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언제나 조금 예민하다
여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여유가 사라진다.
덥고 습한 날씨에 불쾌지수가 차오르고,
그럴수록 자극적인 것만 찾게 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보낼 때조차
어딘가 화가 가득한 채로 보내게 된다.
이상하게도 매년 여름만 되면 꼭 그렇다.
오늘은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조금 귀찮긴 했지만,
갑작스레 떠오른 욕구를 어쩔 수 없었다.
필터를 접고, 린싱을 하고,
물을 데우고,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린다.
익숙한 루틴을 따라가다 보면
격해졌던 마음이 조금은 뒤로 물러선다.
180g의 커피.
입맛에 맞게 물을 더하고
한 모금 마셨다.
숨을 내쉴 때 퍼지는 향,
그 순간 마음이 차분해졌다.
커피는 향이 중요하구나.
그리고 나는, 향에 민감한 사람이었구나.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 향은 드러나지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다.
그저 묵직하게 조용히 감각을 어루만진다.
사실 오래된 원두라 예전만 못한 향인데도
왜 이렇게 감상에 젖게 되는 걸까.
커피 한 잔에 담긴 추억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감상을 위한 조용한 기폭제였을까.
여름이면 예민해진다.
나를 돌보는 일보다는
주변의 온도와 소음에 더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여유도, 글도,
멀리 보는 시선도 없이
눈앞의 일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한 번쯤 이런 환기가 필요했다.
그게 거창한 탈출일 줄 알았는데,
늘 해오던 익숙한 루틴이
나를 다시 숨 쉬게 해주었다.
일상이 나를 환기시킨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마음이란,
의외로 단순한데
왜 그걸 돌보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