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럼 네가 요즘 신경 쓰이는 그 고민이란 건 뭔데?” 임영신이 이제는 흥미로워서 구미가 바짝 당기는지 김향화를 더욱더 거세게 다그치며 대답을 재촉했다.
“아…. 그게 심태준 오라버니가 설득이 어려울 듯해서요. 며칠 뒤인 8월 16일에 건국동맹과 농민동맹이 연합해서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을 하거든요. 근데 제 생각에는 적당히 일본군에게 정보를 주고 신뢰를 산 뒤에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더 현명할 거 같아요. 이것 관련해서 언니에게 도움을 좀 받았으면 좋겠어요.”
“아이고! 도와주고말고. 아니 그럼 당장 태준이 녀석을 불러다 그렇게 하자고 하면 될 일이 아니냐? 내가 한번 이야기해보마. 난 또 뭐라고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호들갑은 이 계집애.” 임영신은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아뇨, 언니 그 오라버니는 설득이 안 된데도요. 태준 오라버니는 빼고 이건 일단 언니랑 나만 알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부터 뜻이 같은 동료를 조금 더 모아서 진행하는 게 나을 듯하여요.”
임영신은 잠시 낯빛을 바꾸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래 향화야 네 얘기를 처음 들을 때는 많이 놀라기도 했는데, 그거 괜찮은 방법인 거 같다. 그게 바로 양놈들이 말하는 그 트로이의 목마인가 뭐 신가 하는 전략 아니냐?”이 말을 듣고선 김향화가 손뼉을 치며 꾀꼬리 소리로 넘어갈 듯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오호호, 그렇죠. 언니 역시 재치 있고, 똑똑하셔요.”
“내가 한동안 경성 바닥에 없었지만, 규식이는 믿을만하다. 장가갈 거라고 까불면서 요즈음 독립운동에는 손 떼려고 하지만 내가 부탁하면 이놈 성격상 모르는 척하지는 않을 거다. 언니 믿지?” 임영신은 짐짓 으스대는 태도로 말했다.
“언니! 저는 저 자신보다 언니를 더 믿어요.” 자신의 의도대로 되었는지 김향화는 무척 기뻐 보였다. 분 바른 얼굴에 어느덧 꽃이 폈다.
“요 귀여운 것, 그 대답 마음에 든다 참. 내가 내일 날 밝는 대로 규식이랑 만나고 나서 기별 주마. 자, 한잔하고 일어나자!”
김향화는 계산하고 임영신을 부축하며 가게를 나갔다. 자기보다 키가 큰 임영신을 휘청거리며 챙기는 김향화의 모양새가 상황의 진지함과는 맞지 않게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손님이 빠진 탁자를 치우며 생각에 잠겼다.
‘밀정(密偵)인가….’ 그렇다고 한들 내가 뭘 하겠는가.
나는 그저 뿌리가 깊게 박힌 나무처럼 이곳에서 언제나 그랬듯 자리를 지킬 것이다.
‘절대 손님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중석아, 꼭 이야. 이 아비와 약조해다오.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버지의 유언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렸다.
다음 날이었다.
“어서 오세요.”
“아이고, 주인장님 오랜만입니다. 곧 일행이 올 예정인데 일단 고갈비에 탁주 한 잔 먼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는 어제 임영신이 말했던 이규식이었다.
석쇠에 지글하게 두툼한 고등어 한 마리를 얹어 굽고는 비법이 담긴 양념을 요리 붓으로 살뜰히 발랐다. 가게 안은 어느새 구수한 생선 향과 알싸한 고추 향이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