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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성 May 01. 2021

생계와 생산

프리랜서의 어려운 부분은, 정해진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없는 것이다. 시간의 불분명한 경계는 비효율적인 생산과 명목상 휴식의 악순환을 만든다. 하지만 그보다 생산효율을 떨어트리는 것은 생계에 대한 염려이다. 정기적인 수입의 보장 없이 한 두 번의 수입으로 일정 기간을 지내야 하기에, 업계에서 꾸준히 찾아주지 않는 프리랜서는 생활비 걱정이 습관이 된다. 생계에 대한 염려는 예술적 생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소홀해진 가장 큰 이유를 결혼과 자녀 양육으로 여겨 왔는데, 이제 와서 보니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관찰하고 사유하는 일에 게을러진 것이었다.


모든 생산과정에는 사유가 동반된다. 반복과 분업이 지배적인 생산도 훈련된 눈과 손발 외에 훈련된 기억과 결정의 반복을 요한다. 심지어 관료적이고 규정에만 따르는 행정적인 일 속에서도 찰나의 사유와 결정은 불가피하다. 공무원들은 '이것이 규정이기 때문에'라는 말을 '당연히' 하지만, 그 말과 행동조차도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있다. 학교나 직업교육, 혹은 매뉴얼에서 배울 수 없는 문장들이다. 그건 개인에게 주어졌거나 훈련된 공감과 사유의 실력이다. 사유하는 실력은 자신의 결정을 관료제의 책임으로 떠넘기지 않고 의지를 가진 한 인간의 결정으로 인식한다. 


프리랜서로서 생산의 게으름에 대한 책임을 생계에 대한 염려에게 돌리지 않으려면, 생계와 생산 사이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생계에 대한 다른 사유, 혹은 생산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그 둘은 화해를 이룰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애정을 전적으로 동력의 한 종류로 소개하고 있지, 결코 그 자체로 바람직하거나 고상하거나, 아니면 추상적으로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애정을 통속적인 경제학자들의 계산을 모조리 무효화시키는 통제 밖의 힘으로 해석한다. 혹, 어느 학자가 이 낯선 변수를 자신의 방정식 계산에 대입하고 싶어 한들, 이 변수는 그의 통제력을 벗어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애정이라는 변수는 경제학의 다른 동기와 조건을 모두 제거하고 홀로 남을 때 비로소 진정한 동력으로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존 러스킨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애정이라는 성질을 경제적 동력으로 간주했다. 경제적인 이익 증진을 위해 애정이 없는 기계들에게 생산을 맡김으로써 근대사회는 일부 눈에 띄는 부를 얻는 반면, 그에 비해 방대하고도 총체적인 가난을 생산했다. 그러므로 생산에 대한 개념을 정립함에 있어서 인간이 가진 성질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 점에서 나의 예술적 생산이 부진해진 좀 더 고상한 이유, 즉 생계나 생산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의미를 찾아보자면, 내 가족에 대한 애정이 예술에 대한 애정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서 다른 표현으로 변명해보자. 방에 틀어박혀 그린 그림으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재화가 주는 기대감보다, 경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식당 일이나 운전 아르바이트를 함으로써 당장 손에 얻을 수 있는 현실적 재화가 가족에게 주는 안정감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의 생산성은 일부 퇴보했고, 일부 발전했다. 지난 10년간의 작품 활동은 다른 작가가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정도의 생산량에 머물렀지만, 애정이라는 엄청난 변수가 예술가적 시선과 생산 욕구를 타인과 사회로 향하도록 고무했다. 그 안에서 나의 일과 쉼은 화해하고, 생산과 생계도 서로 포옹했다. 물론 평생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을 향한 나의 애정과 나를 향한 가족의 애정이 현실적인 균등을 이루는 때에는 내게 주어진 화가의 유전자가 기지개를 켤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아내가 애정 어린 목소리로, '이제 여보도 우리 걱정 말고 마음 놓고 그림 그려도 돼'라고 말해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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