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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Sep 07. 2021

해결하고자 하는 늪

 글을 쓰는 내 모습이 너무 대견해 보여 친구들에게 링크를 보내주곤 했다. 물론 10명 중 8명은 관심이 없다. 그나마 유일하게 읽어주는 놈이 하나 있긴 한데, 그는 차갑다.


"그래서?"

"응?"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

"그러니까 읽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읽을 수 있음?"


 냉철한 놈. 정독, 다독, 여러 번 읽으라는 훈수가 싫어서 쓰기 시작한 글인데, 결국 나도 별수 없음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결책을 제시하자니 그가 흔쾌히 받아들일까. 운이 좋아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책을 읽으라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 하는 근거가 있다. 우리는 이 말이 너무 지당해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훈수엔 확신과 명령이 함축되어 있고, 그 자체로 힘이 있다. 얼핏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여야만 할 것 같지 않은가. 화자처지에서도 조언하는 상황에 놓인 것만으로 아주 당당하다. 행여나 듣는 이가 귀 기울이는 걸 인지한다면, 화자는 점점 더 과감해진다. 그래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라.'식의 당위를 나타내는 표현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마치 겪지 않은 걸 겪은 것처럼 말하도록 설계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는 책과 성공의 인과 관계를 그렇게 쉽게 말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시간 앞에서 당위는 무용지물이다. 돌아서면, 안 보면 그만이니까. 일상에서 청자가 그저 듣는 척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는 화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듣는이의 눈은 초점이 없는 동태의 그것과 같다. 책에서 말하는 '좋은 말' 들이 쉽게 잊히는 것도 같은 원리지 않을까. 조언이 함축하는 무게가 가벼울수록 더 빠르게 잊힌다. 결국 아무리 몸에 좋고, 마음 좋은 말일지라도 무슨 소용이겠는가.


 누가 누굴 가르칠 거며, 조언하는 대로 단순히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그런 당위를 나열하자니, 차라리 투자자들 앞에 놓인 상상을 한다. 그래야 가지 않은 길을 가본 이처럼 말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오늘 프레젠테이션 이후 투자자들은 구독과 좋아요, 댓글, 알림설정을 결정할 것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발표 중인 민수씨의 긴장이 보였다. 그가 레이저를 쏘기 위해 오른팔을 들 때마다 땀에 젖은 겨드랑이 부분이 신경 쓰였다.


 "네, 저자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공감이 많이 갔어요. 생각보다 책을 사놓고 읽지 않는 이들이 많더군요."

  정하선 시인의 말에 그는 가볍게 웃으며 숨을 뱉었다.


 "감사합니다."


 이어 이필립이 날카롭게 물었다. 그는 1만명의 구독자와 함께하는 칼럼니스트다.  


 "저는 산문꾼님 하소연으로밖에 안 들리던데..그래서 해결책은요?"


 회의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가웠다. 빔프로젝터의 빛이 스크린에 반사되며, 붉어지는 민수씨의 얼굴을 비추었다. 이윽고 민수씨가 입을 열었다.


"음... 저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싶어요."


 장내가 웅성거렸고, 정하선 시인은 웃음을 머금었다. 이필립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조소와 실소가 뒤섞여 민수씨의 목을 조이는 것 같았다. 민수씨는 나에게 손짓하였고, 그의 요청대로 나는 회의실의 불을 켰다. 민수씨의 눈빛은 아까와는 달랐다. 그는 더이상 수줍어하지 않았다.


"일단 시스템에 몸을 맡겼습니다. 노력은 하고 싶을 때 해도 늦지 않아요."


 딸각 소리와 함께, 다음 장이 넘어갔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4장에서 저는 연속성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1년 전 구독했던 유튜브를 여전히 보는 중이며, 아무리 피곤해도 출근하고, 어떻게서든 시간을 내어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려하죠. 아무리 바빠도, 피곤해도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그것. 그게 바로 연속성입니다."


 투자자들은 집중했다.


"연속성을 굳이 나열하자면, 의지와 시스템, 그리고 체력인데, 시스템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핵심은 노력은 거드는 정도에서 멈춰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유튜브도 끄고, 술도 안 마시고, 데이트도 미룬 채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곤란하거든요."


 딸각 소리와 함께 그는 계속 말했다.


 "내가 한 노력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섬세하게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 노력과 정성에 보상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잘 읽히지 않았을 때 우리는 좌절하거든요. 기회비용들이 너무나 아깝습니다. 하지만 보상심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그런 부담은 덜 해질 수 있습니다."


 화면엔 목차가 나열돼 있었다.


1. 보상심리

2. 스승

3. 글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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