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갱고흐 Nov 05. 2023

강릉과 감나무


강릉은 내가 마음이 헛헛할 때마다 찾는 장소 중 하나이다.

그곳에 사는 친구가 있기도 해서 항상 마음이 울적하거나 힐링이 필요할 때, 무작정 기차표를 끊고 스케줄을 확인한 후 새벽 기차에 몸을 싣곤 한다.

너 정말 자주 오는구나! 하면서 항상 데리러 와주는 친구의 말은 내가 좋아하는 말투 중 하나이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은? 먹고 싶은 건 있니?라고 물어봐 주는 문장도 말이야.

항상 차를 타면 바다를 외치는 나 때문에 주말에 오지도 않는 바다를 만날 간다면서 투닥거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항상 그쪽으로 운전해 주는 차는 다정했다.





이번에도 빽빽한 스케줄을 잡고 기차에 몸을 싣고 잠깐 글을 쓰거나, 선잠을 자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10월에 첫눈이라니! 같은 기차 안에 타고 있던 아주머니들이 내뱉는 말이 인상에 남았다.

하늘에 축복이 내리고 있다면서, 어쩜 그렇게 표현을 하시는 걸까?

평창에서의 첫 눈


출발할 때 남양주에선 비가, 평창에서는 눈이, 도착한 강릉은 구름 조금의 쨍하고 맑은 날씨였다.

항상 오는 강릉이었지만, 이번에는 나도 친구도 큰일이 많이 일어난 후여서 그런지 우리는 정말 여행하듯이 누비고 다녔다.

나 덕분에 여행하는 기분이 난다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한 말을 많이 나누며 걸어 다녔다.

이날은 유독 나무에 눈이 많이 갔는데, 가을에 가서 그런지 감나무가 여기저기 많이 펴있었다.

동그랗고 주황빛이 도는 감이 주렁주렁.

하나 따가도 모르지 않을까? 하면서 킥킥댔다.

예전 집에도 키웠었다면서, 처음에만 좋았지 나중에는 감 처리하느라 힘들었다고 친구가 이야기했다.


나는 너무 좋았을 것 같았을 텐데 말이지. 정말 계속해서 보면 질리게 되는 걸까?


파란 하늘에 감나무가 너무 예뻐서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감나무를 서울에서 보게 되면 네 생각이 날 것 같아. 서울에서 감나무를 볼 순 있을까?

나중에 나 강릉 내려와서 살까? 감나무 하나 심은 곳으로 말이야. 

그러면 나야 너무 조오치. 카페 투어 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거야.


감나무


감나무를 실컷 구경하고 주문진에 바다를 보러 갔는데 바다색도 너무 예쁘고,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가 세게 오는데 오히려 진짜 바다에 왔다는 실감이 나서 한없이 구경했다. 평소 같았으면 보이지도 않았을 조개껍질도 구경하면서 말이다.


주문진 조개껍질


우리의 아홉수는 너무나 힘들었다. 같이 부모님이 아픈 경험을 겪어서 그런지 둘 다 올해는 정말 힘들었다면서 술잔을 부딪혔다. 우리가 만 나이로 어려졌어도, 나는 올해 그냥 스물아홉 할 래. 다신 아홉수를 겪고 싶지 않아.라는 친구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은 시간이 조금 지나서 둘 다 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나도 그 상황에서 얼마나 아홉수를 생각하고 싫어했는지.. 미신일 수도 있지만 그 단어에 핑계를 만들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맞아, 나는 올해로 스물아홉 인 거고, 내년에 우리는 서른이 되는 거야. 새로운 시작인 거야.라고 내가 말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