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계절은 그것만이 가지는 뚜렷한 특징이 있으면서도 지나가는 과정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더욱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는 운명 같은 순환 속에 놓인 한정적인 시간이라는 것이다.
요즘 큰 아이가 부쩍 질문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처음 말을 시작하고 1 형식 문장 구성이 가능해질 때 엄청난 질문들을 퍼붓는데, 사실 그 궁금증의 대상은 다르지만 내용은 하나이다. "엄마/아빠 저게/이게 뭐예요?"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대상의 정체성, 그것들의 이름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조금 더 자라 아이들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왜?"라는 의문문이 추가된다. "저건 왜 그래요? 이건 왜 그래요?" 큰 아이는 이제 이 시기도 어느 정도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질문의 계절이 돌아왔는데, 요즘 아이가 나에게 던지는 대부분의 질문에는 이런 궁금함이 있다. "아빠라면?"
한동안 이 유형의 질문에 대해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다 주고 일하러 가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이 이제 세상으로 조금씩 나가려고 하는구나.' 세상을 인지하고 그것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궁금해하는 시기를 지나, 이제 그곳으로 혼자 조금씩 발을 내디뎌야 하는 문턱에서, 아이는 이미 그 세상 속에서 십수 년을 살아본 아빠의 경험이 궁금한 것이다.
초등학교(나에게는 국민학교였던) 시절에 몇 백 원을 내면 학교에서 받아볼 수 있는 어린이 신문이 있었다. 봉천동의 어느 골목길에 살던 시절, 장난감은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낡은 블록과 사촌동생이 팔을 부러뜨린 로봇이 전부였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골목길에 함께 사는 형, 누나, 친구, 동생들과 보냈다. 그렇게 골목길 꼬마로 지내던 나에게도 질문이 꽃피는 계절이 있었나 보다. 학교에서 받아온 신문 광고에서 책 광고를 보고는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소피의 세계], 노르웨이의 교사이자 작가인 요슈타인 가아더 Jostein Gaarder가 청소년들을 위해 쓴 철학(역사) 책이었다.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1권, 2권, 그리고 3권까지 각각 구입하며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낯선 서양 이름과 글자들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아침 등굣길, 아빠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이 책이 생각났다. 그리고 혼자 집으로 오는 길에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찾아 장바구니에 넣었다.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아빠보다 더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지혜와 사유를 들으며 다시 돌아오게 될 질문의 계절에는 스스로 답해볼 줄도 아는 아이로 자라기를. 그 질문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다시 누군가의 질문에 지혜롭게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