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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나 Apr 16. 2021

우루과이에 점을 찍고 왔다

외로운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 #3 Colonia - Uruguay

우루과이의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가까워서 페리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페리로 편도 한 시간 20분 남짓 걸린다. 그래서 남미 여행 중에 우루과이를 맛보기로만 볼 사람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콜로니아로 반나절 관광을 오기도 한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페리에서 내리면 남미의 어느 공항 못지않은 시설을 갖춘 선착장에 닿게 된다. 거기에서 투어를 신청해서 버스로 이동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도보로 갈 것이기에 무작정 출구로 나섰다. 구글 지도를 보며 관광지를 찾아 길을 더듬어 걸었다. 이슬비가 흩뿌렸지만 걸을만했다. 비가 오려는 건지 그치려는 건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몇 블록 걸어가니 관광안내소가 나왔다. 비도 피하고 지도도 얻을 겸 안내소로 들어갔다. (나는 여행 가는 곳마다 관광안내소를 잘 이용한다. 거기에서 지도도 얻고 여러 가지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웬만하면 어디에서든 첫날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관광안내소를 찾아가는 일이다.) 한산한 안내소에서 영어가 유창한 안내원이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내가 스페인어로 대답하는 데도 굳이 영어를 고집했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나... 여하튼 나는 계속 스페인어로 말했고 그녀는 계속 영어로 말했다. 나는 지도와 맛집 정보를 얻어 나오며, 혹시나 해서 버스도 물었으나 그녀가 대답하길 버스를 탈 필요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럼 투어버스는 뭐지? 비가 계속 와서 투어버스를 탈 걸 그랬나 싶었지만 안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어 블록 걸어가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로컬 레스토랑들이 즐비했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레스토랑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길가에 드리운 차양 아래에 테이블을 내놓고 길의 반은 사람이 통행하고 반은 테이블에 사람들이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나는 가장 끝에 있는 2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한참만에 할아버지 웨이터가 왔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가장 문화충격이었던 것 중에 하나는 할아버지 웨이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뒷짐 지고 청년들에게 잔소리를 못해서 안달 난 듯한 할아버지들이 내가 본 전부인데, 유럽과 남미에서 본 할아버지 웨이터들은 자상한 미소를 머금고 프로페셔널하게 서빙을 해 주고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에 최선을 다한다. 이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이겠지만 늦은 나이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체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선 맥주를 주문하고 간단하게 먹을 만한 것을 고르는데 쉽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뭘 먹나 하고 넌저시 봤더니 할아버지가 옆 테이블에서 먹는 음식의 이름을 메뉴판에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그의 배려로 나는 자신감을 얻어 동그란 저것이 뭐냐고 물었고 그건 오징어 튀김이라고 그가 알려주었다. 나는 오징어 튀김과 맥주를 주문했고, 할아버지는 음식을 서빙을 한 후에도 내게 맛있냐며 더 필요한 것은 없냐며 여러 번 오가며 관심을 가져주었다. 맥주 두 병을 비우고 나니 비가 그쳤다. 팁을 주고 싶었으나 카드와 아르헨티나 페소 밖에 없었다. 카드를 주며 팁을 같이 계산해달라고 했더니 그가 내 손에 들려있는 아르헨티나 페소를 보며 그것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지폐 몇 장을 그에게 팁으로 주었다. 그가 코와 눈을 찡긋하며 고맙다고 했다. 뭔가 좀 느끼했지만 그의 따뜻한 서비스에 감사를 표하며 일어서 나왔다. 



몇 블록 더 걸어가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관광지 스폿이 나왔고 곧 바다도 나왔다. 희뿌연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도 보였다. 날씨가 흐려서 하늘까지 회색이라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 모를 정도로 같은 색깔이었다. 난 바다를 참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본 바다는 내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회색빛 바다였다. 그래도 바다 냄새가 바람에 날려와서 위안이 되었다.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길에서 빠르게 벗어나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 걸어갔더니 성벽과 성문이 보였다. Colonia del sacramento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이곳은 1680년대에 포르투갈에 의해서 세워진 곳이고, 당시 남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이곳을 두고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다는 곳이다. 식민지 시대의 성벽과 마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길도 그때 깔았던 돌바닥으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유지 덕분에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울퉁불퉁하지만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길을 따라 걸었더니 파스텔톤의 예쁜 집들도 보였고 이국적인 카페들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오래된 집들이지만 빛바랜 색이 예쁘다. 돌을 빽빽하게 쌓아서 지은 집도 이국적이고 낡아서 허물어질듯한 집마저도 예술가의 감각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게 큰 마을이 아니기 때문에 한 시간 좀 넘게 걸었더니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마을 중앙쯤에 등대가 있는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등대에 올라가기 위해서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등대에 올라가 보고 싶었으나 줄 서는 것은 싫었다. 그래서 패스.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가는 배를 저녁 8시 배로 예약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여기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 때문일까 여기도 타일이 유명했다. 타일에 그림을 그리거나 이름을 새겨주는 공방들이 많았다. 공방 몇 군데를 들러서 타일을 몇 개 샀다. 다행히도 아르헨티나 페소도 잘 통했고, 카드도 잘 받아주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맥주나 한잔하면서 시간을 보내야겠다며 카페를 찾아 나섰다. 이렇게 심심할 수가... 혼자여서일까?... 날씨 탓일까? 기분이 급 다운되면서 차라리 얼른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돌아다녀서 피곤하고, 날씨 때문에 춥고, 혼자여서 외로웠다. 



집 나오면 고생이다라는 생각이 여행 하루 만에 들다니... 예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정말 나이 탓일까. 여행 스타일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여행지에 점만 찍고 가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어디를 가든 최소 하루 이상은 머물다 오는데, 이렇게 반나절만에 점만 찍고 가다니... 그 반나절도 채울 수 없을 만큼 지루해하다니... 나도 내가 낯설었다. 관광객으로서의 나는 뭔가 어색했다.


우루과이 축구선수 루이스 수아레스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우루과이에 간다고 했더니 진심으로 부러워하며 다녀와서 이야기해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 별로 해 줄 말이 없다. 좀 지루하고 좀 외로웠다는 말밖에...


점만 찍고 다니는 여행은 남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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