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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나 Sep 13. 2021

진정한 다이끼리의 맛은 모르겠고

안녕! 나의 쿠바 #2. Habana 2 _하바나 투어

꿈 속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새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듯했다. 비둘기 소리인가 아니면 종달새인가... 새소리가 들리지만 새를 볼 수는 없어서 어디서 들리는지 궁금해하다가, 순간 '내가 있는 이곳이 어디지?'라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차려졌다. 일어나 보니 8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이미 맞은편의 두 침대에 있던 사람들은 체크아웃하고 나갔는지 비어져있었고, 내 침대 옆의 사람은 웅크리고 아직 자고 있었다. 창밖에서 햇살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고 비둘기와 비슷한 새들이 앉아 있었다. 현실을 인식한 나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9시에 K와 칼리가 호스텔에 오기로 했으니 서둘러 일어나야 했다. 


'까사 호아끼나'는 아침이 제공되었다. 숙박비 10 쿡에 아침까지 포함된 것이니 완전 저렴이 그 자체였다. 아침 식사도 나쁘지 않았다. 수박을 비롯한 몇 가지 과일과 모닝빵과 햄버거빵 중간 어디쯤인 그런 빵에 햄버거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이 같이 나왔다. 커피와 주스도 제공되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아침식사였다. 


내가 모든 준비를 서둘러 마치고 거실로 나가니 이미 K와 칼리가 와 있었다. K는 정보북을 보러 왔는데, 정보북을 못 봤다며 보자마자 아쉬움이 잔뜩 묻어난 볼멘소리를 했다. 이유인즉슨, 어젯밤에 누군가가 정보북을 가져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니 훔쳐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한국어로 적힌 책이니 분명 한국인이 가져갔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추측이지만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이후에도 정보북을 보기 위해 여러 명의 한국인들이 왔는데 모두 아쉬워하며 돌아갔다. (나중에 정보북 2권 중에 한 권을 찾았다는 말을 듣기도 한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거실에 앉아서 오늘 뭐 할지 계획을 짰다. K는 그저께 쿠바에 도착했으나 말레꼰에 나가 앉아있는 것 빼고는 사실 별로 한 것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우선 올드카 투어를 하고 나중에 모로 요새로 가는 것을 큰 가닥으로 잡았다. 그러는 사이 두 명의 한국 여자가 정보북을 보러 왔는데, 낯가림이 전혀 없는 친절한 K가 그녀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들도 어제 쿠바에 도착했다고 했다. 에어비엔비에 묵고 있는데 오늘 하바나 구경을 하기 전에 그 유명한 '정보북'을 보러 왔다는 것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모두 오후에 모로 요새에서 만나서 일몰을 같이 보기로 약속했다. 


K와 칼리 그리고 나. 우리는 먼저 올드카 투어를 하기 위해 중앙 공원으로 갔다. 원래 나의 계획에는 올드카 투어는 없었으나 칼리가 적극적으로 하길 원했고, 우리는 차 한 대에 탈 수 있는 적정인원이 되었기에 혼자였으면 엄두도 못 내었을 올드카 투어를 하기로 했다. 중앙공원에는 형형색색의 반짝반짝한 올드카들이 즐비했다. 그중에서 셋 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차를 골랐다. 기사도 아주 좋은 인상을 가진 흥겨운 사람이었다. 그의 얼굴 생김새나 제스처는 약간 옛날 미국 영화에서나 볼 법한 배우 같기도 해서 재미있었다. 그와 약간의 가격 흥정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하프 타임에 15 쿡을 지불하기로 하고 차에 탑승했다. 20 쿡 이하로는 절대 안 된다는 다른 차에 비하면 정말 싼 가격이었고, 우리는 각자 5 쿡에 탈 수 있는 것이기에 나쁘지 않은 흥정이었다. 


