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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야 안녕! 오랜만일세.
요즘 참 무덥고, 무덥다. 벌써 중복이래. 시간이 훨훨 날아가는 것 같아.
지긋한 비가 그치고 나니, 이젠 숨 막히게 더운 날씨가 연이어 바턴 터치를 하고 있어.
이 여름엔 너나 나나 검게 그을린 피부가 당연한 거겠지?
매일 씻는 게 당연하지 않은 너의 일상에 비하면, 난 실내에서 만큼은 에어컨 펑펑 켜고 살면서.. 배부른 소리긴 해.
난 오늘 있잖아.
8월까지만 일하고 그만두겠다고 했어.
또 도망치는 거냐고? 뭐,,,, 그런 셈이지.
근데 죽겠는 걸 어떻게 하니.
누군가에게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멀어지는 여름 휴가지만, 나에게는 숨 막히는 한 여름의 시간이야.
폭풍이 오기 전 방전됐던 배터리는 아무리 충전을 해도 30%에서 더 올라갈 기미가 안 보인다고.
내 퇴사 선언에 뺨을 제대로 맞은 대표님은 이런저런 제안을 하고 있어.
상주직은 따로 구할 테니 출퇴근하면서 지배인을 해달래. 최대한 업무 부담을 줄이겠다면서.
일을 다 끌어안고 버티다가 결국 터뜨려버린 내 과오가 크고, 결국 그게 이 조직에서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생각에 괴로워.
하여간 인력 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닌가 봐. 모자란 재주인데도 내 편의를 봐주면서 잡으려고 해 주셔서 눈물 나게 고마웠네.
그렇지만 나를 붙잡는 고마움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동료들에게 돌아가는 업무 부담, 일터에서 부정적인 기운을 퍼뜨리는 그런저런이런 느낌.. 그런 게 더 커서 이미 정리되어 버린 내 심보를 달랠 수는 없을 것 같아.
밥 챙겨주는 주인 할머님은 자기가 강원도에 땅이 있는데, 그런 데서 사는 건 어떠냐고 반 진심조로 말을 하셔. ㅋㅋ...
그러면서 젊을 때는 그냥 돈만 보고 살으래. 그러다 50살 정도 먹고 나서부터는 너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는데.. 당장 그게 귀에 들어올 리가 있나.
난 이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보지 않을래. 이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확신이 들거든.
그래, 난 '평온함'을 최우선으로 두고 내 템포대로 삶을 살고 싶어.
그래야 짧은 글 하나라도 더 쓰고, 늦은 밤에 술 담배에 기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거든. (오늘도 술 담배에 절어있는 건 비밀이야.)
알아. 못 미더운 거.
그래도 응원해 줘. 넌 나의 분신이잖아.
이 뜨거운 2025년 여름이 지난 후엔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분명한 건 난 이제 핸드폰을 두 개씩 들고 다니는 일은 물론이고, 핸드폰을 업무에 활용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가능한 정신과 육체를 가볍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
그런 일이 있을까? 제발 내가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어.
어디 공원 관리원, 아니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일하면 좋으련만. (또 해보지도 않고 분명 만족스러울 거라 지레짐작하고 있어.)
다행히 집 전세 계약이 내년 겨울에 끝나니까 아직 환경적인 여유는 있다고 생각해.
돈이 급하면 저번처럼 물류센터나 나가지 뭐.
아아.. 일단 내가 한 달에 최소한 얼마를 벌어야 하는지 계산부터 때려봐야겠어. 이젠 진짜 해야 해.
소비를 최대한 줄여야지. 망할 보험, 상조 그런 거부터 다 없애고 싶다.
짐도 최대한 줄일 거야. 떠나고 싶을 때 훌훌 떠날 수 있도록.
지금 펜션에 내 가구, 전자제품들을 팔거나 기증한 터라(추후 짐을 줄이겠다는 다분히 의도된 계략이었지.. ㅋㅋ)
낡은 아파트로 다시 돌아가면 자그마한 냉장고나 하나 두고 살려고.
세탁은 근처 코인세탁소 쓰면 되겠지.
여기 관두고 나서 가족들과도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해.
버튼 몇 번만 누르면 부모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거 이거 훗날 얼마나 후회하려고 이렇게 무뚝뚝한지.
그냥 의무적으로 최소 2주에 한 번은 얼굴 비추려구.
부모님 때문에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온 것도 있으니까.
아무튼 간에 아직 나는 폭풍 속에 있어.
'7말 8초' 여름휴가 기간 중에 이제 '7말'이 지났어.
끝이 희미하게 보이긴 해. 그만둔 이후에는 아직 어떻게 살아갈지는 모르겠다만.
한 달 까짓 거 금방 가니까 가뿐한 마음으로 일 해야지. 어디 갇혀서 부당하게 일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돈 받을 거 다 받고 있는데.
아, 맞다 도이야!
나름 희소식이 있어.
저번 5월 달에 소설 글감 얻을 겸 몽골에 다녀왔거든? 그래, 그 유목민들 있잖아.
친동생들과 같이 간 여행인데, 거기서 찍은 영상을 어제 새벽 한 시 정도에 드. 디. 어. 완성했어.
작업 기간을 보니까 거의 석 달이더라. (영상 퀄리티는 그냥 그래.)
재생 시간이 1시간 40분 짜리긴 하지만,, 지인짜 오래 걸렸다. 다행히 동생들도 재밌대.
아무튼 나도 삼보일배하는 심정으로 쪼끔쪼끔쪼끔씩 앞으로 가고 있다고! 너만 성장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물론 작년에 찍은 '청평 둘레길 영상', '수원화성둘레길 영상', 올해 퇴사하고 갔던 '대만 중부 트레킹 영상'이 남아있긴 해 ㅋㅋㅋ 아,, 진짜 난 신나게 놀러 다니고 편집자가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12시가 다 되어가네.
이젠 그만 누우러 가야겠다.
도이야. 얼른 널 보고 싶어. 역시 못 미덥겠지만 진심이야.
처음 이야기를 만들었던 그때에서 5년을 지나 이제 6년 차에 접어드는..
묵혀놓은 너의 이야기에 내가 매진할 수 있도록 나를 응원해 줘.
오늘은 너도 이슬에 몸 젖지 않는 편안한 곳에서 쉬기를 바라며.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