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48
광복절이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눈을 떴는데 일어나기 싫었다. 약간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초인종 소리를 들었지만 설마 뚜왈렛이 벌써 왔을까 하는 마음에 계속 누워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할아버지가 욕실에 있던 언니에게 대야를 달라고 말하는 소리가 났다. 뚜왈렛이구나. 왜 이렇게 일찍 왔지? 깨우지 않으셔서 그냥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다. 8시 20분쯤 밖으로 나가 마치 몰랐다는 듯이 “벌써 끝났어요?”하고 말했다.
아침을 먹고 마트에 가는 줄 알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밖에서 할아버지와 언니가 점심 먹고 가자고 하시기에 머리를 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외출이나 할 걸. 점심으로는 혼자 살 때 정말 먹고 싶었던 카레를 먹었다. 2시가 조금 넘어서 중국 마트로 향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줄 알고 나비고를 챙겼는데 할아버지의 차를 타고 갔다. 저번 달에 살았던 고블랑 역 근처를 지나 파리의 차이나타운에 도착했다. 인천 살 때도 차이나타운을 안 가봤는데 프랑스에서 차이나타운을 와 보다니.
오늘은 프랑스도 국경일이라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았는데 차이나타운의 마트들은 다 열었더라.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마트 안은 정말 비좁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처음 가 본 곳이라 나는 카트만 끌고, 짐 지키기 담당이었다. 그래서 장보기가 재미없었다. 계산을 하는데 처음에 담아 두었던 두부가 터져서 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계산원이 짜증 내며 휴지로 물을 닦았다. 내 잘못도 아닌데 괜히 미안했다. 장본 것들을 장바구니에 옮겨 담고 집에 왔다.
납작 복숭아와 자두를 씻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가져다 드렸다. 할머니는 직접 드시지 못해서 먹여 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재밌었다. 치매 끼가 있으셔서 본인이 왜 기저귀를 차고 있는지 조차 기억을 못 하실 때가 많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나눠 보면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저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삼계탕을 먹고, 조금 일찍 샤워를 한 뒤 임무 수행을 했다. 오늘은 할머니의 장운동이 활발한 날이라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편안해하시는 할머니를 보니 왠지 뿌듯하다. 하루가 정말 빨리 간다. 그만큼 일주일도 빨리 흐르고. 한 달도 금방 가겠지.
8월의 한가운데서 난 파리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