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쿠바에 가기 위해 파나마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쿠바 여행은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만 품어 왔던 일이었다. 십여 년 전 과테말라에서 살 때 쿠바 여행을 하지 못했던 것이 그동안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었는데 드디어 배낭을 메고 쿠바로 향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들뜨고 즐거운 마음이었다.
쿠바는 우리나라와 미수교국이라 비자가 필요했다. 북한과 수교국이라는 것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어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비자는 돈만 있으면 바로 구입이 가능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비행기(Copa Airlines) 티켓팅 할 때 바로 구입했다. 25달러를 결재하면 바로 받을 수 있었다.
너무 여유롭게 공항에 와서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었다. 공항에서 기다리는데 카톡으로 쿠바 공항에서 동행하기로 한 사람에게서 '어제 왜 안 왔어요?'라는 메시지가 왔다. 사실 나는 지난 여행에서 너무나 외로웠기 때문에 미리 동행을 구하려고 남미 여행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하바나 여행을 같이 할 동행을 미리 구했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낯설기도 하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동행 하나 없이 14일을 혼자 외롭게 보내기는 싫었기 때문에 낯간지러움을 불사하고 동행 구하기에 참가해서 나와 도착 시간이 비슷한 한 명을 구할 수 있었다. 보통 하바나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택시비가 비싸기 때문에 이렇게 공항에서 만나서 함께 이동하는 경우가 쿠바 배낭여행객들에겐 흔한 일이었다.
메시지를 받고 나는 놀라서 '무슨 소리냐, 나는 오늘 도착한다.'라고 보냈더니 그쪽에서 '우리 어제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지난 메시지 확인해보라.' 그래서 확인했더니... 맙소사! 내가 도착 날짜를 하루 앞당겨 적었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어제 파나마에 도착해서 하루 동안 파나마 구시가지를 혼자 돌아다니며 놀다가 오늘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거였는데, 파나마 도착 날짜를 잘못 알려주었던 것이었다. 나는 실수가 있었다며,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고 하바나에서 만나게 되면 밥이라도 사겠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하바나의 랜드마크 중에 하나인 '까삐똘리오'에서 만나기로 다시 약속을 했다. 쿠바는 인터넷 사용이 어렵기 때문에 그분은 어제 공항에서 연락도 못하고 한 시간 넘게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너무 미안했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는지 나도 이해가 안 가지만... 나는 종종 이런 실수를 하곤 한다.
파나마시티 공항은 중남미의 허브 공항답게 다른 중남미 나라의 공항보다 넓었고 시설도 쾌적했다. 사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배낭의 무게를 생각하며 참고 또 참다가 드디어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어 비행기를 타러 갔다. 운 좋게 이코노미석 맨 앞줄에 자리를 배정받아서 기분 좋았으나 중간 자리라 제발 옆자리가 비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내가 앉고 잠시 후에 아주 덩치가 큰 멕시코인을 연상시키는 콧수염 아저씨가 앉았다. '오! 디오스 미오!(oh my god)'를 속으로 외쳤지만 겉으론 아주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그 아저씨는 복도쪽 자리였다. 제발 창가 자리에 사람이 앉지 않기를 바랐으나 잠시 후 아주 건장한 근육질의 남미 남자가 자기 자리가 창가 자리니 좀 들어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고 나란히 앉았다. 나는 두 덩치 사이에 꼭 끼인 무말랭이가 된 느낌이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고개는 빠빳히 세우고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이러고 세 시간이나 가야 한다니 기절할 것만 같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창가 쪽에 앉은 근육질의 남자가 이렇게 불편하게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덩치가 커서 미안하다며 편하게 있으라며 어깨를 약간 창가 쪽으로 비켜주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콧수염 아저씨도 부스럭거리며 약간 틈을 넓혀 주었다. 덕분에 조금은 편한 상태가 되었지만 우리는 어좁이처럼 서로 어깨를 좁혀가며 나란히 앉아서 간식도 먹고 음료도 마시며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쿠바인이었고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했더니, "Norte?"라며 둘 다 약간 놀라면서 북한 사람이냐고 물었다.
"아니. 난 남쪽의 한국 사람이야. 난 태어나서 한 번도 북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어. 너희는 만나봤어?"라고 물었다.
