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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나 Sep 18. 2021

우여곡절의 하루

안녕! 나의 쿠바 #3. Varadero_바라데로 리조트올인클루시브

쿠바에서 맞이하는 셋째 날, 이날은 하바나에서 바라데로로 이동해서 바라데로 바닷가에서 하루를 보낼 예정이었다. 산호빛 카리브해를 머릿속에 그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식사하기 전에 짐을 정리해서 바로 체크아웃했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과묵한 주인아저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제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가 우리 집에 왔었는데 넌 못 봤지?" 라며 콧대를 높여 자랑했다. 

"엉? 배우? 한국 배우가 여길 왔어? 아, 아쉽다. 난 못 봤어." 난 어제 라 플로리다 앞에서 본 그 연예인을 말하는 줄 알고 그냥 건성으로 표정만 아쉽다는 말을 하고 돌아섰다. 


"언니, 글쎄 여기에 어제 낮에 류준열이 왔었대요!"

"트레블러 촬영하러 왔다가 여기도 들러 본 거래요. 근데 여긴 안 찍고 그냥 둘러만 보고 갔어."

"아, 아까워. 왜 하필 내가 없는 낮에 왔대. 오늘 하바나 돌아다니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마침 거실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던, 내 옆 침대와 옆 방에 머물던 애들이 나를 향해서 보충 설명을 해 주며 한 마디씩 보탰다. 사실 난 연예인에 별로 크게 관심이 없어서 '아, 그랬구나'하고 말았다. 한참 연예인에 관심 많을 나이로 보이는 그녀들에겐 큰 이슈였다. 그런 그녀들의 에너지가 부러웠다. 


 아침을 먹고 거실로 나오니 K와 칼리가 벌써 와 있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그녀들이 여기에 숙박하고 있다고 착각할 것이다. 여기서 Y를 만나기로 했단다. K와 칼리, 나 그리고 어제 만났던 Y. 이렇게 넷이 바라데로 멤버가 되었다. 나는 비아술(쿠바의 고속버스)을 예약했기 때문에 먼저 출발하고 그녀들은 어제 예약한 택시를 타고 나보다 좀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호스텔에서 비아술터미널까지는 20분밖에 안 걸린다고 했으나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있어서 조금 일찍 나왔다. 역시나 택시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게 부르는 두 대의 택시를 보내고 그나마 적정한 가격인 5 쿡을 제시하는 택시를 탔다. 다행히 비아술터미널에 여유롭게 도착했다. 카운터에서 예약 명단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어렵지 않게 표를 받았다. 그런데 출발 시간인 10시가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10분, 20분이 지났고 카운터에 가서 몇 번이나 확인해 보았으나 곧 올 거라며 기다리라고만 했다.  


태연하게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독 여자애 한 명이 나처럼 카운터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자주 확인했다. 그러다 우리는 약간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도 쿠바인이라고 했다. 쿠바인이지만 지금은 캘리포니아에서 공부하고 있다며 방학이어서 여행 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쿠바인이라기보다는 에스파냐인에 가까웠고, 한눈에도 잘 사는 집 딸 같았다. 그녀는 쿠바는 늘 이런 식으로 시간을 맞추는 것이 없다며, 쿠바인이 느려서 그렇다고 자신은 쿠바인이 아닌 것처럼 쿠바인을 비하했다. 그리고 아주 억센 억양의 영어로 말했다. 나는 스페인어로 말하고 그녀는 영어로 말했지만 의사소통은 잘 되었다. 


30분이 지난 후에 바라데로로 가는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는 생각보다 쾌적했다. 우리나라의 시외버스 정도로 보였다. 깔끔하게 제복을 차려입은 기사가 짐을 받아 넣으면서 보관증도 주었다. 제시간에 출발하지 못하는 것 빼고는 괜찮았다. 버스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는 3시간을 계속 달려서 1시 40분에 바라데로에 도착했다. 


