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눗방울

파리의 안나 42

by Anna

주말이 정말 빨리 온다. 아침도 정말 빨리 온다. 눈을 뜨자마자 가족 카톡 방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친척 오빠가 오늘 새벽 득남을 한 것! 축하 카톡을 보내고, 안부를 전했다. 곧이어 친척 언니에게서 조카의 따끈따끈한 사진도 받아 보았다. 아직 눈을 못 뜬 상태였는데 정말 작고 예뻤다. 한국에 돌아가서 볼 날은 멀었지만, 그동안 건강하게 잘 컸으면 좋겠다.


점심을 먹고 나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날씨 때문에 옷 선택이 힘들었다. 몇 벌 없는 여름옷 가지고 매치를 하려니 잘 안 됐다. 결국 칙칙하게 긴 바지와 체크 남방을 걸쳐 입고, 딱히 어울리는 가방이 없어 백팩을 챙기려는데 할아버지께서 물을 사러 가자고 하셨다. 올 때 알아서 사 오려고 했는데 같이 가는 편이 계산하기 쉬울 것 같아 얼른 따라나섰다. 백팩을 멘 나를 보고 그건 왜 가지고 오냐고 물으셨다. 물을 한 손으로 들면 무거울까 봐 가방에 넣어서 매고 오려고 한다니까 어이가 없으신지 하하 웃으셨다. 하지만 백팩을 가져가길 정말 잘했다. 어깨에 메고 있어도 무거운데 손으로는 절대 못 들었을 거다. 이 무거운 물을 나와 할아버지 둘만 들어야 하다니.

물을 사다 놓고 다시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쭉 걸어 앙발리드에 갈까 하다가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노선도를 확인하니 70번 버스가 퐁네프다리를 지나 시청역으로 가기에 기다려서 탔다. 버스를 타니 환승도 필요 없이 금방 도착하였다. 역시 지하철보다는 버스야! 한국에서는 버스를 잘 안 탔는데, 파리에 오니 자주 이용하고 싶어졌다. 퐁네프 앞에서 내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종점인 시청역까지 쭉 갔다. 정류장이 시청 바로 앞이 아니라 내려서 생자크 공원에 들러 잠시 앉아 쉬었다. 생자크는 미리 예약한 관광객만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을 막아 놓고 앞에서 안내하는 사람이 딱 지키고 서 있었다. 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공원에서 쉬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꽃 사진을 찍다가 일어나 마레지구로 향했다.

시청역 앞에서는 여전히 비치볼 대회가 한 창이었다. 사진을 찍으려다 그 앞에서 비눗방울을 만들던 아저씨에게 시선이 쏠렸다. 바람 때문에 자꾸 터졌는데 계속 지키고 서있었더니 두 번의 순간포착에 성공했다. 그는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흐리던 하늘에 해가 비치고, 나는 매번 찾지 못했던 프리피스타 1호점을 찾아갔다. 오늘도 역시나 한 번에 찾지 못하고 퐁피두센터까지 걸어갔다가 인증 샷 몇 번 찍고 지도를 보고 다시 뒤를 돌아갔다. 약도를 다시 보니 골목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그들 사이에 끼여 1유로 더미를 열심히 뒤지다가 H&M의 상태 좋은 치마를 찾아냈다. 호피 무늬였는데 톤이 다운된 컬러라 부담 없이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치마를 구매하고 나와서 2호점과 3호점에도 들렸지만 더 큰 수확은 없었다.


너무 열심히 뒤진 탓인지 목이 말라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했는데 아모리노 가게 앞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일반 가게에서 파는 것은 작은 크기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 프랑프리로 들어갔다. 그런데 마트 아이스크림은 죄다 박스에 3~4개씩 들어 있었고, 적당한 크기의 퍼먹는 아이스크림이 있었지만 당장 먹기 위해선 숟가락을 따로 사야 했다. 일회용품 코너로 가니 작은 숟가락 50개 들이를 팔았다. 겨우 오늘 하루 먹자고 일회용 숟가락 50개를 1.22유로나 주고 살 필요는 없다고 느껴졌다. 결국 아이스크림은 포기하고 다른 것을 사려고 했는데 딱히 끌리는 게 없었다. 가격에 비해 다 손해 보는 느낌이라 그냥 나갈까 했지만, 한참 마트 안을 서성이다 백팩을 메고 그냥 나가면 왠지 도둑놈으로 오해를 살 것 같아 어쩔 수 없는 소비를 해야 했다. 결국 고심 끝에 고른 것은 스타벅스 커피. 한국에서도 안 사 먹는 스벅 커피를 그것도 편의점에서 프렌치카페 크기를 2.40유로나 주고 마신 나는 정녕 제정신인가 싶었다.

스스로의 소비에 화가 나 분노의 흡입을 하고 생 폴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오는 내내 기운이 없었지만 집에 와서 치마를 보니 내심 뿌듯했다. 옷은 1유로에 사고, 커피를 두 배 이상의 돈을 주고 사 먹다니. 다섯 시쯤 집에 도착했는데 임무 수행은 6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말이 많은 아줌마가 와서 하는 내내 정신이 없었다. 국제택배에 대한 내용을 찾아 정리하여 아빠에게 메일을 보내고, 9시에 좀 이른 저녁 임무 수행을 하고, 내일 갈 새로운 벼룩시장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10시에 씻고, 사진을 정리한 후 이렇게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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