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55
어제 일찍 잠 들어서 무려 10시간이나 잤다. 그런데도 항상 개운하지 않은 건 왜 일까. 임무 수행 후 아침을 먹고 멍하게 오전을 보낸 뒤 점심 식사 후 할머니 정기 검진을 위해 병원에 따라가려고 했는데 우편으로 미뤄졌다는 통보를 받아 취소되었다. 프랑스는 참 이상하다. 전화로 이야기하면 될 것을 꼭 편지로 보낸다. 어쨌든 병원 외출도 취소되고, 바깥 날씨는 좋았지만 얼굴 상태도 별로기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방에서 불어 공부하고, 친구와 통화하며 시간을 보내다 오후 임무 수행 후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하러 나갔다. 오늘이 4일째. 노래를 들으며 열심히 뛰는데 갑자기 노래가 끊어졌다. 이어폰이 고장 난 것이다. 재작년 생일 선물로 소라가 사준 이어폰인데 좀 속상했다. 사진을 찍어 소라에게 보낸 뒤 사정을 설명하고 음악 없이 조깅을 다시 시작했다. 그나마 노래를 들어야 아픔이 잊혀지는데 그것조차 사라지니 더욱 힘들었다. 도대체 왜 뜀박질을 하는데 정강이뼈가 아픈 거지? 설마 내가 잘못 뛰고 있나, 근육이 놀랐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목표했던 1시간 중 한 20분 남겨두고 앙발리드 앞에 누군가 버리고 간 로댕 미술관 안내책자를 깔고 앉아 쉬었다. 조깅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니 정말 쉬지도 않고 잘 뛰더라. 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면 저 정도의 체력이 언젠간 생기겠지! 먹구름이 밀려오고 빗방울이 살짝 떨어지기에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에 프랑프리에 들려 하리보 젤리를 샀는데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줄이 길었다. 내 앞에 흑인 아저씨가 있었는데 젤리를 들고 서 있는 나를 보더니 “C’est peut moi?”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알아듣기론 “이거 나 줄 수 있어?” 정도인데 웃으며 농~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먼저 말을 걸어줘서 고마웠다. 언젠간 나도 그런 농담에 받아칠 수 있는 실력이 되겠지. 집에 와서 샤워 후 머리를 감고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고등어를 먹었더니 정말 맛있었다. 하숙집에 들어와서 정말 건강해지는 것 같다. 이제 곧이어 저녁 임무수행도 끝이 나면 일찍 잘 것이다. 내일은 토요일이다. 일주일이 참 빨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