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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나 Apr 07. 2021

첫인상이 좋으면 다 괜찮아

외로운 바람의 땅으로 향하는 길, #2 Buenos Aires

아침 9시쯤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호르헤 뉴베리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출구로 나오면 도로 건너편에 바로 바다가 보이는 인상적인 공항이다. 


재작년, 처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왔을 때, 이 공항에 내려서 버스를 타기 위해 도로가로 나오자마자 보였던 풍경이 아직도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회색의 흐린 하늘 아래서 출렁이는 파도와 도로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낚시꾼들과 그들이 걸어놓은 기다란 낚싯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추웠고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친구를 버스정류장으로 보내고 나는 길을 건너 낚시꾼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들은 추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지만 결과물은 그렇게 훌륭하지 않았다. 춥지만 않다면 그 옆에 세워진 푸드 트럭에서 튀김과 맥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추웠고 길 건너에서 버스를 찾아다니던 친구가 얼른 건너오라고 손짓을 했다. 시내로 가는 버스는 쉽게 탈 수 있었다. 우리는 공항의 편의점에서 미리 버스 카드를 샀고 문제없이 탔으나 우리 앞의 배낭여행객 남자는 카드가 없었던지 다시 내렸다. 버스카드를 사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버스는 이내 출발하고 말았다. 한참 달리던 버스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지도를 떨어뜨렸고 그 지도는 공교롭게도 출입문 바닥에 떨어져서 문틈 밑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우리는 당황했고 버스 기사는 황당해했다. 다행히도 신호에 걸려 버스가 정차한 사이에 기사가 얼른 주우라고 시간을 줬고 내가 지도를 줍고 안전하게 앉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이것으로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좋은 첫인상을 갖게 되었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도 매번 올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리고 매번 날씨는 흐리고 하늘은 회색이다. 



나는 공항에서 시내로 어렵지 않게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마요 광장 역에 내려서 숙소를 찾아 움직였을 때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날씨는 자주 비가 오거나 흐렸다.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색 하늘이 걱정스러웠는데 역시나 비가 왔다. 짐이 될까 봐 우산도 안 챙겼는데, 첫날부터 우산 안 챙긴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고 이후 줄곧 비가 올 때마다 나의 우매함을 탓했다. 다행히도 굵은 빗방울이 아니라서 비를 맞으며 숙소를 찾아 플로리다 길로 걸어갔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10분은 넘게 걸어야 했다. 



플로리다 거리에만 가면 호스텔을 바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호스텔 찾기가 쉽지 않았다. 플로리다 거리는 완전 시내 한복판으로 유명한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도 내가 찾는 주소가 보이지 않았고 호스텔 간판도 안 보였다. 상점 앞에서 안내하는 직원들에게 물어물어 호스텔을 하나 찾았다. 이름도 내가 예약한 호스텔과 비슷해서 들어갔더니 예약자 명단에 내가 없단다. 헉! 그럴 리가... 나는 핸드폰 앱을 열어 내가 예약한 것을 보여주었다. 그걸 본 직원은 가여운 눈으로 나를 보더니 여기가 아니라 두 블록 더 가면 맞은편에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아... 당시 나의 모습은 비를 맞아 물에 빠진 생쥐꼴에다가 엄청난 부피의 배낭을 짊어지고 오느라 기진맥진해서 아직도 숨이 고르지 않았다. 소파에 기대어 놓은 배낭을 다시 메고 두 블록이나 걸어갈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호스텔의 분위기(뭔가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방이 있냐고 물었고 그 직원은 방이 있다고 건조하게 말했다. 다행히도 예약한 호스텔에 취소 수수료가 없어서 나는 바로 예약을 취소하고 이 호스텔에 체크인을 했다. 


체크인하기 이른 시간이지만 방 키를 받고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배정된 방에 들어갔다. 퀴퀴한 냄새가 나고, 이층 침대 3개가 이리저리 놓여있는 넓은 방이었다. 입구에서 가까운 침대에서 누군가가 자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멀리 있는 침대의 1층에 배낭을 내려놓고 조용히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어느새 일어났는지 맞은편 침대에 여자가 일어나 인사했다. 간단히 통성명하고 나는 서둘러 나왔다. 벌써 11시가 넘었다. 이미 우루과이로 가는 페리를 예약해둔 터라 30분 내로 페리 선착장에 도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루과이로 가는 페리를 타는 선착장은 구글 지도 상으로 호스텔과 가까워서 빠르게 걸어가면 될 듯했다. 거리는 비에 젖어있었으나 비는 그치고 있었다. 큰길에서 7블록 정도 걸어가면 선착장이 나온다니 부지런히 걸어가면 11시 30분쯤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약한 배는 12시 30분인데 적어도 1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걸음은 가벼웠고, 비가 흩뿌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멀리서 'Buquebus'라는 글자가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도 딱 맞다. 로비 앞에는 택시 기사들이 모여서 호객을 하고 있었다. 나는 창구로 가서 표를 보여주었다. 그. 런. 데! 직원이 표를 다시 돌려주며 여기가 아니라 다른 선착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순간 멘붕이 왔다. 왜? 왜 여기가 아니지?!


