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46
졸리다. 항상 8시간에서 9시간을 자는데 왜 졸릴까? 오늘 아침 임무 수행은 초짜로 보이는 간호사가 와서 심히 힘들었다. 비리비리하게 생겨서는 할머니를 직접 옮기겠다고 나서더니 결국 할머니에게 고통만 안겨주고 기계를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쉽게 하면 될 것을 참 답답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오늘은 진짜 늦기 전에 외출을 했다. 5부 반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비가 올까 봐 우비를 장착했는데 바람이 쌩쌩 불어 추웠다. 앙발리드 쪽으로 걷다가 추위를 이기려고 살짝 뛰기 시작했다. 뛰다 보니 조깅을 하는 사람들 몇몇이 보였고, 괜한 경쟁심에 열심히 달리다가 옆구리가 아팠다. 앙발리드의 앞모습을 처음으로 보고, 멀리 보이는 에펠탑의 사진을 찍다가 센 강 쪽으로 뛰어갔다. 관광객들을 제치고 조깅을 하니 정말 이곳에 사는 파리지엔의 느낌이 나서 기분이 좋았다.
알렉산더 3세 다리 밑으로 내려가 쉬다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는데 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주머니에 넣어 놨는데 뛰다 보니 화면이 켜져서 아무거나 막 눌린 것 같았다. 폰트도 바뀌어 있고 메뉴도 편집되어 있었다. 시간을 보니 11시쯤이었다. 앙발리드 역에서 8호선을 타고 알리그흐 벼룩시장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많이 갔던 앙발리드 역을 찾는 데 잠시 길을 잃어 황당했다. 무사히 지하철을 타고 가며 졸다가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 뒤를 졸졸 쫓아가니 시장이 나왔다. 과일과 채소를 파는 시장이 쭉 늘어서 있고, 그 길을 따라 쭉 가니 한편에 작은 벼룩시장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원하는 퀵 보드는 없었지만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빨간색 패딩조끼를 보고 얼만지 물어보고 사려고 했지만,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포기했다.
간단히 벼룩시장을 보고 나와 과일가게에서 체리를 사 가려고 했는데 딱 체리만 없었다. 납작 복숭아라도 사 오려다가 그냥 말았다. 시장 상인들도 나를 보고 니하오 또는 곤니찌와 했다. 답 없이 웃어주고 그렇게 다시 집으로 향했다. 콩코르드 역에서 환승을 하는데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맘마미아의 테마곡일 텐데. 나도 모르게 잊고 있던 가사를 흥얼거리며 그렇게 잠시 추억에 잠겼다.
집에 도착하니 점심을 드시고 계셨다. 나도 합류하여 밥을 먹고 다시 외출을 하려다가 몸도 피곤하고 추우니까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인터넷 서핑을 즐기다가 갑자기 이렇게 무료한 시간들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차라리 밖에 나갈 걸 그랬나. 내일은 아침 조깅 후에 점심을 먹고 오후에도 꼭 나가야지. 오후 임무수행 후 또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저녁을 먹었다. 나 정말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사는 건가?
엄마에게서 동생의 휴학 소식을 들었다. 저번에 1학기 성적을 넌지시 물어봤는데, 성적이 개판이라 휴학하고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하다가 군대까지 다녀오고 복학할 예정이라고 했다. 동생의 말에 적잖이 놀랐지만 이해하려고 한다. 본인도 깨달은 바가 있겠지. 오늘은 좀 마음이 뒤숭숭하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의미 없는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저녁 임무 수행도 끝났으니 일찍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