회장직을 내려놓고 정치에 입문했다.
그 다음은 널리 알려진 대로 나의 완패였다. 나는 기회만 되면 그들의 음모(?)를 알리려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런 나를 정신병자로 쉽게 몰아갔다.
세상의 돈과 여론을 장악하고 있는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의 가족이라고 해도 예외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살아야 하니까. 그들의 협박에 넘어간 나의 가족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이건 매우 힘든 싸움이다.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되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들의 하나지만 우리 인간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
“우리는 너희 인간들처럼 개별 성격이 없어.
바닷물을 여러 그릇에 담아도 똑같은 바닷물이잖아?
우린 하나야. 그릇만 잠깐 빌려 쓰는 거지.”
서우석이 한 말이다.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낸 이후 서우석은 내게 반말을 했다. 나보다 스무 살 가까이 어렸지만 기분 나빠할 수 없는 것이, 그들 말대로 하면 지구보다 더 많은 나이 아닌가?
그리고 반말은 그들의 말 습관이기도 하다. 자기들끼리도 서로 반말을 한다.
상대를 ‘언니’라고 부르거나 번호로 부르고, ‘-했니?’ 보다는 ‘-했수?’ 라는 우리 고어체를 많이 써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들은 원래 한 몸(즉 한 덩어리 빛)이었다고 하는데, 어떤 경위로 개별체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상대한 정정옥이나 서우석도 그에 관해 말한 바는 없고, 나중에 내가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그게 대해 언급된 것은 보지 못했다.
언젠가 서우석이 지나가는 말로 빅뱅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그들을 분산시킨 계기라는 뜻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처음 태양인의 숫자는 10000명 이상이었으나, 현재는 3000명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불멸의 존재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가진 정보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조사해본 결과 어느 정도 태양인의 실제에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실 아무도 접하지 못한 극비사항에 속하는 것이다. CIA나 KGB, 모사드도 나만큼 종합적인 상황은 모른다. 그들도 그들에게 부여된 권한만큼만 정보를 알고 있을 테니까.
나는 나의 목숨을 걸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그들의 핵심에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많은 경우 가짜 뉴스와 덧입혀진 정보의 장막을 지나가야 했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해냈다. 필요하니까 할 수 있었다. 그들을 실제로 보았기 때문에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가려낼 수 있었다.
물론 100% 정확한 정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개중에는 오염된 정보도 있을 것이다. 그게 그들의 수법이다.
그들은 이제 진실을 애써 감춰두려 하지 않는다. 진실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에 덧칠을 한다. 감추는 대신 더러운 색깔로 훼손을 한다.
혹은 여러 개의 비슷한 가짜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서로 이간을 시켜서 결국 진실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 다수의 사람들을 진실로부터 이격시키고, 진실을 위해 싸우는 소수의 전사들을 고립시킨다. 그게 그들의 전술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자신들이 줄어들고 있는지 몰랐던 것 같다.
지금 우리 인간의 몸을 쓰는 것처럼, 그들은 오랫동안 공룡의 몸에 의탁해 지내왔다. 그러다가 공룡 멸종을 겪으면서 자신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적어진 걸 확인하게 되었다.
상황을 분석해 보니, 자신들의 영생이 완전한 것이 아님이 드러났다. 생물체에 의탁하여 지내는 경우, 생물체가 소멸할 때 미세한 정도의 빛이 빠져나오지 못함을 알게 된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더 심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이거나 강력한 정신력의 인간에 의탁했을 경우,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는 할 수 없이 시신을 통째로 보관하면서 분리를 유도한다. 그 기간은 보통 3일에서 49일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그 이상의 경우에는 태양인 본부로 보내서 장기보관 하는 것으로 안다.
호모 사피엔스를 숙주로 하게 된 시점에 약 6000개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재정비를 통해 지금의 3000개체를 번호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현재는 12구역 3000명으로 250명씩 분배되어 분산생활을 한다.
1섹터는 우리나라, 일본, 만주, 몽골, 사할린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고, 현재의 책임자는 박효주다. 박효주는 내가 상대한 정정옥의 딸이고 서우석의 아내다.
