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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Oct 14. 2024

불완전할 자유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주말 내내 침대에서 끙끙대다 정신을 차려보니 일요일 저녁이 되었다. 환절기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겪는 일이지만 이번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는지 끝도 없는 꿈을 계속 꾸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꿈 속에서 그동안 심연에 가장 단단한 곳까지 이르기 위해 두려움이란 이름으로 항해했던 순간들이 치열하게 오고 갔음을 느낀다. 내가 가진 결핍 그리고 평형을 맞추지 못하는 관계를 마주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래서 결국 나의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이러한 내면의 성찰이 궁극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또다시 나를 찌른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힘. 비판적 사고의 시작이다.


여전히 불완전 하지만 괜찮아...


일단 물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생각에 압도되지 않고 작은 걸음을 걷는 일부터 시작했다. 수영을 배우는 과정 속에 물속에서 몸을 움직이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기본기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서서히 체득했다. 그 기본기를 몸에 새기게 되면서 어느새 물속에서 자유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비록 '잘'은 못하지만 물속에서 호흡하며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 이제 나는 알 수 있다.


어둠 속에선 홀로 잠들지 못하던 난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열심히 적응 중이다. 직시하기 힘든 본질 앞에서 '어둠'의 형태로 회피 기제를 발동하던 저항감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들에 대한 상실과 함께 나를 잠식하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유한한 삶 속에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을 직면하고 지금 나에게 허락된 것에 대한 사랑, 감사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말을 전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사랑의 주체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완벽주의를 추구하지만 때론 요행을 바라고, 남들 앞에서 실수할 까봐 걱정하며, 널브러져 게으름을 피우는 나를 몰아세우는 나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무엇이든 더 잘 해내야만 존재 가치를 증명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통제적 잣대에서 벗어나 천천히, 느리게,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신뢰감을 구축하는 중이다. 자기 신뢰를 위해 작지만 매일 작은 성공을 만들며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북돋아 주고 있는 중이다. (파리 꼭 가고 말 거야!)


무엇보다 누군가와 연결됨에 가진 취약성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동등하고 존중된 거리를 가진 관계를 맺고 적당한 거리를 내어줄 수 있는 용기도 가져보려 애쓰고 있다. 솔직히 아직도 나의 일부를 비워내는 일이 버겁고 나만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일에 겁부터 난다. 하지만 나의 작은 정원에서 걸어나올 수 있다면 언젠가 숲처럼 연대하여 타인의 삶 속에 나의 존재의 이유를 기록할 수 있는 기적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나는 가진 것보다 채워가야 할 것이 많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책 속의 이야기와 소통하며 작지만 단단하게 스스로를 조각해 나가는 창조자로서 삶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결국 삶은 관성처럼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갈 거야."라는 회의감이 나를 짓누르려 한다면 나는 분명 달라지고 있으며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그대로 괜찮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주체로서 나의 길을 찾아갈 뿐이다.


나의 생존과 존재의 이유를 찾아, 결핍을 채워나가고, 관계 속에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내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이자 살아있다는 증거일 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신과 같은 완전함을 추구할지 모르지만 세상에 그 어떤 인간도 완벽할 순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이를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 또한 나를 계속 사랑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성장하는 일. 그것이 내가 불완전할 자유이자 지금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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