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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나 Aug 21. 2021

또 한 번의 배낭여행이 끝나고

외로운 바람의 땅을 지나, #16 에필로그 _ In Asuncion

새벽에 파라과이 아순시온 공항에 내렸다. 지인이 마중 나오겠다는 것을 극구 사양하고 택시를 잡아 탔다. 그나마 나는 파라과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서 새벽에 택시 타는 것이 좀 덜 두렵다. 그래도 여전히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택시가 집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그제야 모든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이 느껴졌다.


20일 넘게 비운 집에는 먼지가 수북했고 베란다 문틈 밑으로 나뭇잎까지 굴러 들어와 있어 바로 쉴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이번 여행은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았다. 트레킹으로 인해 파김치가 되고 저절로 다이어트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더 튼튼해진 느낌이었다. 남은 기운으로 청소하고 씻고 나니 날이 밝았다. 배가 고파서 라면을 하나 끓였다. 아침부터 라면이라니! 그러나 라면은 언제나 옳다.


오후 늦게 일어나 아래층 사무실에 가서 집주인에게 무사귀환을 신고하고 나의 반려 식물들을 찾아왔다. 그사이 자라고 잎이 무성해졌다. 그중 하나는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아순시온은 여전히 너무 더웠다. 정말 태양이 작렬하는 느낌이었다. 맥주 한 팩과 주전부리들도 샀다. 고기와 채소도 가득 사서 냉장고에 쟁여놓고 베란다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를 땄다. 이제야 안전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다.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집에서 일상을 즐기는 것도 좋다.




맥주를 마시며 지난 3주간의 여행을 되짚어 보았다.

파타고니아 여행은 작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자주 정보를 찾아보고 준비도 오래 했었다. 그 덕분인지 여행이 조금은 덜 피곤했다. 물론 계획에 딱딱 맞아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비행기는 미리 예약을 해 놓아서 날짜와 시간에 맞춰서 타면 됐었고, 가끔 버스 시간이 지연되거나, 버스가 없어서 조금 돌아가기도 했지만 일정에는 크게 지장을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는 곳마다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푸콘에서는 좀 아쉬웠지만)


이번 여행은 트레킹을 목적으로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을 3번씩이나 넘나들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유독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렸던 여행이었다. 트레킹 하는 시간이 많았던 탓에 혼자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완전히 머리를 비우고 걷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눈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머리엔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지난날의 시간 어디쯤을 내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동행이 있었다면 과거의 기억을 헤집고 다니지는 않았을지도... 현재에 만족하고 순간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혼자 떠났지만 혼자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배낭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가는 길마다 새로운 동행을 만나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되는 것이 배낭여행의 묘미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혼자 다닐 때가 더 많았고 어울릴만한 다른 여행자를 못 만난 것이 아쉬웠다. 특히 토레스 델 파이네를 혼자 트레킹 했던 시간이 제일 외로웠던 것 같다. 그 좋은 풍광을 보고 혼자 감탄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외로웠다. 그래도 짧게 만났지만 긴 여운을 주는 이들도 있었고, 스치듯 지났지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사람들도 만났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행은 제일 처음 엘찰텐에서 만났던 브라질인 데이비슨이다. 데이비슨은 자신이 사는 아마존으로 돌아가 회사에 복귀했다며 메시지를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찍었던 나의 사진도 보내주었다. 참 친절한 사람이다. 이렇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인연을 이어가면 계속 그 여행을 생각하게 되어서 좋다.


그러니, 결국 여행은 사람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일까, 이번 여행을 하면서 혼자 고군분투하듯 다니는 여행은 좀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무거운 배낭을 메고 뜀박질해야 하는 여행은 힘에 부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도 이제 우아하게 트렁크 끌고 호텔로 가고, 여행사에서 모시러 오고 모셔다 주는 그런 패키지여행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내 성격에 어쩌면 그런 단체 여행을 했다가는 하루도 안 돼서 혼자 이탈하고 말 것이다. 여행은 확실히 자신의 색깔에 맞춰야 한다. 그러니 배낭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난이도를 잘 조절해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조만간 나는 또다시 배낭을 메고 뜀박질하고 있을 것 같다.


배낭여행을 하던 사람들은 쉽게 배낭을 버리지 못한다. 외롭고 힘에 부치더라도 혼자 하는 배낭여행에서 인생의 즐거움과 삶을 그리고 사람을 배울 수 있기에 인내할 수 있으며, 또 다음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래, 그리고 자주 배낭을 메고 떠나고 싶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후회스러운 일은 물론 아쉬운 일도 있었고 지독하게 외로웠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여행도 내 인생에서 그저 나중에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여행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2018년 1월 5일 ~ 1월 25일까지 외로운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 여행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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