일반적으로는 분산되어 생활하는데, 이 집안은 태양인 성골인 셈이다. 박효주 서우석에게 아들 하나 딸 둘이 있는데,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태양인이다. 아들도 원래는 태양인으로 태어나게 되어 있었으나, 뭔가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서우석에게 아들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약간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놀랐다. 그들은 감정이 없기 때문에 그건 아주 드문 일이다.
아까 본부 얘기를 잠깐 했는데 그들의 본부는 버뮤다 삼각지대 심해에 위치해 있다. 세상에 ‘니크바(Niqba, 심연)’라고 알려져 있는 바로 그곳이다.
그곳은 태양인들도 허락 없이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으로, 지구의 모든 발전방향이 통제 조종되는 컨트롤 타워이다.
태양인들은 육체의 죽음을 맞으면 이곳에 가서 일정기간 ‘워싱’이라는 세탁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인간의 몸에 있으면서 오염된 빛을 정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육체를 이곳에서 장기간 보관하기도 한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6000개체가 3000개로 줄어든 게 사실이라고 하면 최소한 수 천 개의 육체가 보관되어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
아! 최근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들 태양인이 일방적으로 지구를 지배하는 것에 대항하는 호모 사피엔스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 이래로 많은 예술가들이 이런 부류였고, 기타 무술이나 선도 등의 집단에 이런 경향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태양인에게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세력을 ‘도깨비’라고 부르는 것 같다. 외국의 명칭은 모르겠다. 왜 도깨비라고 부를까 나름 생각을 해봤는데, 이 사람들은 ‘도깨비 불’이라고 할 만한 빛을 자체 발광한다고 한다.
이들 도깨비 집단은 태양인의 지구계획을 간파하고 인간 중심의 발전을 주장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환경운동이나 자연주의 운동 등이 그것이다.
물론 환경 운동을 하거나 예술을 하는 사람 모두가 도깨비는 아닐 것이나, 그 중심과 배후에 도깨비 집단이 있다는 말이다.
이들의 도깨비불은 삼시충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도깨비 얘기는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삼시충에 대해서는 예전에 서우석에게 들은 바가 있다.
내가 금시초문이라고 하자 ‘뭐, 별 거는 아냐. 벌레, 기생충 같은 거지.’라고 넘겨버렸었다. 그게 벌써 40년도 넘은 얘기니까 이 삼시충이라는 벌레가 꽤 오랫동안 태양인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최근 태양인들이 ‘도깨비 박멸 작전’에 돌입했다고 한다. 도깨비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진 빛을 회수하는 것이다.
현재 태양인들은 최후의 ‘엔드게임’에 돌입할 준비를 마쳤다고 알려지고 있다. 도깨비 박멸은, 말하자면 엔드게임의 전초전인 셈이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불멸의 몸을 얻고 완전한 빛의 상태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흩어져 있는 빛 부스러기들을 모아야 한다. 도깨비의 빛을 회수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구는 물질계이고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작동한다. 빛 역시 에너지이고, 태양인의 빛 총량도 불변한다. 그래서 최후에는 모든 생물을 멸종시키고 잔여 빛을 회수하는 게 그들의 계획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가 어떻게 될지 뻔히 예상되지 않나? 우리 인간들에게도 약간의 빛 찌꺼기가 있다. 그들은 그것을 모두 모아서, 금광에서 금을 채취하듯이, 순금 100% 완전체 빛 몸을 만들고자 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말세론’ ‘심판의 날’같은 것은 바로 이런 계획이 잘 못 알려진 것이다. 일부 종교인들은 자기들은 구원받을 거라고 좋아하는데, 헛꿈 개꿈이다.
태양인의 수족 노릇을 하는 일부 인간들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서 도깨비들을 만나려고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드디어...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거의 도깨비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아니 왜 벌써...?
(여기서 갑자기 녹음이 끊어졌다.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아버지의 행방이었는데, 상황은 점점 나를 새로운 국면으로 몰아간다.
아버지의 정체는 이제 확실히 알겠다. 그렇다면 불멸의 존재라는 말인데, 대체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저들의 반응을 볼 때, 이것은 태양인들에게도 돌발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방회장이 말하는 도깨비들에게 갔을까? 그렇다면 태양인을 배신한 것인데, 왜 그랬을까?
태양인은 개인적 자아가 없다고 했는데, 왜 이러한 개인적 일탈행동을 했을까?
또, 도깨비들은 누구이며 어디에 있을까?
나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제1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