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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과 맛이 겹쳐지는 순간

베리류의 구분

by 글은

잔을 들고 향을 맡았다. 라벤더의 은은한 향이 먼저 스쳤다. 그다지 강렬하지 않았지만, 그 여운은 오랫동안 머물렀다.


한 모금을 머금고 나서, 향보다 더 뚜렷한 맛들이 혀끝에 떠올랐다. 블루베리의 묵직한 단맛이 먼저 다가왔고, 그 뒤로 패션후르츠와 청포도의 신선한 산미가 스며들었다. 날카롭기보다는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한 신맛이었다. 이어지는 패션후르츠와 청포도의 미세한 달콤함은 자색 계열의 베리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저 달콤함으로 끝나지 않고, 신맛이 다시 얼굴을 드러내며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초콜릿 같은 묵직한 잔향이 혀끝에 남았다. 커피가 비고 나서도 블루베리와 초콜릿의 흔적이 잔잔히 이어졌다.


잠시 눈을 감고, 예전에 마셨던 에티오피아 구지 아돌라 원두가 떠올려보았다. 그때의 경험과 비교해보면, 구지 아돌라는 정말 딸기처럼 상큼한 느낌이 강했다면, 이 원두는 덜 상큼하고, 조금 더 우아한 방식으로 다가왔다. 붉은 계열의 베리류보다는, 그보다 덜 직관적인, 그러나 더욱 차분한 느낌을 주었다. 라벤더와 블루베리가 섞인 듯한, 그 미묘한 조화.


같은 국가에서 자란 원두라도 지역에 따라 맛의 차이가 이렇게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붉은 계열 베리류와 자색 계열 베리류의 차이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붉은 베리는 상큼한 신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 반면, 자색 베리는 묵직하면서도 깊은 신맛과 단맛을 품고 있다.


베리류의 미묘한 구분을 통해, 커피가 전하는 맛의 언어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채로운지 새삼 느끼게 되는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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