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엄마인 내가 책육아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내가 책을 좋아하니 아이들도 책을 좋아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어주면 다른 것을 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다 책육아에 대한 자녀교육서를 읽어 보고 책육아를 했을 때 긍정적인 효과가 많은 것을 보고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더 강하게 와서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렇게 책육아를 해 온 지 이제 7년 차. 올 해로 큰 아이는 12살 초등5학년, 작은 아이는 10살 초등3학년이 된다. 큰 아이 6살 때 책 읽어주기를 시작하여 이어 온 것이 7년 차에 접어들었다. 7년 차에 접어든 지금 우리 집책육아의 풍경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6년 차였던 작년에는 혼자 읽기와 함께 읽기를 병행하는 책육아였다. 아이들의 나이가 11살, 9살로 둘 다 읽기 독립은 진작에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아직 저학년인 둘째 아이의 듣는 독서를 통한 읽기의 수월함을 높여 문해력을 키워주고자 읽어 주기를 계속했었다.
해가 바뀌어서 그런 것일까. 아이들은 그새 또 성장했고 이제는 읽어주기가 힘든 장편 시리즈물에 계속 도전하여 혼자 읽기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그전에도 푸른 사자 와니니 장편소설 3권을 읽어주었던 경험은 있었지만 이제는 10권짜리 장편에 도전하고 그것은 혼자 읽고 싶다 했다. 이제 읽어주기를 졸업할 때가 온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우리 집에서 책육아를 하는 이유와 지속할 수 있도록 했던 힘과 원동력은 어디에서 왔을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선, 처음부터 책육아라는 것을 알고 방향을 명확하게 잡아서 해 온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육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을뿐더러 여러 책을 읽고 방향을 조금씩 잡아 온 것은 많지만 책육아라는 이름이 거창할 뿐 그 실체는 단순하고 명확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책육아는 아이 스스로 책을 즐기고 좋아하는 평생독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 정의였기 때문에 책육아의 목적만큼 실행방법도 단순했다.
단순한 방법을 정리해 보자면,
아이들이 한글을 모를 때는 엄마가 읽어 주는 것
한글을 떼고 나서도 한글의 소리만 인지할 뿐 그 뜻이나 이야기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우니 계속 읽어 주는 것
스스로 이야기 책을 읽을 수 있고 내용 파악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는 아이가 혼자 읽을 수 있는 수준보다 조금 더 높은 단계의 책을 읽어 주어 듣는 독서로 귀를 열고 이해의 폭을 넓혀 줄 것
책을 함께 즐기고 재미를 느끼게끔 도와줄 것
단순히 읽어 주는 것을 큰 틀로 하고 함께 한 계단, 한 계단을 착실히 오르며 지금까지 왔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가 책 읽어 줄게 하면 각자가 좋아하는 책을 혼자서 읽으면 안 돼요?라고 큰 아이가 제안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엄마가 읽어 주는 것보다 혼자서 읽으며 깨우치고 책 속의 인물들과 호흡하며 알아가는 재미가 더 큰 시기가 온 것이다. 물론 읽어 주면 경청해서 잘 듣고 재미었어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한 번의 이벤트로 가끔씩 읽어 주어야 하는 때가 되었다. 둘째 아이는 형보다는 나이가 어려 아직까지 읽어 주면 재미있어하고 읽어 주는 것을 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둘째 아이도 이제는 곧잘 글밥이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고 재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큰 아이와 같이 혼자 읽기를 선호할 날이 올 것이다.
읽어 주기를 끝내고 혼자 읽기와 몰입에 들어간 아이들을 향해서 이제는 책육아가 끝난 것인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알 수 없는 양가감정과 서운함이 밀려왔다. 매일매일 읽어 줄 때는 힘든 적도 많았다. 몸이 아프고 지칠 때는 쉬고 싶기도 했다. 아이들이 더 읽어달라고 아우성일 때는 약속한 분량만 읽기로 하지 않았냐며 매몰차게 책을 덮을 때도 있었다. 목소리 연기도 지치고 읽어 줄 때는 입이 메마르고, 읽고 나서는 목이 아프며 허기가 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읽어 줘야 하나. 책육아의 끝은 어디인가를 물으며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기가 다 지나가고 읽어 주기의 끝이 보이는 때가 오고 있다.
읽어 주기가 끝났다고 해서 책육아가 끝났다고 할 수 있는가를 반문해 보았다. 답은 아니다. 였다. 읽어 주기가 끝났을 뿐 책육아의 새로운 장이 열렸고 시작되었다. 아이가 진정한 읽기 독립을 해서 원하는 분야의 책을 집중 공략하고 독서의 스펙트럼을 넓혀 가는 것. 스스로 책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유영하고 자신만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 것. 그래서 평생독자의 삶을 스스로 살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을 돕는 것이 책육아의 마지막 정착역이 아닐까 한다. 이제 정착역을 향해 출발지에서 출발한 것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는 스스로 출발하지 못하니 엔진을 달아주고, 차체를 점검하며 달릴 수 있는 준비를 해 주어 스스로 달릴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제는 스스로 달릴 수 있도록 격려하며 응원해 주고 최종 목적지를 향해 이정표를 제시해 주며 지치지 않도록 옆에서 함께 달려주는 일이 남았다. 그동안 엄마라는 차에서 같이 머무르며 달려왔다. 이제 자신만의 차를 가지고 달려가도록 함께 달려가는 일이 지금 우리 집에서 해야 하는 책육아가 아닐까. 엄마의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보며 시원하기도 섭섭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출산을 해서 아이가 엄마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점차 성장하며 자신만의 삶을 이루어가서 독립하는 것이 육아의 끝인 것처럼 책육아도 그러할 것이다.
함께 달리고 바른 이정표를 제시하기 위해서 엄마의 할 일이 예전 읽어 주기 책육아를 할 때와는 달라졌다. 여전히 재미가 있고 유익하며 수준에 알맞은 책들을 도서관에서 대여하거나 구입하여 공급해 주는 역할은 계속되겠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엄마가 함께 독서를 하며 엄마의 책 읽기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며 같이 읽으니 책의 내용을 자연스레 알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나누기가 쉬웠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가 읽는 모든 책들을 다 읽기란 힘들다. 그래서 같이 또 따로 읽되 엄마만의 책 읽기를 아이와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자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이야기하고 같이 읽게 된 책은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독서메이트로서 공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 집 책육아의 목적은 책의 즐거움을 알고, 스스로 책을 읽으며 새로운 분야를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고 평생독자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책육아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