"나도 만나본 적이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라고 둘 다 약간 김이 샌 듯이 말했다.
"당연하지. 북한 사람들은 이렇게 해외에 나돌아 다닐 수가 없어. 그러니까 보기 어렵지."라고 나는 내가 남쪽에서 온 한국인이라는 것을 약간 자랑하듯 말했다. 그들은 내게 쿠바에 가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난 아주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더니 그들의 어깨가 약간 올라갔다.
우리는 조금 친해져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콧수염 아저씨는 쿠바인이지만 지금은 콜롬비아에서 살고 있으며 가수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가수라는 소리에 흔히 TV에 나오는 가수를 떠올렸는데 그는 TV에 가끔 나올 때도 있지만 주로 공연을 하러 다닌다며, 지금도 하바나에 공연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근육질의 남자는 축구선수인데 지금은 에콰도르에서 축구선수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근육과 그을린 피부가 심상찮아 보였는데 다름 아닌 축구 선수였던 것이었다. 그는 휴가차 고향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만나서 영광이라며 호들갑을 좀 떨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수첩을 그들에게 내밀며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조금 당황했으나 흐뭇해하며 기꺼이 사인을 해줬다. 처음의 그 뜨악했던 기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들 사이에 끼어서 불편하지도 편하지도 않게 약간의 유쾌함과 함께 비행시간은 금방 흘렀다. 물론 중간에 콧수염 아저씨는 나직이 코를 골며 잠들어 버렸지만 크게 거슬리지도 않았다.
나도 잠깐 졸았다가 깨니 비행기는 하바나 상공을 날고 있었다. 그들과 비행기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짐을 찾아 게이트를 나왔다. 허름하면서도 여느 남미 공항과 비슷해서 익숙한 느낌이 더운 바람과 함께 훅 끼쳤다. 내 배낭이 늦게 나와서 내가 게이트로 나왔을 때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승객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고 로비는 한산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내 옆자리에 앉았던 이들을 눈으로 찾아보았지만 가족이 마중을 나오기로 했다는 그들은 이미 공항을 빠져나간 듯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한국 사람도 한 명도 없고 나처럼 배낭을 멘 사람도 없냐'며 속으로 투덜대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한 무리의 택시기사들이 하바나 시내 가냐며 서로 자기 택시를 타라고 손짓을 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택시를 타고 나가야 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30 쿡을 달라고 했다. '이런 코 베갈 놈들.' 속으로 욕하며 깎아달라고 하니 25 쿡까지 내려갔다. 그래도 비싼 거였다. 나는 친구가 올 것이라며 그들을 뿌리치고 우선 밖으로 나갔다. 참 한산한 곳이었다. 택시가 보여서 가서 가격을 물었더니 더 높은 가격을 불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블로그에서 본 정보가 생각났다. '만약 하바나 시내로 가는 택시 동행을 못 찾았을 경우 공항 2층으로 올라가 보시오. 그곳에서 출국하는 이들을 내려주고 나가는 빈 택시 탈 수 있는데 조금 저렴하게 탈 수 있을 것이오.'라는 말이 생각나서 혹시나하고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사실 그곳에서 택시를 탑승하는 것은 불법인데, 내가 올라갔을 때 경찰도 없었고 택시 한 대에서 승객이 짐을 내리고 있었다. 빈 택시가 된 그 택시가 내 앞에 섰고 아주 짧고 간결한 흥정으로 나는 15 쿡에 하바나 시내로 올 수 있었다.