원래 도착시간은 1시 5분이었는데 삼십 분이나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또 뭔가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하바나에서 택시를 타고 오는 오늘의 일행들이 시간 맞춰 여기를 지나게 되면 나를 픽업하기로 했으나 시간이 어긋나는 바람에 그녀들이 지나갔는지 아니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아침에 약속하기를 만약 버스터미널에서 못 만나면 우리가 가기로 한 리조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름 완벽한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때까지도 깨닫지 못했고, 약속을 아주 쉽고 단순하게 했다. 


내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이미 많은 승객들이 택시를 타고 떠나고 없었다. 택시 동행도 택시도 없었다. 그때 하바나 비아술터미널에서 알게 된 여자애가 남자 친구와 캐리어를 끌며 터미널에서 나오고 있었다. 뒤이어 어디선가 택시가 나타났다. 아마도 그녀가 예약을 했거나 부른 택시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익스피리언스' 리조트에 가는데 방향이 같으면 동승해도 되나고 물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다행인지 그녀도 같은 리조트에 간다고 했다. 그녀는 기꺼이 함께 가도 된다며 반겼고, 그의 남자 친구까지 세 명이 비용을 나눠내기로 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내 배낭을 싣고는 돈을 더 내야 한다고 했다. 그 순간 그녀가 뭐라고 정말 따발총처럼 쏘아붙이니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트렁크를 닫았다.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해서 뭐라고 했는지 진심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리조트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리조트에 내려서 그들과 사이좋게 로비로 들어갔다. 그녀와 남자 친구가 체크인을 할 동안 나는 체크인 명단에 K의 이름이 있는지 혹은 내 이름이나 Y의 이름은 없는지를 확인했다. 카운터 직원은 이름이 없다며 최종 확인차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오늘 체크인한 한국인 여자는 없다고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오! 디오스 미오!!! 


머리가 어질 해졌다. 분명히 우리가 오기로 한 곳은 '익스피리언스'리조트가 맞는데 도대체 그녀들은 어디로 갔단말인가? 사실 우리는 리조트 예약은 하지 않았고 들은 정보를 종합하여 가장 저렴하면서도 시설이 좋다는 이곳에 당일 체크인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녀들이 없었다. 다른 곳이라면 전화나 메시지 한 통이면 해결될 일인데, 쿠바에선 답이 없었다. 



한동안 로비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를 보면서 멍하니 기다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인터넷 카드를 샀다. 혹시나 그녀들이 리조트에 도착했다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서 메시지를 보내고 응답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사이 나와 함께 이 리조트에 도착했던 그 커플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로비에 나타났다. 나는 여기서 친구들을 찾지 못했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녀는 아주 딱하게 나를 보더니 카운터에 가서 자기가 다시 물어보겠다고 카운터 직원에게 뭐라 뭐라 한참을 떠들다 왔다. 어찌 보면 오지라퍼 같지만 참 고맙고, 차가운 외모에 비해 참 친절한 사람이었다. 


카운터에서 돌아온 그녀가 말했다. 

"너의 친구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여기에 오지 않은 것은 확실해." 그녀는 여전히 억센 영어로 말했다.  

"그래. 나도 알아. 지금 메시지를 보내고 회신을 기다리고 있어."

"회신이 안 올 수도 있어. 쿠바에서는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어." 그녀는 쿠바의 단점을 부각하는 버릇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나는 기운 없이 대답했다. 

"여기 아래쪽에 또 다른 호텔이 있는데 거기도 '익스피리언스'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어. 거기에 한번 가봐." 

"정말? 여기서 가까워?"

"응, 도로를 따라서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다른 리조트가 있어. 하지만 여기랑 거의 같은 곳이야."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거기라도 한번 가봐야겠다며 일어섰다. 


