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 courage!

파리의 안나 89

by Anna

아침은 늘 그렇듯 비몽사몽으로 일어나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뚜왈렛을 마쳤다. 오후 임무 수행까지 마치고 책을 사러 나갈 거라서 인터넷 서핑을 했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을 정도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 영화를 보았다. 저번에 동열이가 ‘미드 나잇 인 파리’와 함께 보내준 ‘비긴 어게인’이었다. 한국에선 현재 굉장히 흥행을 하고 있는 영화라 기대가 컸는데 보는 내내 지루함에 졸음이 몰려왔다.


음악 영화의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주제인 ‘음악’도 내 귀에는 전혀 좋지 않았고 (잔잔한 스타일의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인 듯) 주인공들도 전혀 매력이 없었다. 왜 흥행을 하고 있는지, 이 영화를 본 대다수의 사람이 왜 좋게 평가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별로였다. 결국 러닝 타임 1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키보드의 오른쪽 화살표를 눌러 10초 앞으로 계속 넘겨버렸다. 게다가 열린 결말이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조금 짜증이 몰려왔다.


친구에게 이 영화가 왜 인기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본인도 극장에서 봤지만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들이 지났고, 오후 임무수행을 마친 뒤 어제 연락드린 판매자 분께 문자를 보냈다. 우리 집과 가까운 ‘Convention’ 역이었다. 걸어 가볼까 생각했지만 길치인 내가 잘 찾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어 민향 언니에게 나비고 카드를 빌려서 집을 나섰다.


책을 담아 올 백팩을 메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날씨가 어제보단 좋았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꽁벙시옹 역. 5시 15분까지 간다고 해놓고 5분에 도착해버렸다. 연락을 드리고 역 근처 돌에 앉아 주변을 살피는데 약속한 벤치에 한 아주머니가 앉으셨다.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아 저분이 확실하다고 생각되어 일어나 다가가니 반갑게 맞아 주셨다. 책을 확인하고 5유로를 드렸다. 나는 총 5권의 책을 골랐는데 아주머니께서 1권은 덤으로 주셔서 총 6권의 책을 얻었다. 거래가 끝난 뒤 이곳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 프랑스에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걱정 반 격려 반의 어조로 여러 가지 삶의 지침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처음 만난 아주머니의 말씀이 나의 가슴속에 콕 박힐 정도로 정말 감사한 조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역 앞에 서서 이야기를 듣다가 아주머니께선 집으로 가시고 나는 걸어가기로 했다. 39번 버스 정류장에서 노선을 확인하니 쭉 걸어가면 파스퇴르 역이 나오더라.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걸었다. 마음의 양식인 책도 얻고, 아주머니께 좋은 삶의 지침도 듣고,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았다.


걷다가 예쁜 성당이 보여서 사진도 찍고 배가 고파 가져온 초코바도 먹고, 그렇게 새로운 동네를 탐방하며 집 근처에 도착했다. 6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인데 벌써 집에 들어가긴 싫어서 앙발리드까지 산책을 하러 갔다. 벤치에 앉아 책들의 상태도 확인하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간’을 몇 페이지 읽었다. 그런데 해가 구름에 가려지자 바람이 쌩 부는 게 너무 추워서 금방 집으로 돌아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프랑스 작가인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오늘 자기 전 조금 더 읽어야지. 다음 달엔 오늘 만난 아주머니를 따라 근 처 숲으로 밤을 따러 가기로 했다. 재미있을 것 같다. 생각할수록 나는 인복이 넘치는 것 같다. 감사히 받아들여야지. 내일은 세부적인 삶의 계획을 세워야겠다. Bon cou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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