택시는 나를 '까사 호아끼나' 호스텔 앞에 내려 주었다. 까삐똘리오 바로 옆이었다. 나는 쿠바에서 묵을 호스텔을 하나도 예약하지 않고 주소만 찾아서 메모해 왔다. 내가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굳이 예약을 하지 않아도 호스텔은 많으니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호스텔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인터넷 사정이 안 좋기 때문에 에어비앤비나 비싼 호텔이 아니면 예약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날로그의 세계로 들어온 듯해서 진정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까사 호아끼나'에 침대가 있었다. 개인실도 있었으나 답답해 보여서 나는 여성 4인 도미토리 침대에 짐을 풀었다. 여기 이틀 있다가 모레는 '바라데로'로 갈 것이기 때문에 침대에 쿠션이 없어서 바닥까지 꺼져도 참을 만했다. 배낭 여행객 사이에서 운이 좋아야 이곳에 묵을 수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나는운 좋게 바로 침대를 잡았고, 내일과 다음 주에 하바나로 돌아와서 잘 침대까지 미리 예약을 했다. '까사 호아끼나' 호스텔이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이 집에만 있다는 '정보북' 때문이었다. 인터넷 사용이 불편한 쿠바에서 정보를 찾거나 공유하기가 쉽지 않은데, 몇 년 전부터 이 집에 온 한국인 손님들이 자신이 공유하고자 하는 정보를 적기 시작했고, 그 공책이 지금은 두 권의 방대한 정보책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이 집에 묵지 않아도 그 책을 보기 위해서 굳이 들를 정도로 유명하고, 또 이 집의 주인 내외는 그렇게 들른 사람들에게도 기꺼이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내가 짐을 풀고 거실로 나가니 몇몇의 한국인들이 그 유명한 정보북을 보고 있었다. 나는 베란다에서 쿠바의 첫인상을 감상하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늦은 오후의 햇살은 따뜻했고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가 살짝살짝 흔들렸다. 호스텔 앞 길거리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느릿느릿 느린 걸음으로 지나가고, 자전거 택시가 들뜬 표정을 한 이들을 어디론가로 따릉거리며 모셔가고, 짐을 실은 오토바이가 나직하게 부릉거리며 지나갔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평화로운 오후였다.
정보북에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나는 필요한 정보를 몇 개 옮겨 적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저녁 약속 시간을 기다렸다. 책을 보다가 고개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 덧 밖은 어두워졌고, 그 순간 마법처럼 까삐똘리오 근처에 예쁜 가로등들이 밝혀졌다. 쿠바는 상상했던것 보다 예뻤고 마음에 들었다. 사회주의 공산국가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쿠바는 아마 중남미에서 외국인에게 가장 안전한 나라일 것이다. 국가 개방 후 관광산업의 활력을 위해 외국인 보호 정책을 제정해서 그 처벌이 어마 무시함으로 쿠바인들은 외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는 절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작업일지는 모르겠으나) 쿠바 남자들은 쉽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약속한 7시가 되기 삼십 분 전부터 까삐똘리오에 나가서 조금 걷기도 하고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하바나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만나지 못했던 동행을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나 한국인 여자 한 명과 남미 현지인 여자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우린 서로 인사하고 어제의 나의 실수를 다시 한번 사과했다. 함께 온 다른 여자는 멕시코인인데 어제 비행기에서 만났고, 공항에서 함께 나를 찾아다녔다고 했다. 우리는 약간의 산책을 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그 멕시코 여자가 안내하는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의 이름은 모르지만, 유명한 식당이었던지 거의 삼십 분을 넘게 기다렸다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스테이크나 구운 생선과 쿠바식 덮밥이 어우러진, 쿠바식과 서양식의 컬래버레이션 같은 그런 음식들이었는데 맛은 있었다. 물론 식사는 어제 일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시로 내가 대접했다. 대접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박하게도 셋이 식사에 음료까지 포함해 18 쿡(1 쿡=1 USD)밖에 하지 않았다. 쿠바가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적용하는 가격이 다르고, 외국인에게 내국인보다 10배가 넘는 가격을 적용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비싸다거나 바가지를 썼다거나 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식사 후에 바다가 보이는 해변인 말레꼰으로 산책을 갔다. 식사 이후에 조금 더 가까워진 우리는 내일도 같이 하바나 투어를 하기로 했다. 한국인 여자 K 씨와 멕시코인 여자 칼리 씨, 이들이 쿠바에서 나의 첫 동행이 되었다. K 씨는 어제 '까사 호아끼나'에 침대가 없어서 다른 곳에 칼리 씨와 같이 숙소를 잡았다며 아쉬워했다. 그들은 나를 호스텔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정보북을 볼 겸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그들과 함께 할 내일의 여행도 기대가 되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도 즐거움이 더해져 들뜬 기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불편한 침대와 내가 쿠바에 왔다는 감격스러운 사실 때문에 쉽게 잠들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