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홀리데이’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파리의 안나 45

by Anna

어제보단 개운한 아침이었다. 화요일마다 할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리는데, 간호조무사가 내 손에 샴푸를 짜서 심히 당황했다. 결국 내가 머리를 감겨드린 꼴. 갑자기 회의감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잠시 봉사심이 사그라들었지만 곧 내 삶에 대한 자기 위로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점심식사 후 외출을 위해 옷을 갈아입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나가지 말라는 신호인가? 안 그래도 낮은 기온에 적당히 입을 옷이 없어 우울했는데 비까지 내리니 더 나가기 싫어졌다. 결국 침대에 누워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 예현이와 카톡을 하다가 3시가 넘어 버렸다. 지금 나가도 1시간 반 만에 다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먼 외출은 포기하고, 단 게 당겨서 지갑과 열쇠랑 장바구니만 들고 프랑프리에 갔다.


초콜릿을 사려다가 전부터 먹고 싶었던 초코가 든 과자를 고르고, 저번에 마레지구에서 구매를 실패한 초코 맛 아이스크림을 샀다. 항상 계산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마트 점원들은 나에게만 유독 불친절한 것 같기도. 사람이 앞에 있는데 지들끼리의 대화로 계산이 지체되어 조금 짜증이 났다. 3.51유로를 내고 초콜릿 과자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샀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스크림부터 개봉. 그런데 내가 생각한 부드러운 맛이 아니었다. 어딘가 쌉쌀하고 까끌한 맛? 초콜릿 케이크를 얼려 먹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너무 달아서 다 먹지 못하고 냉동실에 넣어 뒀다.

오후 임무 수행 후 저녁 먹기 전까지라도 마실 다녀올까 싶었지만 그 말 많은 간호조무사가 또 늦게 왔다. 말은 더럽게 많고 일은 더럽게 못한다. 차라리 내가 해도 그 여자보단 잘할 거다. 저녁으로는 냉면을 먹었는데 갑자기 혈압 이야기가 나오더니 할아버지께서 혈압 재는 기구를 가지고 오셨다. 한 사람씩 차례차례 혈압을 재보았는데 당연히 난 지극히 정상이었다. 파리에 온 지 한 달 반째다. 나의 ‘홀리데이’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아직은 마음이 급하지 않다. 이번 달 말에 파리로 오는 예현이가 기다려진다. 문득 외로운 밤이다.

이전 04화생리통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