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43
이상한 꿈을 세 개나 꿨다. 꿈을 많이 꿔서 그런지 오래 자도 피곤한 느낌이었다. 시리얼로 아침을 해결하고 임무 수행을 마친 뒤 조금 쉬려고 침대에 누웠다. 원래 오늘 벼룩시장에 가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일요일이니까 그냥 집에서 쉴까? 잠시 고민했지만 비 핑계로 외출을 자제하기엔 파리 날씨는 하루에도 여러 번 오락가락하기에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점심으로 먹을 치킨텐더도 데워서 가방에 넣었다.
오늘 갈 곳은 유랑 카페에서 본 벼룩시장. 9호선 ‘Rue des boulets’ 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인다고 했다. 몽파르나스 역에서 환승하여 9호선을 타고 쭉 가다가 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나올 때보다 비가 훨씬 더 많이 내렸고, 벼룩시장은커녕 벼룩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우천 시 취소되는 곳인가? 할 수 없이 다시 9호선을 타고 몽트뢰유 벼룩시장으로 향했다. 금세 비가 그치고 여전히 흐린 날씨였지만 열심히 구경했다.
저번 주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미로 같은 곳까지 구경을 마치고, 목적이었던 퀵 보드를 하나 발견했지만 망설이는 사이 한 남자아이가 잽싸게 채갔다. 파란색이라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왠지 아쉬웠다. 결국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엔 허무해서 4호선 종점의 생투앙 벼룩시장에도 갔다. 예전에 가형 언니와 처음 와보고 두 번째였다. 클리낭쿠르 마켓의 초입은 마치 동대문을 연상시키듯 호객행위가 대단했다. 가볍게 무시하고 내 목적인 퀵 보드를 찾기 위해 다리 밑 핫 플레이스까지 열심히 걸어갔지만 너무 늦게 간 탓인지 괜찮은 퀵 보드는 없었다.
결국 오늘도 구매를 실패하고, 과자와 사탕을 파는 곳에 가서 하리보 해피 믹스를 고르는데 옆에서 구경하던 외국인이 나에게 유통기한을 확인했냐고 물었다. 14년도 11월까지라고 보여줬더니 조심하라고 하면서 옆에 있던 사탕의 유통기한을 확인했는데 14년도 6월까지였다. 순간 서로 헉! 하며 그는 나에게 “그것 봐, 이런 곳에서 사는 건 조심해야 돼” 했고, 나는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마트에서 사는 것보단 싸니까 해피 믹스 한 봉지를 2유로에 사 왔다.
아까까진 계속 흐리더니 생투앙 벼룩시장에서는 해가 비쳐서 너무 더웠다. 큰 수확 없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더 피곤한 느낌이었다. 3시쯤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고, 도착하니 4시가 안 된 시간이었다. 집에 가자마자 씻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손님들이 와 계셨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돈댁 분들이셨다. 손님이 계시니 문도 안 잠가지는 욕실에서 샤워를 할 수가 없어서 찝찝한 몸으로 방 청소를 했다. 옷장 정리도 하고, 캐리어 속 물건들도 다 꺼내고 방의 머리카락도 제거하고 걸레로 쌓였던 먼지도 싹 닦아내었다.
손님들이 가신 시간이 곧 임무 수행할 시간이라서 그것만 끝나고 씻어야지, 했는데 오늘도 간호조무사가 늦게 왔다. 또 그 말 많은 아줌마였다. 뭐 하나하나 할 때마다 말을 하는데 굉장히 시끄럽고 정신없다. 게다가 내가 불어를 못 알아듣자 중국인이냐고 했다. 참나. 어쨌든 오후 임무 수행도 마치고 빠르게 샤워를 마친 뒤 저녁을 먹었다. 나름 화기애애한 저녁 시간이 지나고 9시 반쯤 저녁 임무 수행도 끝이 났다. 오늘 밤은 슈퍼 문이 뜬다던데 파리 하늘은 구름 가득이라서 안 보일 것 같다. 하숙집에 들어온 뒤로 저녁 하늘을 본 적이 없네. 피곤하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