알고 봤더니 내가 산 표는 'Colonia Express'이고 페리를 타러 간 곳은 'Buquebus'만 떠나는 선착장이었던 것이다. 나는 페리 회사에 따라 선착장이 다른 줄도 모르고 구글 지도에서 맨 먼저 검색된 선착장을 아무런 의심 없이 찾아왔던 것이다. 아~ 왜 이걸 몰랐지... 정말 바보 같았다. 지도 보고 일부러 선착장 가까운 곳에 있는 호스텔도 예약했는데... (왜냐하면 우루과이를 당일로 다녀올 거라서 밤늦게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가 아니라니... 순간 정신이 혼미했지만 다시 정신 차리고 밖으로 나왔다. 


입구에 모여있던 택시기사들이 나에게 어디에 가냐고 일제히 묻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에게 나는 내 표를 보여주었다. 그 기사는 택시로 15분 정도 가야 되는데 지금 차가 막혀서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우선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빨리 가달라고 하면서. 그리고 돈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 생길 줄도 모르고 환전을 안 하고 왔다. 어차피 우루과이 가서 환전해야 하니 그때까진 돈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아르헨티나 페소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부족할 것 같았다. 택시의 요금 미터기는 계속 올라가고 차는 밀리고 비는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택시기사에게 페소가 부족한데 달러로 계산해되 되냐니까 된다고 했다. 그 와중에 50달러짜리 밖에 없는 건 또 뭔지... 택시기사는 자기는 가진 달러가 없으니까 50달러를 받고 페소로 거슬러주겠다고 했다. 환율을 터무니없이 낮게 불렀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1달러에 10페소는 넘을 텐데 8페소에 쳐주겠단다. 나는 안 된다, 10페소로 해달라 하며 실랑이가 시작됐는데, 갑자기 택시기사가 길가에 차를 세우더니 자기는 8페소가 아니면 안 바꿔주겠다, 만약 그게 싫으면 지금 여기서 내려라, 아니면 은행에 내려줄 테니 거기서 네가 환전해와라라며 험악한 표정으로 목청까지 높여 이야기했다. 순간 나는 심장이 쫄아들었고 위협을 느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창밖을 잠깐 바라보았다. 아주 자존심이 상하고 분했지만, 선심 쓰듯이 말했다. 


"그래. 알았어. 대신 15분 안에 도착해야 해!"

"그럼 돈 줘. 지금 바로 환전해줄게." 

"아니, 도착해서 줄게." 


택시기사는 바로 다시 출발했고, 운전하면서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차가 막히지만 네가 배를 탈 수 있게 최대한 빨리 가겠다며, 가면서 건물이나 길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까지 해 주었다. 택시 안에 감돌았던 전운의 공기는 이내 사라졌고, 나도 최선을 다해 대꾸해주었다. 하지만 속은 아직 속상하고 불안했다. 되도록 혼자 택시를 타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12시 10분쯤에 가까스로 도착했는데 다행히도 아직 승객들은 줄을 길게 서 있었고, 배는 출발이 15분 지연된 상태였다. 휴~ 맨 끝에 줄을 서면서 한숨 돌리는데 놀랍게도 나보다 더 늦은 사람들이 속속 도착해서 내 뒤에도 줄이 길어졌다. 출입국 수속을 느리게 하고 사람들이 차근차근 배에 타고, 비록 출발 시간이 지연됐지만 배는 순조롭게 출항해서 바다로 나갔다.


희뿌연 바다를 보며 이제 조금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엄청 긴 하루를 보낸 것 같은데 이제 겨우 반나절이 지났다. 오늘따라 길을 잘 못 찾아 고생했지만 다행히도 다 해결되었고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멀어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보며 정다우면서도 멋있는, 참 괜찮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Hasta lu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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