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분크림

파리의 안나 51

by Anna

10시간이나 잤는데 상쾌한 월요일 아침이 아니었다. 날씨가 벌써 쌀쌀해서 침대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아침 먹으라는 소리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식탁으로 갔다. 어제 사 오신 빵을 토스트기에 굽고, 버터를 발라 먹는데 간호조무사가 도착했다. 항상 하듯이 할머니의 몸을 닦고, 기저귀를 가는 동안 옆에서 도왔다. 임무 수행이 끝나고 다시 이어서 아침을 먹으려니 잘 들어가지 않았다. 뭐든 중간에 끊기면 제 맛이 안 난다.


대충 배를 채우고 간단히 세안 후 화장을 했다. 점심 먹고 수분크림을 사러 나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점심 메뉴는 비빔밥이다. 처음엔 내가 한국에서 사 온 고추장을 넣고 비볐는데 색깔만 빨개지고 아무 맛도 안 나기에 언니가 만든 고추장을 조금 넣어보았더니 맛이 확 살아났다. 할아버지가 안 드신 계란 프라이까지 하나 더 추가로 먹고 완전 배를 빵빵하게 채운 후 외출을 했다.


오늘도 바람은 많이 불었지만, 해가 비춰 따뜻했다. 날씨가 정말 좋아 기분 좋게 산책을 하는데 그놈의 벌레가 또 온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한 2mm 정도 되려나? 크기는 정말 작은데 생긴 것도 기분 나쁘고 몸에 붙어 슬금슬금 기어가는 꼴이 영 별로다. 벌레 때문에 더 이상 산책하고 싶지 않아 앙발리드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7호선으로 향했다.


오까베 앞 구제 숍에서 옷을 구경하는데 썩 맘에 드는 옷을 찾지 못했다. 별 수확 없이 오샹으로 들어가 수분크림을 찾아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었다. 그냥 나가기엔 좀 섭섭해서 과자 코너로 가 고심 끝에 ‘Cracotte’를 골랐다. 이번 계산원은 친절했다. 의무적이긴 하지만 인사말을 빼놓지 않는 여자였다. 계산하고 나오자마자 뜯어서 하나 먹어보았는데 처음엔 기대한 맛이 아니라 조금 실망했지만 바삭한 맛에 초콜릿까지 더하니 맛있었다.


더 나은 수분크림을 찾기 위해 몽쥬 역으로 갔다. 역시나 한국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처음엔 아벤느 코너에서 콜드크림을 집었다가 유분 크림이라는 설명에 왠지 찝찝하여 내려놓고 바로 옆의 바이오더마 코너로 갔다. 그런데 내가 상상한 수분 크림이 아닌 핸드크림처럼 튜브형으로 생긴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용량도 40ml밖에 안 하는데 가격도 꽤 나갔다. 고민하다 수분 밤을 골랐지만 생각해보니 내 피부가 악건성은 아니기에 다시 내려놓고 그 옆의 유리아주 코너로 갔다. 번들거림 방지 및 모공축소 효과가 있다는 수분크림을 선택하고, 바로 옆에 바이오더마 미스트가 300ml에 1.99 유로기에 그것도 하나 집어 들어 계산을 했다.

총 10.98 유로였는데 98을 못 알아 들어서 15유로를 냈다. 약국 직원은 내가 한국인인 걸 알고 영어로 가격을 말해주더라. 잔돈을 받아 들고 merci 했다. 시간을 보니 4시 4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최대 5시까지는 집에 가야 해서 얼른 지하철을 탔다. 파스퇴흐 역에 내려 환율이 내려간 김에 은행에서 돈을 좀 찾아두려고 했는데 비자카드 표시가 없어서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여자가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기저귀 봉투를 버리러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렇다. 뚜왈렛이 이미 끝나버린 것이었다. 얼른 집에 들어가 할아버지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새로 산 화장품을 사진 찍어 친구에게 자랑하고, 예능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 메뉴도 비빔밥이었다. 조금 뻑뻑하긴 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저녁 임무 수행 후 씻고, 오늘 산 수분크림을 발라봤는데 촉촉하긴 한 것 같다. 향기는 별로지만. 영화 한 편 보려고 했는데 피곤해서 그냥 자련다.

이전 10화왜 혼자 돌아다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