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독서는 시험공부가 아니니, 기말고사 치르듯 읽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왜 책을 읽으려고 하는가. 그것은 지식을 채워줄 수 있고,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돈을 벌어다 줄 수도 있겠다. 이유가 다양하니 뭉뚱그려 성장이라 하겠다. 사실 이 말은 자주 쓰면 진부할 수 있어 지금껏 아껴왔던 말이다. 하지만 독서와 성장은 떼려야 뗄 수 없기에 오늘만큼은 나도 한번 말해보려 한다.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걸려있는 멋진 아포리즘이다. 독자는 책을 읽고 (좋게) 변화하고, 그렇게 바뀐 이들이 또 (좋은) 책을 쓰게 되는 긍정의 순환. 나에게도 책이란 절대 선(善) 그 자체였는데, 경험과 성장의 인과관계가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였다. 한 사람의 시간과 공간은 한계가 있기에,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부분은 책으로 채우자는 것. 그래서 역사를 되새기고, 문학을 겪으며, 철학을 생각해야 하는 지당한 말씀이랄까.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
이 말은 마치 변수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지는 함수 같다.
1차 함수는 y=ax+b (a,b는 상수, a≠0 a>0)와 같이 x의 함수 y가 x의 일차식으로 표시된 함수이다. x값은 변하는 수이며, 내가 사두었던 책들이다. 당연히 책을 많이 읽을수록 x값은 커질 것이며, 결과적으로 y 값도 늘지 않을까. 인풋을 늘려야 했다. 그런 성장을 꿈꾸었고, 꾸준히 책을 샀다. 하지만 나는 뻗어 나가는 함수처럼 우상향하지 못했다. a와 b 값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일차함수에서 a는 기울기를 나타낸다. a 값이 크면 클수록 그래프의 기울기는 가파르다. 나는 a를 편향이라 정의했다. 값이 커질수록 가팔라지는 모습이 인간의 콧대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그렇지 못한 마음. 그래서 편향 값 a가 큰 사람이 자기를 계발하고 정진하는 데 힘쓰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내가 그랬다.
남들은 그냥 뚱뚱해지는 게 싫어서 다이어트를 하는 거고, 나는 좀 복잡하다. 건강이 우선이고, 할 줄 아는 운동을 만들고 싶다. 유럽의 중산층처럼 직접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운동을 하다 보면 겸사겸사 살도 빠질 테니 운동을 배워야겠다.
시험과 스펙을 위해 하는 영어는 무미건조하다. 얼마 전 해외여행을 다녀왔더니, 영어 필요 현상이 생겼다. 내가 배우고 싶은 영어는 소통을 위한 언어다. 다음 여행까지 외국어를 어느 정도 배워 놓으면 여행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편향은 위선을 낳는다. 매번 책을 살 때마다 나는 나의 그것을 보았다. 내가 고른 책의 특별함, 나의 취미가 고상하다는 우월감, 제목만 알고 있을 뿐인데 읽은 것 같은 착각. 이 엄청난 의미부여가 완벽을 초래하며, 실속을 갉아먹는다. 가령 <사피엔스> <코스모스> <총 균 쇠>는 그 두께만 해도 너무 있어 보였고, 국민 필독서이니 언젠가 읽을 날이 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책장에 꽂혔을 땐, 제구실을 못한 채 먼지만 쌓여갔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사며 갈증을 느꼈다. 내 안엔 분명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건 정말 사소한 이유겠지만, 책을 사는 데 나름 한 몫은 하고 있어 b 값으로 정했다. 인정 욕구 혹은 뽐내기. 만약 장르가 힙합이었다면, b 값을 swag이라 부르겠다.
일차함수로 나타내면 어떨까. y=ax+b(a,b는 상수, a≠0, a>0)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a는 곱셈이기에 배로 늘지만, b는 그저 더해지는 정도다. 그러니까 b는 a보다 y값(결과값)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일상에선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단언컨대 SNS는 이 시대 최고의 발명이다. 유명인들만이 티비에 나와 누리던 자랑을 이제는 누구나 누릴 수 있다. 일요일 아침 조명이 예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업로드 할 생각에 벌써 손이 근질거린다. #북스타그램 #여유 #일상 #독서
책을 사는 재미, 결제하는 순간의 짜릿함. 이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 여기 또 있었다.
그렇게 나의 y값이 만들어졌다. 나는 세상의 중심에서 착각을 외쳤고,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y 값을 '아집'이라 불렀다. 앞날이 불안해졌다. 나 혼자 읽는 독서에 점점 더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보게 되겠지. 쌓여가는 책만큼 커지는 아집은 나를 점점 더 비호감으로 만들겠지. 한편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우상향의 그래프는 치솟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책 결산이 낯뜨거워졌다. 일 년에 몇 권을 읽는지, 이 책을 읽었는지 아닌지는 성장이 아니었다. 엑셀 차트에 기록된 책 제목과 별점이 허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결과론보다 차라리 읽고자 할 욕망을 살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