하프 타임이었지만 흥이 많은 기사는 운전하며 신나게 칼리와 떠들어 대느라 더 많은 곳을 보여주었고, 거의 한 시간 정도 우리는 올드카를 타고 하바나를 돌아다녔다. 스페인어 네이티브들끼리여서 통하는게 많았는지, 뭐가 그리 할 말들이 많은지 둘은 끊임없이 떠들었고, 그런 칼리 덕분에 K와 나는 뒷좌석에서 쿠바 향이 나는 바람을 맞으며 평화롭게 하바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칼리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올드카 투어를 끝내고 우리는 조금 이르지만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번엔 K가 가고 싶었다는 일본 식당으로 갔다. 흔히 상상하는 일식당이 아니라 우리나라 분식집 같은 곳이었다. 간단한 일본식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먹은 장국에 홀딱 반해서 마지막 날 하바나를 떠나기 전까지 그곳에 세 번씩이나 갔다. 가격이 저렴하기도 했고 일본식 덮밥을 오랜만에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사이드 디쉬로 튀김을 시키고 싶었으나 튀김은 안된다고 했다. 12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었으나 나는 맥주도 마셨다. 이때부터 쿠바에서 맥주를 끊임없이 정말 물 마시듯이 많이 마셨다. 


점심 식사 후에 칼리는 자기 혼자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며(아마 혼자 다니고 싶었던 것 같다.) 저녁에 모로 요새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우리와 헤어졌다. K와 나는 우선 헤밍웨이의 다이끼리로 유명한 바에 가서 다이끼리를 마셨다. K는 어제도 여기 와서 다이끼리를 마셨다며 다른 칵테일을 시켰다. 헤밍웨이 다이끼리는 다른 다이끼리보다 비쌌지만 나는 헤밍웨이를 생각해서 그가 자주 마셨다는 다이끼리를 마셔보았다. 그러나 샤베트같은 하얀 얼음과 론 맛이 약간 나면서 양은 적은, 헤밍웨이의 다이끼리는 약간 실망이었고 사실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주로 모히또를 마셨다. 그리고 쿠바에서 쿠바리브레를 마셔야지 했는데 사실 한 번도 마시지 못했다. 


다이끼리의 맛을 보고 헤밍웨이가 왜 좋아했는지 별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애주가지만 그와 나의 입맛은 아주 다르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헤밍웨이의 다이끼리를 파는 '라 플로리다'카페는 너~무 시끄러웠다. 관광객이 미어터진다는 말이 딱 어울리게 인파를 뚫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한 곳이었다. 카페에서 나오면서 입구에서 한국의 유명 연예인을 봤다. 여기가 정말 유명하긴 유명한가 보다. 


우리는 하바나 골목을 걸어 다니다 말레꼰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고 싶었던 시장까지 걸어갔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기념품이나 티셔츠를 많이 팔았다. 우리는 몇 개의 기념품을 골랐다. 나는 여행을 다니며 마그넷을 주로 사는 편이다. 작아서 짐이 되지 않고 선물로 주기에도 적당하고 내가 기념으로 소장하기에도 적당한 기념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동차 번호판도 2개나 샀다. (사실 번호판을 왜 샀는지...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땐 왠지 모르게 쿠바의 국기가 그려진 번호판이 멋져 보였다.) 


시장 근처에서 페리를 타고 모로 요새로 갈 수 있는 선착장이 있었다. 중간에 멋진 맥주집을 발견해서 맥주 한잔하고 싶었지만,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점만 찍어두고 왔다. 밤에 꼭 다시 와야지 하면서 K와 나는 서둘러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탔다. 배는 모로 요새로 가는 훌륭한 교통수단이었다. 그 배로 짐을 싣고 오가는 쿠바인들도 많았고, 여행객들은 더 많았다. 내국인은 얼마인지 모르지만 외국인은 1 쿡을 내면 되었다. 


쿠바 여행을 하면서 바가지를 썼다느니 사기를 당했다느니 하는 사람들도 있고 도대체 내국인과 외국인의 물가를 다르게 그것도 10배나 차이 나게 책정해 놓은 것에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물가가 지극히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지만, 쿠바에 발을 들여놓고 쿠바를 여행하며 쿠바인들의 삶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해보고 또 그들과 짦게라도 교감해 보았다면 불평과 불만보다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가지를 피하기 위해 흥정은 필수이며, 계산할 땐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 


