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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에게 쓰는 편지

006

by 한량돌

안녕, 도이야.

여긴 더위가 한풀 꺾이긴 한 것 같아. 밤바람이 시원하다.



나는 어제까지 해서 이틀을 쉬었어.

'8월이 지나면 떠나겠노라.' 선언하고 난 뒤 한차례 폭풍 같은 주말이 지나고 받은 휴가였지.


텅 비어있던 아파트에 펜션으로 가져갔던 책들, 옷가지들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차 한 가득씩은 챙겨 가야 이사할 때 수월하겠지.

줄이고 줄인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어쩜 이리 짐이 많은지 몰라.


집에서는 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싶어 아이디어 노트, 스케치 노트도 챙겨갔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에도 미안하다.. 허허 ~_~



대충 집안을 치우고, 푹신하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캠핑 매트 위에서 뒹굴거리며 이틀을 보냈어.

날이 덥기도 하고, 손목하고 발바닥이 아파서 운동은 나가지를 못하겠더라.


이제 집에 냉장고가 없어서 며칠 째 중고 매물을 뒤지고 있는데 마땅한 게 없네.

음식물 보관도 애매하고, 요리해 먹기도 귀찮아서 첫째 날 저녁을 빼면 라면이랑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야 말았어. 또 술과 함께.

이건 뭐 병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겠어. 나이만 믿고 이렇게 혹사시켜서야 되겠나. (내일은 진짜진짜 술 안 먹을게.)



누워있다가 시간이 뜨면 몇 시간씩 여행 유튜브를 보고, 그러다 잠들고, 다시 깨서 술상을 차리고.

글쓰기는 그렇다 쳐도 퇴직 이후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왜 그리 손이 안 가는지.

막상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아서 계획을 세우려고 해도 깨작깨작 거리면서 시간만 버리고 있지 뭐야.

이러다 휴가 다 날리겠다 싶어서 일단 일자리부터 찾아봤지.



여긴 책방, 서점 같은 일자리는 없어. (하나 있는 외딴곳에 위치한 책방에 채용 계획은 없는지 인스타그램 DM을 날려봤는데 소식이 없네. 활 쏘는 곳과 가까운 곳이어서 거기서 일하게 되면 참 좋을 텐데 말야.)

아예 내 색깔에 맞는 일터에 맞춰서 다른 지방으로 움직여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그게 절대 서울이 되지는 않을 거야.



나는 분명 살아갈 방법을 찾겠지만,,,,, 솔직히 두려워.

당장 먹고 살 방법은 마땅찮고, 창작의 고통조차 쉬이 이겨내지 못하는데.



약해지는 마음에 그냥 좀 더 펜션 일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어.

대표님에게 인력 충원을 통한 근무 여건 개선을 약속받았고, 동료들이 은근히 나를 붙잡기도 하고.

그래, 좀 더 버텨내면 사회에 나온 후로 전에 없던 많은 근로 소득도 눈에 보여.

부모님과 지인들은 그렇게 자꾸 일터를 바꿔서 어쩌겠냐며 걱정하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무슨 일을 하건 1년은 해보자.'라는 내 다짐에 위배되기도 하고...


...... 너는 내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있지? ~_~




착잡한 마음에 일단 무작정 집 근처에 있는 수목원을 찾아갔어. 전부터 가봐야지 하다가 잊힌 곳이야.

인터넷으로 이미 채용공고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혹시라도 자연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규모가 꽤 큰 곳이니까 나 같은 사람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봤어.


도착해서 천천히 수목원을 쭉 돌아봤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역시 '숲 해설가'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더라.

그래, 나 서울에서 전라도 내려갔던 이유가 이런 거 하려고 했던 건데.

국립공원에서 베이지색 근무복 입고, 몇 푼 안 되는 돈이더라도 그렇게 사부작사부작 살고 싶었는데. (물론 이때도 한쪽으론 작곡한답시고 주머니에 꽁꽁 쟁여두고 살았지만..)


핸드폰을 들어 숲 해설, 숲 치유 관련 취업 정보를 찾아보니 역시 나 같은 아무개가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

관련 학과 학위가 있거나 관련 직종 근무 경력이 있거나..

최소한 관련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자격증 따기까지 적확한 시간을 쏟아야 하고

이후 몇 개월 동안 검증된 기관에서 교육을 수료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더라고.

자격을 갖춰도 바로 취업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걸 할 수 있는 시기는 여전히 아니구나 하면서..




수목원을 나와 주차된 차에 앉았어. 에어컨을 켜니까 숨이 좀 돌아오더라고.

