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노트
공감은 참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죠.
그럼에도 간단하게 표현해 보자면, 공감은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마치 상대방이 된 것처럼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감은 인지적인 공감, 정서적인 공감, 공감 표현이라는 요소로 나뉘기도 합니다. 인지적인 공감은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그가 경험한 맥락에 맞춰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고, 정서적인 공감은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나 또한 함께 공유하고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알아차리고 경험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는 공감 표현까지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공감받았다'라고 느끼게 됩니다.
이렇듯 누군가에게 공감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대의 경험을 충분히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에 적절하게 반응을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공감'을 하나의 키워드로 삼았습니다. 심리 상담을 받게 된다면, 여러분이 상담 안에서 제대로 된 '공감'을 경험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렇다면, 상담 안에서 공감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본문에서 말하는 상담은 정서중심치료 이론을 기반으로 제가 진행하는 심리상담을 의미합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지만, 또다시 상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상담자는 내담자의 경험을 더 잘 공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라포(상담관계)가 잘 형성되었을 때, 상담자가 내담자의 경험을 더 잘 공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담자 역시 상담자의 공감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죠. 그만큼 관계의 형성은 공감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관계가 잘 형성되는 것이 반드시 선행해야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관계를 잘 형성하기 위해서도, 상담자의 공감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내담자에게 더 잘 공감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상담자는 열린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내담자의 경험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어떠한 편견도 갖지 않고, 내담자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야만 진실한 공감이 가능해질 테니까요. 공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상담자들은 평소에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혹시 모를 편견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살피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다양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아가기 위해 공부합니다. 어떤 내담자가 상담을 찾든, 그 사람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공감해 주기 위해서요.
상담자는 평소에도 자신의 가치관이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다루는 데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그래서 상담 안에서 내담자의 것을 받아들일 때, 자신의 것이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할 수 있죠. 그 사람의 것을, 그 사람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자 노력합니다. 그것이 느낄만한 감정인가 아닌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느낀 것이 어떠한 감정인지, 어떻게 느끼게 된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바탕으로 왜곡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람이 느낀 것을 존중하기보다 평가하고 판단하는 마음을 먼저 가지게 되는 경우도 많죠. 그렇게 공감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공감이 아닌 반응들이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할 때가 있었을 거예요. 그건 공감이 아닙니다.
공감받는다는 건, 나의 경험을 온전히 이해받는다는 것입니다.
상담자는 여러분들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질문을 던집니다.
그 경험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위해서 질문하고, 그 순간에 느낀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신이 느낀 감정이나 생각과 관련된 표현을 반영하거나 재확인하기도 합니다. 내담자가 느낀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경청합니다.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는 과정을 통해 내담자 또한 자신의 내면세계를 더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게 되고, 새롭게 알아차리거나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상담자의 공감은 단순히 '그렇죠. 그랬겠네요.' 이렇게 맞장구치는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랬겠네요.'라는 반응이 공감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고, 그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공감이 상담 안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때로는 침묵하는 반응이 공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담자는 언어적인 반응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반응으로도 당신과 함께하고 있음을 표현할 수 있어요.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에 깊이 있게 접촉할 때 숨죽여 함께 그곳에 머무르며 집중합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맞추거나 손짓을 하는 방식으로 당신의 감정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상담자가 자신이 느낀 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공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담자와 상담자가 모두 그 장면 안에서 어떠한 감정을 경험했는데, 내담자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우들이 있죠. '저는 방금 00님이 이야기하는 것에서 깊은 슬픔이 느껴졌어요...' 대신 상담자는 확언하지 않습니다. '제 표현이 00님에게 어떻게 들리셨나요? 00님이 경험하신 것과 비슷한 감정일까요?' 꼭 내담자가 경험한 것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과 일치한다고 느낄 때 다시 한번 그것을 공감합니다. 일치한다고 느끼지 않을 때는, 다시 한번 공감하기 위해 조율하는 과정을 기꺼이 함께합니다.
최근에 읽은, Empathy(Elliott, Bohart, Watson & Greenberg, 2011)라는 논문에서 interpersonal cycle for empathy(Barrett-Lennard)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것은 세 가지의 단계를 포함합니다.
바로 resonance, expression, 그리고 reception이죠.
상담자는 내담자가 말하는 것에 공명(완전히 이해하고, 음미하고, 본질을 알아차림) 해야 하고, 자신의 이해를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표현하며, 내담자는 상담자의 공감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감은 일방적인 과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적인 과정입니다.
상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업들이 그렇듯 말이죠.
처음에는 상담자의 공감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으실 수도 있어요. 상담자의 반응을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나의 두려움과 취약한 감정을 드러내는 게 부끄럽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누군가에게 공감받는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고, 상담자가 잘못 이해해 그 공감반응이 와닿지 않으실 수도 있죠.
그렇지만 상담을 진행하면서, 상담자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면, 서로 자유롭고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내 감정이 온전히 공감받고 수용받는 것을 경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느낀 것과 다르다면 표현하실 수 있고, 내가 느낀 것과 가까운 감정을 함께 찾아가며 더 깊이 이해받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상담에서의 공감은 그렇게 함께하는 과정이랍니다.
함께 치열하게 몰입하고, 경험하고, 이해하고, 알아주고, 안아주는. 따스하게 토닥여주는.
그렇게 발맞춰 나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