"만약에 너의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면 다시 여기로 와서 우리랑 같이 놀자."라고 그녀가 말했다. 정말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그림자처럼 그녀에게 붙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천사 같은 사람들을 봤나... 나는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친구를 못 찾게 되면 너희를 찾으러 오겠다고 말하고 '엘레나'라는 그녀의 이름을 확인하듯이 부르고 그들과 헤어졌다.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다른 리조트가 있었는데, 호텔 이름에 익스피리언스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회원제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내가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말이다.) 당연히 체크인 리스트에 K나 Y의 이름은 없었고, 나는 망연자실해서 또는 너무나 더운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서 시원한 로비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사실 나는 바라데로에서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에 갈 계획은 없었다. 그저 비아술터미널과 가까운 곳의 호스텔에 짐을 풀고 카리브해 바다를 조금만 즐기고 싶었다. 내일 아침 일찍 산타클라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이 아니면 바라데로를 즐길 시간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라데로 리조트의 올인클루시브는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아주 쌀뿐만 아니라 음식도 맛있다며, 바라데로에서 올인클루시브를 건너뛴다면 나중에 아주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이성을 잃고 합류를 결정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내일 아침 7시 버스를 타야 하는 나의 상황에서는 올인클루시브가 별로 경제적이지 않았다. 아무리 밤새도록 공짜로 먹고 마실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람이 먹는 것에 한계라는 것이 있는데, 욕심만 앞섰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는 뷔페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 사실마저도 까먹어버리고 약속을 하고 말았다. 


호텔 직원들은 친절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거지꼴을 한 동양인 여자가 배낭을 소파 옆에 내팽개쳐 놓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호텔의 정원이며 카페를 기웃거려도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를 도와주겠다며 바라데로의 다른 호텔로 전화를 걸어 K의 이름이 있는지를 확인해 주었다. 비록 몇 군데 전화를 하고는 말았지만 그들의 그러한 태도는 아주 감동적이었다. 다른 곳, 특히 미국이나 한국에서 이런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녀들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고 오늘 묵을 호스텔을 찾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잘 정돈된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사이 K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는데 (같은 '익스피리언스' 호텔이라서 좀 전에 리조트에서 샀던 인터넷 카드 덕분에 호텔에서도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거의 포기한 마음으로 배낭을 메고 호스텔을 찾아 나서려 했다. 배낭을 메고 보니, 보조 가방에서 휴대폰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메시지를 확인했더니 K가 보낸 '언니, 어디에 있어요?'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그녀가 보낸 메시지는 20분이나 전에 온 것이었다. 자신들은 지금 '메모리즈'리조트에 있다며, 그쪽으로 오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아까 전화를 해 주던 직원에게 가서 친구들이 메모리즈 리조트에 있다는데 혹시 전화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호텔 직원은 메모리즈도 두 군데가 있는데 어느 곳이냐며 물었다. 여긴 왜 같은 이름을 쓰는 곳들이 꼭 둘씩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두 군데 다 전화해보기로 했는데, 다행히 첫 번째 통화에서 나의 동행들이 체크인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쪽 직원이 그녀들에게 이쪽으로 전화하라는 메모를 전달하기로 했다. 나는 전화를 기다렸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직원이 불렀다. 전화를 받아보라고 했다. 수화기를 드니 K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이산가족처럼 반가워하며 빠르게 이야기했다. 그녀들은 가장 먼저 '익스피리언스'에 갔으나 비용이 너무 비싸서 다른 호텔을 알아보고 다니느라 이제 겨우 적당한 가격의 호텔을 찾아서 체크인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비용까지 이미 지불했으니 내가 꼭 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주소를 확인하고 곧 출발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내가 그녀들과 통화를 하고자 했던 목적은 '나는 다른 호스텔로 갈 터이니, 너희들끼리 리조트에서 즐겁게 놀아라. 그리고 건강히 여행 잘하라.'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말은 꺼내지 못했고 이미 4시가 넘어버린 이 시간에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에 체크인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 되어 버렸다. 


