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만신 프로젝트 002]
내가 사는 지역은 서울의 최북단에 위치한 도봉구다. 그동안 여러 업무를 거치며 서울의 이곳저곳을 다녔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가까운 듯 가깝지 않은 성북구에는 마실 나올 일이 없었다. 기억나는 것은 친구가 다녔던 대학과 한성대에서 혜화까지 이어지는 성곽길, 아리랑고개 정도. 내가 일주일에 1~2번 방문하는 그곳은 석관동에 위치한 돌곶이생활문화센터이다. 원래는 주 2회 방문이었지만, 서울시에서 각 공공기관의 모임 및 교육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공문이 내려온 이래로 실제로 방문한 적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때맞춰 센터 1층은 7월 완공을 예정으로 공간을 재정비하고 있다.
지난 2달간 이곳은 성북구 전체 모임 및 기획회의, 비정기 회의 시에 모이고 있다.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공간. 입구에 붙어있는 빛바랜 휴관 안내문은 쓸쓸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사이 지난해 참여하셨던 노인분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센터에서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펼쳐지는 넓은 의릉 앞 공원에 나와계시는 분들과 안부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의릉(懿陵). (발음상 으릉에 가깝다) 석관동 내 한국예술종합학교 옆에 자리하고 있는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왕릉이다. 이 앞에는 넓게 조성된 공원과 공원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넓은 나무 숲과 그늘이 펼쳐져 있다. 이 동네분들과 인근 지역의 주민들은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나오는 명소이다. 평소 도심 속 빌딩 숲을 돌아다니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녹음이 우거져 있는 곳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 장소가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실내에서 하는 행사 및 많은 인파들이 몰리는 축제들이 잇따라 밀리거나 취소되는 우울한 가운데 나는 2번째 의릉을 방문할 때 평소의 그림도구들을 챙겨 나갔다. (실제의 의릉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유적이고, 방역을 위한 소독 중이어서 6월 중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내가 지칭하는 의릉은 의릉 앞 넓은 공원을 말하는 것이다.)
햇빛이 머리 위를 내리쬐고 정수리가 익어가는 초여름의 정오 무렵. 벤치에는 식사를 마치고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계셨다. 32도를 웃도는 더위였지만 나무 그늘 속 한가운데에는 시원한 바람과 더불어 돗자리를 챙기고 나와 편히 쉬는 아주머니들도 계셨다.
낯선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하다못해 이 동네 주민도 아닌 나는 나를 어떻게 소개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나를 소개하기에는 그림이 가장 설명하기 쉽겠다는 생각으로 나름 채비를 하고 나온 터다. 사람 동물 꽃 가리기 않고 즉석에서 슥슥 그릴 수 있는 빠른 손을 가진 덕분에 할머니들이 모여있는 벤치에서 2미터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후 건너편 벤치에 앉아 한 분 한 분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할머님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계셨지만 멀리서나마 그들이 수다를 나누시는 게 보였기에, 마스크 속 수줍은 미소를 담아 한장 한장 그려나갔다.
벤치에 앉아계신 6분의 할머니를 그렇게 그리고 나서 할머니들께 다가가 인사를 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제가 저쪽에서 할머니를 그려봤는데요, 마음에 드세요?”
할머니들은 아무래도 처음 보는 사람이 인사를 하는 것에 경계를 느끼기 쉬웠을 터라, 그림을 보기보다는 그림을 내미는 나를 경계하셨다. 선물로 드리는 거라고 내밀었지만, 할머니는 괜찮다고 그림을 한쪽에 두셨다. 아무래도 멋쩍어진 나는 간단히 인사 겸 그림 선물을 드리고, 맞은편 자리에 앉아 계신 할머니 두 분 사이로 가서 역시 인사를 드리고 그림을 내밀었다.
“하이고, 이게 나여? 내가 이렇게 생겼나?”
어리둥절한 반응의 할머니도 계셨고, 가서 손주들에게 나랑 닮았는지 물어보시겠다며 간결히 답하시는 할머니도 계셨다. 마침 할머니 한 분이 가운데 자리가 비었다며 쭈그려 앉아 있는 나를 벤치에 앉도록 권해주셨다.
“할머니 저는요, 요 앞 실버복지센터 근처에서 작업하는 작가인데요, 산책 겸 할머니들 뵙고 싶어서 나왔어요.”
돌곶이생활문화예술센터(이하 돌센)이라고 말하면 모르실 수도 있겠다 싶어, 노인분들에게 익숙하실 실버복지센터를 예시로 들었다. 복지관 및 노인대학도 4개월째 휴관이기에, 요새 아침저녁으로 공원에 두어 차례 나와 산책을 하다 들어가시는 분들이셨다. 그중 신이문에서 석관동까지 걸어 다니신다는 할머니 한 분은 90대셨었는데,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긴팔을 입고 계셨지만 그 할머니가 유독 인상이 깊었던 건 옷 속에 패딩조끼와 긴 티셔츠를 몇 겹으로 껴입고 계셨던 부분이었다.
“할머니, 덥지 않으세요?”
“아침저녁으론 추우니께, 집에서 이렇게 입고 있다가 나올 때 웃옷 하나 걸치면 되거든.”
그 당시가 6월 초였으니 유독 일교차가 심했을 때라, 아침저녁 한낮의 더위를 식힐 수 있어서 좋았던 나지만 노인분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건강을 챙겨야 되는 시기라는 생각에 다시금 내 기준으로 생각해보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요새 노인대학에 나가시지 못하는 어머니 등의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들과 한자리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특별할 거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 경동시장에 나가서 젓갈을 싸게 사던 이야기, 해마다 가을에 대학 축제행사를 하는 공원 앞…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순간을 함께 상상해본다.
“그래도 할머니랑 같이 살았어서 그런지 우리 이야기도 잘 들어주네, 우리야 뭐 젊은 사람들이랑 이야기 나눌 일이 별로 없으니.”
할머니들과 두런두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내 앞에 계시는 다른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다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놀러 올게요, 할머니.”
꾸벅 인사를 드리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경청의 힘. 나는 그분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저 공감함으로써 오는 충만함. 나는 우리네 인간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경청과 공감이 주는 힘은 사람을 위로하고, 그들이 혼자가 아니게끔 고립시키지 않고, 조금이나마 삶의 희망을 가져다준다.
시간은 흐르고, 무더위를 지나 어느새 장마철이 다가왔다. 그때 뵈었던 할머니들은 늘 공원에 나와계실지, 잘 지내고 계실지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된다. 비대면 방식으로는 소통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보다 나은 방법을 늘 고민 중이다. 이 부분은 노인뿐만이 아닌 아이들, 어른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고민해볼 문제다. 앞으로의 삶에서 보다 나은 소통의 방법. 고립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볼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 美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