페리를 타고 모로 요새로 가는 길은 조금 멀었다. 배에서 내려서 마을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오르막이 이어지는 길이었고 그 끝에는 예수상이 있었다. 예수상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예수상을 지나서도 도로를 지나고 벌판을 지나고 한참만에 '라 카바냐' 입구에 도착했다. 먼저 입장권을 구매해야 했는데 6시까지 구매 가능하다고 했지만 6시 10분 전인데 이미 매표소는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표소 직원은 다른 곳을 가리키며 저쪽 가서 구매하라고 했다. 우리는 부랴부랴 달려가 사정하다시피 해서 표를 살 수 있었다. 그날따라 무슨 박람회 같은 행사를 하고 있어서 표가 5 쿡이나 했다.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선 구매했다. 그리고 6시에 일몰을 보기 위해 만나기로 했던 장소인 모로성으로 움직였다. 거기도 박물관이 있었는데 또 입장료를 내야 해서 굳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칼리도 오지 않았고 만나기로 했던 한국인 일행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일몰이 시작되어 K와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일몰을 감상했다. 해는 금방 넘어갔다. 어두워진 하바나에 불빛들이 하나둘씩 밝혀졌다. 멀리서 본 하바나는 한 국가의 수도라기보다는 고즈넉한 중세의 도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시의 소음조차도 들리지 않는 고요하게 잠든 도시 같았다. 

 


일몰을 다 보고 나서야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일행을 찾기 시작했다. 일몰 스폿을 돌아다니다 칼리를 만났다. 그녀는 박물관에 들어갔다가 늦게야 일몰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다른 일행도 찾을 겸 모로 요새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걸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제 입장권을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인데 칼리는 들어가고 싶어 했고 입장권을 살 방법은 없었다. 이제 어두워져서 어쩌면 표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인파가 북적대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입구에서 입장권을 아주 철저하게 검사하고 있었다. 칼리 때문에 들어가지도, 그렇다고 표를 버리고 포기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우연히도 모로성 일몰 스폿에서 만나기로 했던 한국인 여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두 명에서 세 명이 되어 있었고, 둘은 요새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일몰을 봤다고 했다. 장소가 엇갈렸던 것이다. 이렇게 쿠바에서는 약속을 해도 잘 못 만나는 경우가 더러 생길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아날로그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그들 중 한 명이 입장권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칼리에게 양도해 주었다. 우리는 다시 하바나 시내의 유명한 수제 맥주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요새 안에는 박람회인지 시장인지 모를 정도로 물건을 파는 부스들이 즐비하고 시끌벅적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상점이었고, 길바닥에서도 토산품 등 물건을 깔아놓고 팔고 있었다. 그러다 일몰 스폿을 발견했는데 이미 어두워졌음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진작에 여기 들어와서 일몰을 봤어야 했는데... 입장권까지 사놓고도 미처 들어오지 못한것이 아쉬웠다. 


삼십 분 정도 돌아다니다 보니 거의 다 돌아본듯하고 더 이상 볼 것도 없었으나, 칼리는 '라 카바냐 포격식'을 꼭 봐야 한다며 9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거의 한 시간 반이나 남았는데, 더군다나 해가 지고 난 후에는 약간 쌀쌀해지기까지 해서 얼른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를 혼자 두고 돌아갈 수도 없어서 우리는 포격식하는 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8시가 넘으니 물건 파는 부스들도 줄었고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춥고 배고팠지만 음식을 먹을만한 곳이 없어서 음료와 과자로 때우고 포격식을 기다렸다. 


포격식은 시시하고 짧았다. 옛날 방식으로 대포에 불을 붙여 포탄을 쏘는 것만 신기했다. 포격식을 하는 사람들은 군인인 것 같기도 했고 복장이 성직자 같은 사람도 있었는데, 실망스러운 것은 소위 군인에게나 성직자에게 있어야 하는 기품이 없었다. 그럼에도 칼리는 아주 감동한 모양이었다. 그녀 하나만이라도 만족했다니 다행이었다. 


우리는 요새에서 나와서 바로 택시를 타고 낮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수제 맥주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일몰 동행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맥주집의 문이 닫혀있어서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정말 쿠바에서는 누구를 만날 약속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는데 바로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가 호스텔로 가는 길에 광장에서 그녀들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인연이었는지 정말 신기했다. 


드디어 완전체가 된 우리는 광장에 있는 야외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밤늦게까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일 바라데로 리조트로 가는 멤버가 급 결성되었다. 나는 버스를 미리 예약했기 때문에 그녀들과 동행은 할 수 없었지만 바라데로의 리조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쿠바에서 어디서든, 장소와 시간을 정해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는 것은 아주 바보 같은 짓이다. 이틀 동안의 경험에서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배운 것 같다. 쿠바는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난 완전한 아날로그의 세계였다. 불과 20~30년 전, 휴대폰과 인터넷이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문명의 이기가 아직 완전히 들어서지 않은 쿠바, 그곳에서는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아주 여유로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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