택시를 타려고 그녀들이 있는 리조트를 확인하니 바라데로에서도 가장 끝에 있는 리조트였다. 택시비도 무려 20 쿡이나 불렀다. 나는 속으로 '도둑놈들'을 외쳤지만 겉으론 아주 차분하게 겨우 흥정해서 13 쿡에 갈 수 있었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하바나에서 택시를 타고 그녀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더 나았다. 택시비는 택시비대로 쓰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게 뭔가 싶었다. 


더 속상한 것은 리조트에 도착해서도 뭔가가 잘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동행들은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고생이었고 그녀들도 그녀들 대로 즐기지 못하고 고생이었다. 더군다나 칼리는 바라데로에 오자마자 혼자 가겠다고 해서 가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숙박료의 비용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그녀들의 설명을 들으며 방으로 향했다. 그녀들도 도착 후에 로비 근처에서만 쉬다가 방에 아직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어렵사리 방을 찾아 들어가니 방 키에 문제가 있는지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K가 리셉션으로 뛰어가고 나는 가방 위에 쓰러지다시피 기대앉았다. 한참만에 K가 돌아왔고 새 카드키를 가지고 왔다. 다행히 잘 열렸다. 우리는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쓰러지며 드디어 안도를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나는 하루 종일 굶었기에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었다. 해산물이 가득한 뷔페를 상상했지만 저녁 준비시간이라 식당 출입은 통제되었다. 그나마 수영장 옆에 달린 작은 바에서 핫도그와 맥주를 마시고 나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푸짐하고 환상적인 저녁을 기대하며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리조트 안에서도 어느 것 하나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저녁 먹으러 들어간 일식당, 프렌치 식당, 그리고 또 다른 식당. 모든 식당에서 우린 예약을 안 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녀들이 낮에 조금 맛봤다는 로비 옆에 있는 뷔페식당으로 갔다. 


뷔페식당은 더 참담했다. 이미 메뚜기떼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거의 모든 음식들이 바닥이 나 있었다. 얼마 후에 다시 채워지긴 했지만 또 어디선가 메뚜기떼처럼 사람들이 나타났고 전쟁처럼 접시에 음식을 담아야 했다. 내가 기대했던 해산물도 많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해산물을 많이 기대했는지 오징어든 홍합이든 나오기만하면 거의 바닥이 났다. 그나마 내가 싫어하는 세비체는 조금 남아 있어서 그것이라도 안주삼아 먹었다. 


배를 채운 우리는 아직 바다를 보지 못해서 어두워진 바다라도 볼 겸 바닷가로 갔다. 그러나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가보았다.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까만 하늘의 별을 보며 백사장에 누워있었다. 곧 추워져서 일어나서 백사장에서 나오긴 했지만, 바라데로에서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꼬이고 꼬이기만 했던 하루 중에 그래도 잠깐이나마 '참 좋다'하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순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바닷가 근처에서 몇 군데의 바에 들러서 칵테일 몇 잔을 마시고 방에 들어가 잤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 아침 6시에 나와야 했다. 긴 기다림과 우여곡절 끝에 동행들을 만나고 78달러를 내고 리조트에 체크인했지만 내겐 별로 경제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게다가 택시비까지 더한다면 100달러짜리 호텔에서 하루 밤을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날이 바뀌어도 바라데로는 끝까지 나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어제 예약한 택시가 아침에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았다. 20분이나 기다리다가 호텔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20 쿡이나 주고 어쩔 수 없이 타야만 했다. 


바라데로에서 긴 하루를 보냈지만 정작 한 것은 없었다. 택시비 때문에 열이 뻗쳤던 것 외에는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바라데로는 쿠바에서도 고급지고 유명한 휴양도시기 때문에 다른 도시보다 택시비가 비쌌다. 더군다나 택시 외에는 교통수단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바라데로를 벗어나는 택시 안에서 '내가 여길 왜 왔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 목적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너무나도 비생산적인 일을 했다고 생각되어 후회도 했지만, 그렇게 바라데로에 갔던 것도 어쩌면 운명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죽박죽에 꼬이고 꼬인 하루를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계속하고 싶은 쿠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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