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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나 Apr 03. 2021

왜 마음이 무거운 걸까...?

외로운 바람의 땅으로 향하는 길, #1 프롤로그_In Asunción

2018년 1월, 아순시온. 


나는 여전히 파라과이에서 뜨거운 12월을 보내고 1월을 맞이했다. 작년보다 늘어난 지인들 덕분에 외롭지 않은 연말을 보내고 학생들과도 몇 번의 파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새해가 밝았고 1월이 되어있었다. 방학이 2월 중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한국인 동료나 몇몇 지인들은 벌써 한국이나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기에 주변이 조용했다. 더불어 나도 덥다 못해 뜨거운 아순시온을 벗어나려 파타고니아로 트레킹을 떠날 준비를 했다. 


물론 배낭여행이지만 이번 여행은 트레킹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다른 여행보다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했다. 거의 세 달 전부터 계획표를 짜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와 트레킹 코스 예약까지 부지런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틈틈이 운동도 하며 갑작스러운 도보 여행에 어려움이 닥치지 않도록 체력도 강화하였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를 해도 분명히 생각지도 못한 위기 상황이 올 수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혼자 하는 트레킹 여행이다 보니 약간의 비장한 마음도 들고, 나이 탓인지 고생스러움은 좀 피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체크하고 준비했다. 


이번 여행은 재작년에 파라과이에 오면서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로 여행 목록에 1번으로 적어둔 곳이다. 그만큼 가고 싶었고 기대가 많은 곳이다. 그러나 준비하는 동안 생각보다 신나거나 설레지 않았다.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배낭여행이라 긴장한 탓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동안 길게 또는 짧게 다녀온 여행에서는 모두 누군가와 함께 떠났었다. 함께 여행 계획을 짜고, 함께 할 무언가를 정하며 느꼈던 즐거움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에서 한 몫한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는 것이 번거롭다고 생각되어서 혼자 배낭을 들쳐 메고 훌쩍 떠날 때가 많았는데, 그땐 이런 마음이 아니었다. 가볍고 산뜻하게 잘도 떠났건만... 지금은 혼자 떠나려니 마음이 무겁고 긴장이 된다. 이것도 아마 나이 탓이리라... (나이 마흔이 넘으면서 이전과 달라진 뭔가가 생기면 뭐든 나이 탓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게 아니라면 이제 혼자 하는 여행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에 길들여졌기 때문일까... 고작 세네 번 정도만에?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마음이 왜 이리 신나지도 들뜨지도 않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마저도 놓게 되었는지... 


그러나 마음이 들뜨지 않는다고 계획을 다 엎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떠나지 않으면 황금 같은 시간을 더위와 싸우며 보내야 한다. 마음이 들뜨지 않으면 진중하고 신중한 마음으로 떠나면 될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꼼꼼히 일정을 체크하고 빠트린 물건들이 없나 확인했다.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 및 트레킹 투어 바우처 인쇄본들을 챙기고 휴대폰에 파일로도 저장해두었다. 앞으로 거의 한 달간 비울 집 청소도 하고 침구들도 모두 넣어 두었다. 아래층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에게 가서 한 달 동안 집을 비울 것이라고 말하고 내 사랑스러운 반려 식물들도 부탁했다. 


이제 완벽하게 떠날 준비가 되었다. 가끔 여행을 떠나기 전에 혹시나 내가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망측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마냥 신나지만은 않고 그만큼 긴장이 된다는 것이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는 계속 이 긴장을 늦추지 못할 것 같다. 


나이 마흔에 여자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난 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일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꿈도 꾸지 않는 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많아져서 배낭여행이 예전보다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나이대에 맞는 즐거움은 항상 존재한다. 하긴 좀 더 젊다면 젊은 에너지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내 나이와 에너지에 맞는 활동을 하면 될 것이다.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너무 들떠서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닐 필요도 없다. 무사히만 다녀오자. 


아르헨티나로 떠나는 날 아침, 나는 잘 정돈된 집안을 한 번 휘 둘러보고 무사히 다녀올 수 있길 기도하며 찬란한 햇살과 함께 길을 나섰다. Buena Sue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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