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도 못하고 불어도 못하는데

파리의 안나 79

by Anna

손톱이 잘 아물었다. 하지만 잘린 부분이 다 자라서 뜯어질 때까지 밴드를 붙이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외출을 했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땀이 났다. 퀵 보드를 타고 센 강 주변을 도려고 했는데 다리 밑의 바닥이 너무 울퉁불퉁해서 힘들었다. 오래간만에 샹젤리제 거리나 가 볼까 하고 ‘그랑팔레’ 쪽으로 갔다. 100년 전의 100개의 사진들이라는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쟁 사진이라 흥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간간히 구경하고 잠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쉬다가 다시 앙발리드 쪽으로 갔다.

알렉산더 다리 위에서 풍경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외국인이 본인의 사진을 찍어달라며 핸드폰을 건넸다. 그런데 포즈를 계속 바꿔서 대략 7장 정도를 찍어준 것 같다. 찍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그만해라”라고 말해버렸다. 그는 내가 한국인인 걸 알고는 ‘강남 스타일’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에게 예쁘다고 말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가는데 너무 더워서 목을 축이러 카지노에 갔다. 한 바퀴 둘러보다 데스파라도 맥주를 한 캔 샀다.

잔디밭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하늘이 정말 예뻤다. 혼자 여행 온 사람도 가끔 보였다. 맥주를 해치우고 그늘을 찾아 떠돌다가 다른 버스 정류장에 앉아 쉬었다. 사진을 찍고 놀다가 길게 통화를 했다. 그런데 통화 도중 옆에 앉아 있던 외국인이 나에게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조금 할 줄 안다고 대답하자 본인이 찾고 있는 박물관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었다. 구글 지도를 보니 내가 혼자 살던 고블랑 역 쪽이었다.


우리가 앉아있던 정류장의 버스는 고블랑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설명하기가 어려워 지하철 노선도를 꺼내어 위치를 대략 알려주고 차라리 지하철을 타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버스를 타겠다고 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하자 아니라며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아프리카 수단 사람이고 네덜란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친구와 프랑스, 독일 여행을 한 뒤 네덜란드로 간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 워킹 홀리데이를 왔으며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파리에 1년 동안 살 예정이라고 했다.


국적을 묻기에 코리아라고 대답하니 북한이냐고 묻더라. 남한이라고 하자 그는 중국과 일본은 가 보았는데 한국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남한은 좋은 곳이라며 꼭 놀러 가라고 말했다. 그가 나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는데 버스가 도착해서 결국 찍지 못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영어도 못하고 불어도 못하는데 영어와 불어가 섞여 나와서 큰일이다.


집에 와서 임무 수행 후 목욕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드라마를 보며 쉬다가 저녁 임무수행을 하는데 정말 최고로 불친절한 간호조무사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났다. 내일은 할머니 머리를 감겨드리는 날이라 조금 일찍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내 머리도 감아야 하는데 손톱이 이래서 걱정이다. 얼른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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