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라톤에 슬슬 불이 붙기 시작하자 난 제일 빠른 날짜에 있는 괜찮은 마라톤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큰 대회는 벌써 신청 기간이 끝났고, 뭐가 좋을까 하다가 친구가 올림픽 데이런 2024를 보내줬다.
곧 파리올림픽이 열릴 시기였기에 스포츠 스타들이 와서 응원도 해주고, 구성품도 괜찮아 보였다. 10KM를 뛰고 싶었지만 역시나 한 발 늦어서 접수 마감. 그래 오랜만에 참가니까 5KM도 의미 있지 하면서 함께 5KM를 접수했다.
이것저것 구성품 택배를 받고, 친구네 집에 이틀 숙박을 하고 함께 새벽에 일어나 주스 한 잔을 마시고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부터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보니 괜히 반갑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의외로 사람들이 많아 물품을 보관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금방 끝났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몸을 풀지는 못한 채로 출발 라인에 끼여서 달리기 시작했다. 다닥다닥 붙어있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주차장을 지나 큰 도로로 우리를 안내했다.
와, 살면서 도로를 달릴 줄이야! 차가 쌩쌩 지나가는 옆에 내가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짜릿하고 재밌었다. 물론 잠시뿐, 우리는 곧 산책로로 진입했다. 매일 평지만 뛰면서 연습했던 나였는데 갑자기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심지어 새벽에 내린 비로 축축해진 땅을 달리니 넘어질 것 같아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산책하던 주민들은 달리던 우리를 보고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헥헥거리면서 남은 거리를 보면서 눈앞에 펼쳐진 오르막길에 눈앞이 흐릿해지기도 했다. 겨우 오르막을 지나 내리막길에 추진력으로 잠시 빠르게 달리면서 내려갈까 고민하다가 그러면 데굴데굴 굴러갈 것 같아 천천히 내려와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너무 습한 날씨에 기록이고 페이스고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아서 땅만 보고 뛰었다. 다시는 5킬로를 무시하지 않을게요를 마음속으로 얼마나 외쳤는지, 어디서 주워들은 용어로 업힐, 다운힐 대박이다를 외치면서 걷고 뛰고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피니시라인이 눈에 보여 전속력으로 들어갔다.
작은 탄성과 함께 빠르게 메달과 간식존으로 달려가 음료와 메달, 간식을 받았다. 손에 땀이 미끌거려서 옆에 있던 관계자분에게 음료 뚜껑을 열어달라고 부탁해서 한 입 마시니 그제야 시야가 트였다. 친구는 아직 달리는 중이어서 기록을 확인해 보니 집 근처 산책로에서 뛰던 결과보다 4분이나 빠른 결과가 눈에 보였다.
두 눈을 의심했지만 여실 없는 나의 결과였다. 4분이나 단축하다니! 5킬로의 첫 번째 목표는 30분 안에 들어오는 거였고, 안되면 35분 이내였는데 예상외로 코스가 힘들어서 35분 지났겠는 걸 하고 시무룩하게 열던 찰나였다. 이게 바로 대회빨인가 흠흠흠 웃으면서 친구를 기다렸다. 이러면 10킬로 잘하면 한 시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기대치를 한껏 올려버렸다. 부상 없이 둘이 완주를 하고 출근 후 바아로 다음 10KM 마라톤을 검색하기 바빴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건 썸머 나이트런 2024. 8월에 열리는 마라톤이고, 일명 치맥 마라톤으로 작년에 호평을 받은 마라톤이었다.
(끝나면 치킨과 맥주를 주는 마라톤이더라.)
마침 친구가 자취하는 하남 조정 경기장에서 열리는 마라톤이어서 친구에게 다시금 숙박을 부탁했다. 올해 마라톤은 올림픽마라톤으로 끝!이라고 선언한 친구는 그럼 사진을 찍어주겠다면서 흔쾌히 받아주었다. 2년 전 바다의 날 마라톤에서는 1시간 20분에 들어왔는데, 과연 이번에는 얼마 만에 들어오려나 하면서 썸머 나이트런을 접수했다.
훗날 이 마라톤을 최악의 마라톤이라고 말하고 다닐지 모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