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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성 Sep 30. 2021

남겨진 전쟁

재외국민 등록이었는지 집을 구하러 왔을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라이프치히에서 혼자 베를린에 올라와 훔볼트 대학 주건물 앞에서 버스 정류장을 찾던 중 비를 만났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석조건물이 하나 있어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사람들이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찬찬히 둘러보고 있길래 무슨 기념관인가 싶어 나도 들여다봤더니 컴컴하고 텅 빈 공간 한가운데 조각이 하나 놓여 있었다. 한 여인이 아이를 품고 앉아 있는 형상이다. 여인의 머리 위 천장 한가운데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다. 그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져 어두운 색의 조각상은 점점 더 선명한 어둠을 띠었다. Neue Wache(신 경비대)는 1818년 건축되어 실제적으로는 왕궁의 경비대로, 상징적으로는 해방 전쟁 Befreiungskrieg의 기념비로써의 역할을 했다. 첫 번째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31년부터는 전사자를 위한 기념비로 사용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 거의 완전하게 파괴되었지만 분단 독일의 동독 정부(DDR)가 다시 지어 파시즘과 군사독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곳이 되었다(1960년).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의 조각 [죽은 아들과 함께 있는 어머니]가 여기에 자리하게 된 것은 1993년부터다.


보통 전쟁의 피해자를 생각하면 전투 중 전사한 군인들이 떠오르지만 전체주의라는 배경 때문인지 2차 세계대전이 그 후대에 남긴 이미지는 조금 다르다. 그런 맥락에서 케테 콜비츠의 조각상은 전장에 나가지 않았던 어머니(들)에게 전쟁은 무엇이었을까 질문하게 한다. 전사한 남편(들)이 남긴 빈자리, 부상으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아들(들)의 남은 삶. 이 모든 짐을 지고 사회를 지탱해 온 것은 결국 어머니들이었다. 영화 [황산벌]에서 유독 강한 메시지를 주었던 것은 계백과 그 아내의 대화 장면이다. 나라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대한 시점에 가족들을 모두 칼로 베고 전투에 임하고자 했던 비장한 남편에 맞서 자신과 자녀들의 생명을 위해 싸웠던 그의 아내. 상상 속에 연출된 극 중 장면이라고는 하지만 계백의 아내가 남편의 칼 앞에서 아이들을 등 뒤로 숨기며 던진 한 마디는, 대의라는 미명 하에 공명심을 채우고자 가족을 희생시키는 아버지들에게 주는 경고처럼 들린다. “호랑이는 가죽 땜시 뒤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뒤지는 거여.” 아버지는 나라와 자기 이름에 목숨을 걸고 어머니는 가족의 생명을 위해 목숨을 건다.


콜비츠의 피에타 [죽은 아들과 함께 있는 어머니]는 1차 세계 대전 중 사망한 자신의 아들에게 헌정된 것이었다. 아들이 죽은 후 23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의 일기에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나는 노인을 만들고자 했던 여러 조형적 시도들에서 비롯한 작은 조각상을 제작하고 있다. 그건 이제 다소 피에타와 같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녀의 무릎과 허벅지 사이에 죽은 아들을 놓은 채 앉아 있다.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반성이다.(1937년 10월 22일)" 이 작품이 2차 세계대전 피해자를 위한 추모비로 선택되었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 많은 비난과 논쟁이 있었다. 다른 전쟁에서 잃은 아들을 기리며 만든 조각상이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로 적합한지에 관한 논쟁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조각상에서는 두 번째 전쟁의 최대 비극으로 여겨지는 유대인 학살의 문맥도 읽히지 않았다. 사실로 보면 그와 같은 비판은 정당하다. 하지만 잠시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자녀를 잃은 어머니가 '더 이상 고통이 아닌 반성'이라고 쓴 일기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그것이 1차던 2차던, 세계 전쟁이던 작은 부족 간의 전쟁이던, 그 피해자가 특정 민족이던 아니던, 전쟁에서 사라진 모든 이들의 가족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지. 아버지들과 아들들의 전쟁이 남긴 흔적 속에서 어머니들이 싸워야 하는 전쟁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베를린에 다시 오게 되었을 때 케테 콜비츠 미술관을 찾았다. 아담한 건물 안에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가 눈이 아닌 몸에 기억되었다. 가난과 전쟁의 이미지로 가득 찬 그녀의 판화에 고취되어 있을 즈음 휴대전화로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 내전이 있는 나라에서 온 친구의 메시지였다. 친구는 집 건너편에 폭발이 있어 창문이 모두 깨졌다는 메시지와 함께 불꽃과 화염에 휩싸인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순간 머릿속에는 그 어떤 논리적인 말이나 위로가 떠오르지 않았다. 당장 내 눈앞에 총알이 빗발치고 폭탄이 터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디에선가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도 관심 없는 가난한 나라였지만 거기에도 기려야 할 영혼들이 있었다. 저 화염이 모두 지나간 자리에서 남은 가족들의 생명을 지켜낼 어머니들이 그곳에도 있었다. 복받치는 울음을 달래고 메시지로 가족의 안위를 물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겠노라 답한 후, 잠시 조용한 미술관 안에서 침묵 가운데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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