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혼자 돌아다니냐

파리의 안나 50

by Anna

내가 프랑스에 살 수 있는 시간 365일 중에 50일이 지났다. 남은 315일을 위해 오늘은 마음을 다잡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침 임무수행은 케빈이 왔다. 정말 일을 열심히 하는 흑인 남자 간호조무사다. 내가 무언가를 건네주거나 도와줄 때마다 “Merci”하는데 성격도 정말 착한 것 같다. 아침으로는 일주일 동안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피자를 데워 먹었다. 바게트 빵에 치즈 발라 야채 넣고 샌드위치처럼 먹을 때가 좋았는데. 요즘은 언니나 할아버지께서 빵을 사 오지 않으신다. 그래도 불만 없이 배를 채우고, 빨래를 돌리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다 돌아간 빨래를 널고 점심을 먹는데 할아버지께서 왜 할머니의 옷과 본인의 속옷은 같이 빨지 않았냐고 물었다. 단순히 내가 일주일 동안 모아둔 빨래가 많아서이기도 하고, 내 옷만 따로 빨고 싶어서이기도 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의 옷에서 소변 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다. 왠지 억울한 기분이었다. 빨래 돌리면서까지 눈치를 봐야 하나? 갑자기 모든 게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얼른 외출을 하려고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바람이 꽤 많이 불어 쌀쌀했다. 무작정 앙발리드까지 걷다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89번 버스를 타니 뤽상부르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혼자 셀카도 찍고, 타이머를 맞춰놓고 사진을 찍고 노는데 바람이 너무 심각하게 불었다. 점점 몸도 으슬으슬 추워지는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떴다. 27번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서 한참 기다리는데 우연히 자취집 중개인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남자 친구분과 함께였다. 나보고 왜 혼자 돌아다니냐고 친구들은 없냐고 물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어색하게도 같은 버스를 탔지만 간단히 인사만 하고, 난 루브르 앞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튈르리에 가서 앉아 있으려고 했는데 여긴 바람이 더욱 심했다. 결국 얼마 못 참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루브르로 갔다. 95번 버스가 도착하려면 15분이나 남았기에 근처 벤치에 앉았는데 바로 앞에 커다란 경찰 버스가 서 있었다. 안에는 경찰 몇 명도 타 있었다. 파리의 경찰들은 다 멋있는 것 같다. 카리스마가 넘쳐. 젤리를 먹으며 은근슬쩍 경찰들을 관찰했는데 운전석에 앉아있던 흥 많은 경찰이 갑자기 노래를 크게 틀고 신나게 흔들어 재껴서 웃겼다.

한참 뒤 95번 버스가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기사가 갑자기 방송을 했다. 몽파르나스 역까지만 운행한다는 말이었다. 결국 몽파르나스 역 앞에 내려서 집까지 걸어갔다. 가는 길에 항상 보던 노숙자도 보고, 껄렁껄렁 한 젊은이들 무리도 보고, 그 무리 중 한 명이 노상방뇨하는 것까지 봤다. 집에 도착하니 할아버지와 언니의 방문은 닫혀있었고, 선생님은 앉아 계셨다. 나도 피곤했지만 하도 모래바람을 맞아서 이 몸으론 침대에 눕기가 찝찝하여 그냥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6시쯤 할아버지께서 부르셔서 방에서 나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2시 반쯤 뚜왈렛이 와서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냥 돌려보냈다는 것이었다. 결국 할아버지와 내가 할머니의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7시쯤 다시 온 간호조무사를 그냥 돌려보냈다. 저녁으론 온면을 먹고 생전 안 먹던 호박전도 열심히 먹었다. 하숙집에 들어와서 정말 잘 먹고사는 것 같다. 다만 식사 때마다 할아버지와 언니가 신경전을 벌이시는데 가운데 껴서 정말 난감할 때가 많다. 그리고 매일 똑같은 패턴으로 싸우시는데 듣고 있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필 먹을 때 그러시니. 어쩔 수 없이 내가 다 감수해야지.

바깥바람을 너무 맞아서 그런지 샤워를 하니 졸음이 쏟아진다. 혹시 모르니 감기약 하나 먹고 자야겠다. 저녁 임무수행은 조금 이른 시간에 끝이 났다. 항상 밤에 오는 간호조무사가 있는데 인상도 더럽고, 일도 엄청 대충 한다. 할머니도 그걸 느끼시는지 매번 그 여자가 오는 날이면 불쾌해 보이신다. 오늘부터 작성하기로 한 하루 한 단어 공책도 시작하고,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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