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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의 무게, HALO Ethiopia

한 모금의 끝이 오래 이어질 때

by 글은

새로운 원두를 개봉했다.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HALO Ethiopia

Floral, peach, lychee, caramel—설명만으로도 이미 화사하다.

늘 하던 대로 40 80 60ml로 푸어했다.

오늘은 특히 두 번째 푸어가 잘 맞았다. 80ml를 30~35초 동안 천천히 부으니 남은 30초 동안 물이 매끄럽게 빠졌다. 분쇄도와 유량이 적절한 지점을 찾은 듯했다. 수치로 남기면 좋겠지만, 요즘은 일부러 기록을 줄였다. 손에 익히는 감각을 믿어보려 한다. 숫자에 기대지 않을 때, 판단은 더 유연해진다. 마지막으로 6배 가수를 더해 마무리했다.


첫 모금의 인상은 단순했다. 화사하다.

딱복을 베어 물었을 때처럼 상큼함이 먼저 치고 들어와,

샛노랑 조명을 비춘 듯 입안이 환해졌다.


그런데 오래 남는 건 그 순간이 아니었다.

숨을 내쉴 때 코끝을 맴도는 단맛,

천천히 혀를 감싸는 캐러멜의 점성,

그리고 과한 단맛 뒤에 따라오는 미세한 쓴맛의 그림자


다시 컵을 들었다.

삼키는 순간마다 단맛이 향으로 번지고, 초콜릿이 코를 스친다.

마지막엔 녹은 캐러멜 같은 단맛이 혀 전체에 얇게 남다가, 조금의 쓴맛과 함께 천천히 흐릿해진다.

그리고 다음 모금—산미가 또 다른 시작을 연다.


플로럴은 상층부에서 선명했고, 복숭아와 리치의 과실감이 중간을 채웠다.

캐러멜과 초콜릿은 저음처럼 바닥을 받쳐주었다.


커피의 본질은 어쩌면 ‘여운의 무게’에 있는지도 모른다.

각 모금은 짧게 끝나지만, 그 끝은 오래 이어진다.

사라졌기에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사라졌기에 더 오래 기억된다.


그래서 이 커피는 순간을 붙잡는 법이 아니라,

사라짐으로 남는 법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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