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환영받지 못할 곳

Day16 ; 홍성

by 현정

홍성역에 내렸고, 해가 지고 있었다. 택시 승강장에 택시가 한 대도 없었다. 역사를 빠져나와 노을 사진을 찍는 동안만 해도 택시들이 줄지어 서있었는데. 막내 이모에게 미리 받아두었던 주소를 목적지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버스를 탈까 했는데 이모네 집 쪽으로 가는 버스는 1시간 반이 지나야 온다고 했다. 금세 도착한 택시에 몸을 실었다. 홍성역에서 둘째 이모네 집 가는 길이 어땠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질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변한 만큼 이곳도 변했을 테니.


지는 해를 향해 달려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모네 집에 가는 길이라고, 너무 오랜만에 오는 거라 조금 어색하다고, 했다. 기사님은 오랜만에 오는 거면 이모가 더 좋아하시겠다고, 맛있는 거 많이 얻어먹고 가라고, 하셨다.


진짜 그럴까? 이모들이 날 반겨줄까? 솔직히 홍성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 걱정이 제일 컸다. 막내 이모와는 가깝다고 하지만 홍성 이모들과는 워낙 교류가 없었어서, 엄마라는 연결고리가 사라진 지금도 이모들이 나를 환영해줄까 싶었다. 홍성 이모들한테 연락하지 말고 따로 숙소를 잡아 여행을 다닐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땅한 숙소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과 엄마와의 마지막 기억이 담긴 둘째 이모네 집이 그리웠다.




택시에서 내렸다. 익숙한 오르막길이 보였다. 한 겨울이면 동생과 함께 포대자루를 깔고 앉아 눈썰매를 타던 곳, 한 여름에는 오르막길 중간에 자리 잡고 있던 오두막에서 매미를 잡던 곳. 20년 전의 일이 생생하게 재연되는 듯했다.


돌아 나간 택시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현정이냐?” 둘째 이모였다. 비닐하우스에 절여놓은 배추를 뒤집고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마저 뒤집고 갈 테니 언넝 올라가 있으라고 했다. 익숙한 오르막길을 등지고 들리는 이모의 충청도 사투리는 투박하지만 따스했다.




집안은 시끌벅적했다. 막내 이모만 오는 줄 알고 있었는데, 결혼한 사촌 언니와 사촌 오빠네 가족들은 물론이고 둘째 이모의 동서들까지, 모인 인원만 스무 명에 가까웠다. 아는 얼굴들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갔던 나는 현관을 들어서며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진짜 환영받지 못할 곳에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는 저녁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술상으로 이어졌다. 내일 아침 일찍부터 절여놓은 배추를 헹구고 김치를 담가야 하니 많이 먹지 말고 일찍 자라는 둘째 이모의 이야기는 누구의 귀에도 박히지 않았다. 한쪽에 자리 잡고 맥주를 홀짝이던 나는 어느새 방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불려 나가기를 한 두 차례, 시시콜콜한 근황 이야기가 오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곧 서른을 앞두고 있는 내게 그 누구도 연애니, 취업이니, 결혼이니, 출산이니, 이런 종류의 듣기 싫은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보이고 응원을 보내주기만 했다. 어색해서 홀짝홀짝 마셔대던 맥주의 양이 많아져서였는지,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주던 외가 식구들의 말 때문이었는지,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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