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의 ‘ㅅ’자도 모르는 내가

파리의 안나 80

by Anna

매일 8시간 이상 숙면하는데 왜 이리 피곤한지 모르겠다. 화요일은 할머니 머리 감기는 날이라 아침 시간이 더욱 바쁘다. 오전에는 나름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갑자기 중국 마트 ‘탕 프레’에 가자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점심을 먹고 외출을 했다. 나는 퀵 보드를 타고 할아버지는 걸어가셨다.


저번에 길거리에서 봤던 테니스 전단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기에 할아버지께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테니스를 배우려고 했는데 배드민턴도 못 치는 나라서 자신이 없다고, 수영 같은 걸 배워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동네에 수영장이 있다면서 나를 데려가셨다. 신나게 씽씽 달려 수영장에 도착했는데 입구에 안내소 직원이 굉장히 불친절했다. 수영 강좌에 대해 물어보니 직접 안에 들어가 강사에게 질문하란다.


실내에선 퀵 보드도 끌 수 없고 신발도 벗어야 해서 불편했다. 내가 그냥 나중에 전화로 물어보자고 나가자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기왕 온 김에 강사를 꼭 만나야겠다고 하셨다. 추진력은 정말 끝내주신다. 겨우 수영 강사를 만나 강좌에 대해 물으니 11월 첫째 주까지 이미 사람이 꽉 차 있어서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꽤 규모가 작은 수영장이었는데 안에 들어가 본 것만으로 충분한 경험이었다.


수영장에서 나와 탕 프레에 도착해 언니가 적어준 목록을 체크하며 장을 봤는데 생각보다 살 게 많았다. 본인은 따라오지도 않으면서 할아버지 보고 이걸 혼자 다 사 오라고 하다니. 정말 생각이 깊지 못한 사람인 것 같다. 게다가 나는 퀵 보드까지 타고 와서 짐을 들어드릴 수가 없었다. 결국 무거운 짐을 들고 할아버지는 버스를 타고 가시고 나는 홀로 라이딩을 즐겼다.


앙발리드에 갔는데 날씨가 어제처럼 너무 더워서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쉬었다. 4시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퀵 보드를 탔는데 이미 몸에 힘이 다 빠져버려서 그냥 끌고 갔다. 중간에 프랑프리에 들려서 맥주를 사 마시려고 했는데 어제 마신 데스파라도밖에 없어서 그냥 아리조나 석류 맛을 샀다. 집에 도착해서 좀 졸다가 오후 임무수행을 마치고 ‘괜찮아, 사랑이야’를 봤다. 그러다 보니 벌써 또 저녁 먹을 시간. 하루가 정말 빨리 간다.


할아버지께서 혼자 몽파르나스 타워 부근 수영장에 다녀오셨다며 내일 오후 2시에 등록을 하러 가자고 하셨다. 너무 갑작스러운 결정이라 당황스러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6일 동안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씩 배우고 나머지는 혼자 등록해서 연습하면 된다고 하셨다. 수영의 ‘ㅅ’자도 모르는 내가 말도 안 통하는 이 나라에서 6일 만에 아니, 6시간 만에 수영을 배운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시간도 너무 이르다. 그냥 안 하겠다고 하고 말았다. 생각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내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정은 좀 불편하다. 열시도 안 됐는데 벌써 졸리다. 뚜왈렛을 마치고 바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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