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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끼 Oct 23. 2021

동방의 트로이 목마

#3





“그럼 네가 요즘 신경 쓰이는 그 고민이란 건 뭔데?” 임영신이 이제는 흥미로워서 구미가 바짝 당기는지 김향화를 더욱더 거세게 다그치며 대답을 재촉했다.


…. 그게 심태준 오라버니가 설득이 어려울 듯해서요. 며칠 뒤인 8 16일에 건국동맹과 농민동맹이 연합해서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을 하거든요. 근데  생각에는 적당히 일본군에게 정보를 주고 신뢰를  뒤에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할  같아요. 이것 관련해서 언니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아이고! 도와주고말고. 아니 그럼 당장 태준이 녀석을 불러다 그렇게 하자고 하면 될 일이 아니냐? 내가 한번 이야기해보마. 난 또 뭐라고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호들갑은 이 계집애.” 임영신은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아뇨, 언니 그 오라버니는 설득이 안 된데도요. 태준 오라버니는 빼고 이건 일단 언니랑 나만 알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부터 뜻이 같은 동료를 조금 더 모아서 진행하는 게 나을 듯하여요.”



임영신은 잠시 낯빛을 바꾸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래 향화야 네 얘기를 처음 들을 때는 많이 놀라기도 했는데, 그거 괜찮은 방법인 거 같다. 그게 바로 양놈들이 말하는 그 트로이의 목마인가 뭐 신가 하는 전략 아니냐?”이 말을 듣고선 김향화가 손뼉을 치며 꾀꼬리 소리로 넘어갈 듯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오호호, 그렇죠. 언니 역시 재치 있고, 똑똑하셔요.”


“내가 한동안 경성 바닥에 없었지만, 규식이는 믿을만하다. 장가갈 거라고 까불면서 요즈음 독립운동에는 손 떼려고 하지만 내가 부탁하면 이놈 성격상 모르는 척하지는 않을 거다. 언니 믿지?” 임영신은 짐짓 으스대는 태도로 말했다.


“언니! 저는 저 자신보다 언니를 더 믿어요.” 자신의 의도대로 되었는지 김향화는 무척 기뻐 보였다. 분 바른 얼굴에 어느덧 꽃이 폈다.


“요 귀여운 것, 그 대답 마음에 든다 참. 내가 내일 날 밝는 대로 규식이랑 만나고 나서 기별 주마. 자, 한잔하고 일어나자!”


김향화는 계산하고 임영신을 부축하며 가게를 나갔다. 자기보다 키가 큰 임영신을 휘청거리며 챙기는 김향화의 모양새가 상황의 진지함과는 맞지 않게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손님이 빠진 탁자를 치우며 생각에 잠겼다.

‘밀정(密偵)인가….’ 그렇다고 한들 내가 뭘 하겠는가.

나는 그저 뿌리가 깊게 박힌 나무처럼 이곳에서 언제나 그랬듯 자리를 지킬 것이다.


‘절대 손님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중석아, 꼭 이야. 이 아비와 약조해다오.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버지의 유언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렸다.



다음 날이었다.

“어서 오세요.”

“아이고, 주인장님 오랜만입니다. 곧 일행이 올 예정인데 일단 고갈비에 탁주 한 잔 먼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는 어제 임영신이 말했던 이규식이었다.

석쇠에 지글하게 두툼한 고등어 한 마리를 얹어 굽고는 비법이 담긴 양념을 요리 붓으로 살뜰히 발랐다. 가게 안은 어느새 구수한 생선 향과 알싸한 고추 향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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