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줄기 실험(1)
같은 시간 안에 물줄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빨리 내려지지고 느리게 내려지고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 조금 다르게 와닿았다.
유량을 시간 단위로 나눠보면, 구간마다 손의 속도와 물줄기의 굵기를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즉, 정밀한 브루잉을 위해 필요한 건 ‘구간별 유량 조절 능력’이다.
나는 최근 정인성 바리스타의 2:4:3 레시피를 차용해 추출을 실험 중이다.
뜨거운 물을 사용해 추출하면서도, 동시에 아이스와 핫 모두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 원두: 30g
- 뜸 들이기: 60g의 물을 60초에 걸쳐 1g/s
- 1차 푸어: 120g의 물을 60초 동안 2g/s
- 2차 푸어: 80g의 물을 45초 동안 약 1.5g/s
- 드리퍼 : 하리오 v60
- 그라인더: 팰로우 오드 2 브루 그라인더
- 분쇄도 : 4.75
수치만 보면 단순하지만, 손끝으로 그 유량을 구현해 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날의 평균 유량은 1.51g/s.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물줄기를 다스리며 추출한 날이었다.
구간마다 흐름은 비교적 고르게 이어졌지만, 순간적으로 힘이 치고 나오는 구간이 있었다. 그래프는 무난했지만,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불필요하게 강해진 부분이 남아 있었다. 큰 실수 없이 마무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수치들이 온전히 손끝에 스며들었다고 말하기엔 아직 멀었다.
숫자는 분명 기록으로 남았지만, 몸은 그 숫자를 따라가지 못했다.
감각과 수치 사이의 간극이 여전히 존재했고, 그 틈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를 실감했다.
결국 브루잉은 단순히 물을 붓는 행위가 아니라, 반복 속에서 감각이 수치로, 수치가 다시 감각으로 환원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날은 이전보다 물줄기를 조금 더 가늘게 조절해 보았다.
그래프는 예상과 달리 더 넓게 퍼졌고, 평균 유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특히 2차 푸어 구간에서 1g/s를 목표로 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에 쫓겼다.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높인 탓에 전체 유량 조절도 흐트러졌다.
막대그래프는 그 미흡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내가 그려놓은 곡선은 실전에서 직선도, 곡선도 아닌 불안정한 꺾임 선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이렇다. 푸어한 양만큼 물은 결국 흘러내리므로, 굳이 빠지는 시간을 따로 고려하지 않고 전체 유량을 조절하는 편이 맞다는 것.
문제는 1초에 1g을 붓는다는 개념이 감각으로는 도무지 와닿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손끝에서는 그저 물이 흐를 뿐인데, 수치로 환산하면 갑자기 현실감이 사라진다.
하지만 반복 측정과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 추출이 감각이 아니라 수치로 다가오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브루잉은 단순한 동작이 아닌, 정밀한 영역으로 발돋움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