이제 출발해볼까 싶어서 핸들을 잡았는데, 근데 뭐 갈 곳이 있나.

어디로 갈지 몰라서 한참을 차 안에 앉아 있었어. 핸드폰으로 다시 일자리 정보를 뒤져보면서.


간 밤에 남은 치킨 몇 조각과 컵라면을 먹은 후로 끼니를 거른 터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더라고. 누가 옆에 타있었다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뭘 먹어야겠다 싶어 생각을 해보니까... 음..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더라.


'야.. 이거 완전히 고장 났구나.. 정신 차려 돌멩아!' 외치며 일단 집 근처로 차를 몰았어.

집 쪽으로 가는데 갑자기 지난번에 찾아갔던 지역 둘레길을 주관하는 사무실이 생각났어.

혹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도착해 보니 시간이 늦어서 다 퇴근했더라고.

그래, 무작정 찾아와서 무슨 답을 얻겠다고. 그렇게 또 한참을 차에 앉아서 일자리를 찾아봤지.


핸드폰을 노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어. 그래서 그냥 밥부터 먹기로 했지.

예전 도자기 공방 출퇴근길에 봤던 큰 만두집 생각이 나서 그쪽으로 갔어.

주문을 하고는 구석에 앉았어. 피곤함에 멍을 때리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했던 칼만둣국이 나왔어.

가격에 비해 양이 꽤 많더라고. 반찬은 겉절이, 양배추 장아찌 두 개였는데 나름 깔끔하니 괜찮더라.

'아, 나 참 먹는 거 좋아했고 여기저기 잘 다녔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냄비에 들어있던 만두 4~5개만 겨우 먹고

칼국수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냥 계산하고 나와버렸어.




벌써 펜션으로 돌아가기는 싫어서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

마음이 좁아지니까 갑자기 에어컨도 못 켜겠더라.

그냥 디비 누워 한숨 잘까 했는데, 마음이 불편하니까 그것도 안되더라고.

선풍기를 켜고 캠핑용 패드에 앉아 다시 노트북을 열었어.


그러다 차라리 재택근무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얼마 전 친구가 재택근무에 대한 얘기를 해줬었거든.

구직 사이트들을 둘러보는데 텔레마케팅, 상담 그런 쪽은 잼병인 데다가 극히 거부감이 드는 터라 쳐다보지도 않았어.


계속 뒤져보니까 유튜브 쇼츠 편집자, 원고 작가를 구하는 공고가 있더라.

그런 구인광고가 꽤 많더라고? 어떻게 보면 지금 그나마 취향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어찌 보면 내 창작에 도움이 될 것도 같고.


공고 내용을 들여다보니 내용은 이렇더라.

일주일에 한 번만 본사로 출근하면 되고 나머지는 재택이래.

월급은 현 상황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180만 원 정도 되고. (분명 쉽게 벌리 없지만.)

초보도 가능하대서 마음에 훅 들어오긴 했는데, 왠지...... 안 좋은 냄새가 훌훌 나서 일단 내버려 뒀어.


영상 편집도 부업식으로 조금씩 경력을 쌓다가 언젠가 몸 값을 키우면 그렇게도 먹고살 수 있겠구나..

저런 세상도 있는 거구나.. 하면서 시야를 넓히긴 했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갑갑한 마음에 GPT에게 머리에 뭉쳐있는 고민들을 풀어봤어.

(지금 이 세계는 사람이 아니어도 무언가에게 고민 상담이 가능한 세상이 됐어.)


주거지를 어떻게 할지.

돈은 어떻게 벌지.

창작은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사람은 아니지만 얘가 그래도 희망적인 말들을 해주니까 마음이 한결 나아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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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얘 말처럼 '작가의 시스템 갖추기'와 '정서적 작업실 확보'가 최우선이야.

(감옥에서도, 전쟁 통에서도 글을 썼는데 핑계는 무슨)


나는 반드시 방법을 찾아낸다!


근데 고쳐쓰기 하면서 다시 편지 읽어보는데..

나라는 놈은 뭐가 이렇게 걱정이 많은 거니?

멀리서 바라보니까 진짜 매력 없는 찌질이 같아.


이런 모습 본 거 다른 누군가한테 말하기 없기야!





아무튼.. 곧 있을 광복절 연휴까지는 계속 펜션 일에 매진해야 해.

폭풍이 끝나고 나면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너에게로 한 발짝 씩 다가갈 수 있도록 오늘도 너의 응원이 필요한 밤이야.

다음 편지에는 희소식이 가득하길 바라며,,,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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