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잔소리하지 않는다

『프레드릭』서평

by 산문꾼
ricky-kharawala-10194-unsplash.jpg Ricky Kharawala on Unsplash


그 쥐가 나에게 다가오기 전까지 그것은 <개미와 베짱이>의 아류작에 지나지 않았다. 주제를 머리로는 알겠는데, 납득하기엔 조금 시시했다. 그 후 이 책을 두고 1번의 독서토론과 1번의 글쓰기 모임이 있었다.

‘다 큰 어른들이 그림책을 가지고 토론이라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끄러웠다. 종종 예전에 쓴 일기가 낯 뜨겁듯, 나는 내 오만과 냉소를 똑바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프레드릭』은 들쥐 친구들이 봄에서 겨울까지 한 해를 보내는 과정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삶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보여주며, 예술의 중요성을 말하는 그림책이다. 그림책의 묘미는 여백이다. 마음이 쉬었다 갈 빈자리를 놓칠 뻔했으니, 얼마나 운이 좋았던가. 나에게 프레드릭은 어떻게 쉼터가 될 수 있었을까.


사실 나는 예술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예체능은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학계의 전설 때문에 접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평범한 인문계 학생으로서, 성공은 못해도, 중간은 가는 것. 그게 나의 삶의 동기였다. 덕분에 난 중간 값을 취하기 위해 비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나보다 좋은 학교를 졸업한 이들을 부러워하고, 월급쟁이들의 도토리 키재기식 연봉 비교에 안심하고, 불편해하며 중간 값에 한없이 수렴하려 하고 있었다. 프레드릭은 이런 나에게 따끔히 말한다.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들쥐들이 물었다.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세상에. 그가 한 것이 일이었다니. 일은 생산하고, 유통하고, 운반하며, 먹고 자고 입기 위한 것들의 무엇인데, 프레드릭이 하고 있는 것도 일이었다. 그가 모은 햇살 덕분에 우리는 위로받고,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며, 희망을 품는다.


페이지를 넘기니, 풀밭을 내려다보고 있는 프레드릭의 뒷모습이 보인다. 솔직히 관찰에 훈련되어 있지 않은 나는 쉽게 지루해하곤 한다. 길에 핀 야생화보다 잘 편집된 인스타그램 속 사진이 더 예쁘다. 천천히 곱씹으며 바다의 향을 음미하고, 상상하기보다는 맛집 앞에 줄 서고, 먹기 전 인증사진 찍고, 허겁지겁 음식을 비우고 식당의 회전율에 기여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관찰했다. 사실, 대부분의 예술은 은유(metaphor)라는 장치로 인해 작가의 의도가 꽁꽁 숨겨져 있다.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데, 빨리 뽑아내려 하니 냉소 또는 좌절로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세 또는 적성 불일치. 프레드릭과 함께 관찰을 훈련한다면 아름다움을 향유할 힘이 생기지 않을까. 비슷한 맥락으로 『공부 공부』의 저자 엄기호는 말한다.


주어진 것이 아니고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내가 김애란 같은 문장을 쓸 수 없으면 안 쓰면 된다. 대신 나에게는 그런 문장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내가 그 문장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한 이미 그 문장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에 충실하면 된다. 주어지지 않았고 주어질 수 없는 것을 가리려고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이 힘을 잘 활용하면 나는 아름다운 문장의 탁월한 향유자가 될 수 있다. -공부 공부-


그럼 어떻게 향유할 근육을 키울까. 첫 번째 “의미부여” 연습이다. 더 이상 의미를 우연히 발견하지 않고, 일부러 찾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프래드릭은 자신의 행위에 의도적인 의미를 기획했다. 색깔을 모으는 행위에 잿빛 겨울을 생각했고, 이야기를 모을 땐 동이 날 얘깃거리를 걱정했다.

영어권 사람들은 꼭 묻곤 한다. "How are you?" 나는 사실 이 말이 우리나라 정서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형식적인 물음에 내 심리를 너한테 공개하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 “그냥” 그렇다. 그냥에 익숙한 나는 그런 묻는 표현이 때론 낯간지럽다. 앞으로는 의도적으로 의미를 찾아볼까. 24시간을 잘게 쪼개 본다면, 생각보다 꽤 괜찮은 순간은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일부러 찾아야 한다는 것.


두 번째로 관찰한 것을 텍스트로 옮기는 연습이다. 유시민 작가는 텍스트를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해석이 필요한 모든 것(말, 글, 사진, 그림, 사건)"이라 정의했다. 프레드릭은 계절에 빗대어 말하며 텍스트를 통해 동료 들쥐 4마리 모두를 빛내 주었다. '말과 글'은 가장 기본적 텍스트로, 누구나 접할 수 있다. 이는 잘 버무려진다면 너무 아름다운 예술인데, 우리는 거창하게 배웠기에, 엄두를 못 낸다.


사고력과 논리력을 동시에 기를 수 있는 (독서) 논술학원, 효율적 다독을 위한 속독 학원,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웅변학원을 통해, ‘말과 글’은 쓸모의 맥락이 되었다. 그때그때마다 제출하고 검사받아야 하는 책 읽기는 노동이었다. 호기심을 갖기보다는 끝내야만 하는 것이니 흥미를 느낄 틈도 없다. 마치 경유차에 휘발유를 주입하듯, 연구소들은 우리에게 획득의 의무를 심어주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뭐라도 얻어야 했다. 주제, 교훈, 느낀 점을 단기간에 획득하려니, 성인이 된 오늘날에도 맥락을 파악하기 앞서 밑줄 긋고 돼지꼬리 치기 바쁘다.


한 인터뷰에서 김영하 작가는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주는 방법에 대해 말했다.


느낀 점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의 느낀 점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마세요. 만약 너는 무엇을 느꼈냐고 계속 묻는다면, 아이들은 독서를 통해 복합적이고 미묘한 즐거움을 포기할 것입니다. 엄마가 저책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길 바라게 되고, 보상과 칭찬을 위한 글을 읽을 거예요.


그동안 잔소리에 익숙했다. 우리는 사회가 정한 암묵적 기준 속에서 살고 있다. 제때 진학하고, 군대에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 출산까지 사회가 정해놓은 잔소리 속에서 바쁘게 살아왔다. 듣기 싫은 잔소리 겠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잔소리는 우리를 덜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잔소리는 목표로 “둔갑”해 불안 자체를 쳐다보지 않게 하는 착각이지 않을까. 오늘도 그대가 남들에 비해, 남들 보다, 남들처럼에 안심하고 불안하다면, 잠시 그림책의 공간에 쉬었다 가면 좋겠다. 예술은 자발적이고, 잔소리하지 않는다.『프레드릭』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운이 좋다면, 나답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프레드릭』,『공부 공부』, 인생학교 <삶의 의미를 찾아서>, 인생학교 <문화로 내 삶을 바꾸는 법>, 소설가 김영하의 인생조언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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