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꾸준히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은 <이젠 정말 책 좀 읽고 싶다>의 연재를 시작할 무렵 아이가 태어났거든요. 벌써 100일이 다 돼가네요. 어쩔 수 없이 4년 동안 참석해 온 북클럽을 쉬기로 했고, 책에서 손을 뗀 지 벌써 3개월이 되었네요. 그래도 육아와 육아 사이에서 시간을 쪼개며 마감일만은 지켜왔습니다. 아참, 생색내려고 쓴 글은 아니니 오해하진 않으셨으면 해요. 오늘 글은 그냥 노파심에 써봤습니다. '이런 열정이 또 다른 업보를 치르진 않겠냐'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우리 아이가 책을 읽을 만큼 크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한 10년 뒤쯤이면 책의 장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그래서 독서의 참됨을 설파하는 으른이 될 수도 있겠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빠가 말이야. 아무리 바빠도 자투리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책을 읽고, 글을 쓴 사람이야."
여기서 더 힘껏 쓰다 보면 이런 의심조차 들지 않을까 봐 미리 기록해두려 합니다. 그러니까 독서의 뒷모습을 말하는 저의 고해성사 정도로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렇게 독서모임을 시작하며, 저는 정말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데드라인은 잘만 쓰인다면 최고의 독서법입니다. 모임에 나가는 날이 마감일이에요. 그때까지 읽기로 한 책은 다 읽어야 할 말도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죠. 책 읽을 시간을 낼 수밖에 없는 환경 덕분에, 2주에 한 권씩은 읽게 되더라고요. 책장에 쌓아두기만 했던 책들이, 앞부분만 읽고 덮었던 것들이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더군요. 이왕 읽기로 한 거, 구글링도 해보고 유튜브 검색도 하다 보니 더 잘 읽혔습니다.
단기간이긴 했지만, 다른 독서모임도 가입했어요. 2배로 읽겠다는 기대와 함께 모임 2개를 오갔죠.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 숙제가 늘어나니 주어진 시간을 더 조여야 했어요. 2주에 한 권씩 읽던 책을 일주에 한 권씩 읽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제 삶의 패턴은 하나둘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스마트폰을 끄적이며 보냈던 시간은 잠시 멈추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회사도 다녀야 했고, 친구도 만나며, 데이트도 해야 했는데 이마저 할 수가 없었어요. 숙제하느라 일상에 소홀해지기 시작했죠.
'반드시 다 읽어야 한다!'
강박은 위험합니다. 과정이 없죠. 오로지 결과만을 향합니다. 자연스럽게 주와 객이 바뀌더군요. 당연히 책의 내용이 들어올 리가 없죠. 내가 어떤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사실만 중요하고, 한 달에 4권을 읽었다는 자체가 중요 해집니다. 학창 시절 요약노트 같은 거예요. 그냥 나만 알아보면 되는 건데, 행여나 누가 내 노트를 들춰볼까 봐, 아니 바라봐주길 바랐던 거 같아요. 가지각색 펜으로 한 땀 한 땀 정자로 글씨를 쓰며, 세상에서 가장 예쁜 노트를 만든 적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하여야만 만족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무얼 정리했는지 피드백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도 않았죠. 이제 보니 글씨 연습만 한 꼴이네요.
이렇게 책을 읽다 보면 실력과 무관하게 허영심에 취할 수 있어요. 일단 책상에 앉아 있으니 뭔가 바람직해 보여요. 예전에 시험기간에 책상에 앉아있으면 엄마는 공부하는 아들을 대견해하며 사과를 깎아 주셨습니다. 제가 그 시간에 졸업앨범을 보는지, 멍을 때리는지 알 턱이 없죠. 어쨌든 똑같이 책상에 앉아 있다 해도 세상 사람들은 독서를 더 후하게 쳐줍니다. 그래서 읽는 이는 착각할 수 있죠. 읽고 있는 동안 꽤 대단한 걸 하고 있다는 안정감에 사로잡힌 채 말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별로였던 건, 책을 통해 무얼 얻겠다는 목적을 가졌을 때였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인과 결과의 딜레마입니다. 가령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 격언을 분해하자면 그 구성은 a→b입니다. a는 원인이고, b는 결과죠. 덧붙이자면, 투입했더니 산출되는 원리죠.
일찍 일어나는 새(a)가→ 부지런하니까→ 벌레를 잡아먹는다(b)→ 그러니까 부지런해지세요.
모든 책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사람들에게 잘 읽히는 베스트셀러는 a→b 구성을 따라가는 거 같아요. 이런 책들의 특징은 가치를 뽑아내기 비교적 쉽습니다. 저 속담만 보아도 자연스럽게 부지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일찍 일어나면 꼭 벌레를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괜찮은 삶의 기준을 '부지런'이라는 프레임에 맞춘다는 거죠. 덤으로 부지런하지 않은 저는 잘 못 사는 거 같기도 해요.
그렇다고 부지런하기가 쉬우냐, 그건 아니죠.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저도 머리론 이해합니다만 몸은 따라가지 못하거든요. (물론 못하는 제가 바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현실에서도 인과를 너무 당연하게 바라보면 어찌하겠느냐는 걱정은 기우(杞憂)일까요. 잘 읽히는 책들은 원인을 분석하며 해결책을 찾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이 아들에게 말하던 대사가 생각나네요. 아들이 재학증명서를 위조했고, 어차피 내년에 그 대학에 입학할 거니 미리 한 거라고 말하는 상황입니다.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이 말은 저에게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겨우 몇 장 읽은 노력으로 세상사를 깨달으려는 게 우스꽝스러웠고, 책장을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하루 지나니 까먹던 내 다짐은 해학이었고, 누군가 정한 인과를 곧이곧대로 믿었다는 게 풍자였기 때문이죠.
이렇게 허술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멘탈은 온전했겠냐고요. 필요 이상의 좌절을 떠안았고, 자존감도 깎였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는 말을 믿는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공부라는 말 대신 어떤 말을 넣어도 스스로 좀먹어가는 인과관계네요. 그러나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인과관계도 마찬가지잖아요. 그걸 저리 쉽게 생각했다니, 저의 오만이었죠.
차라리 저는 a←b 구성을 택하겠습니다. 'b를 했는데, 하다 보니 a를 발견했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거 같아요. 이게 무슨 말장난 이겠냐지만, 현실에서는 이게 더 설득력 있더라고요. a←b 구성은 '인과'보다 '운'에 가깝습니다. 운이 좋아 원인(a)을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원인 중 하나를 발견한 거죠. 앞으로 b를 위해 a를 엄청나게 갈고닦을 필요가 없죠. 계획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요. 그저 무수히 많은 a를 관찰하며 괜찮은 원인이 있었나 지켜보는 거죠. 그게 바로 과정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제가 책을 읽으며 발견한 a를 공유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