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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Sep 13. 2023

주는 대로 먹는 삶

오늘, 아이는 어떻게 먹었을까?

우리는 태어나서 대략 20년 정도를 '주는 대로' 먹었다. 어떤 이는 평생을 주는 대로 먹었고 그를 평생 먹인 이는 '나도 누가 주는 대로 좀 먹어 보고 싶다' 말했다.


아이들은 집에선 양육자가 주는 대로 먹고 학교 급식 역시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학교 급식의 주체는 분명 학생이었지만 완벽히 운영자에 맞춰진 환경이다. 자율 배식을 할 경우 양을 맞추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고, 먹는 행위에 담긴 개인적 취향이나 종교적 신념까진 차치하더라도 맵거나 달거나 짠 정도의 개인차도 존중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과 2년 전인 2021년에야 전국 초, 중, 고에 무상급식을 지원하게 됐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가구의 아이가 최소한 눈칫밥은 먹지 않도록 한 수준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개인 취향까지 요구하기엔 갈 길이 먼 상황이었다.


혹시, 몇 살까지 주는 대로 먹고살았나?

 이 문제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끼니마다 내 입으로 들어갈 먹거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매 끼니를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삶은 전혀 다르다. 게다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 음식을 장만해 먹이기까지 한 사람이라면 그 삶의 질이나 경험에 의한 유창성과 마음 상태도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하나 저절로 되는 일이 있던가!

지금껏 대부분 여자에겐 결혼과 동시에 누군가를 먹이는 삶이 시작됐지만 남자는 달랐다. 먹여주는 대상이 엄마에서 아내로 바뀔 뿐 주는 대로 먹는 상황은 잘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지난 앞 세대엔 자신이 먹을 한 끼조차 스스로 차려 먹지 못하거나 요리는 ‘여자의 일’ 이란 인식을 끝까지 고수하며 한 존재로써 더욱 성장할 기회를 놓친 남자가 많았다. 반면 요즘은 남자도 육아 참여를 당연한 공동의 과제로 여기며 요리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어 반갑다. 맞벌이라는 시대적 변화의 영향인걸 알면서도 마치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귀하게 여겨졌다.


내 글짓기 시간에는 '집안일'의 종류 알아보는 수업을 꼭 진행한다. 아이들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집안일을 몰랐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설거지'는 알지만 그러기 위해 누군가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요리를 해야 먹을 수 있는 과정을 설명하면 "그것도 다 집안일이에요?" 하며 놀랐다. 공동체 안에서 아이 자신의 위치가 분명하고 그것을 스스로 아는 것은 아이의 자존감과 깊은 연관이 있었지만, 가족 공동체 안에서 아이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며칠 전 수업에서 3학년 현수는 '집안일 마인드 맵'을 앞에 두고 한참 애를 먹었다. 외동인 현수는 열 살이 되도록 집안일을 함께 해야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거나 '너는 공부만 해!'란 말을 주로 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집안일'을 적어 보세요> 란 질문에 현수는  <공부하기, 숙제하기 >를 적었고 난 그것이 왜 집안일이 될 수 없는지 오랫동안 설명해야 했다.

유아기 아이도 말을 배우고 인지 발달을 시작할 때부터 자신이 먹을 것을 선택하게 할 수 있다. 목이 마른 아이에게 물과, 우유 중에 선택하게 하거나 하얀색 우유와 노란색 주스를 보여주며 고르게 할 수 있다. 밥을 먹일 때도 메뉴의 선택지를 두 개 이상 두고 그중에 무엇을 먹을지 고르게 하면 편식하는 아이도 양육자가 주는 대로 먹을 때 보다 책임감을 갖고 즐겁게 먹는다.

우리는 아이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선택을 하게 해야 한다.

평소 사소한 질문에서부터 의사를 존중받는 경험을 한 아이는 달라졌다. 진정한 교육은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일상에서 조금씩 스며 '사람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우린 내 아이가 소중할수록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을 키워 타인에게 절대 피해 주지 않는 것을 가르쳐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존중받은 경험이 쌓인 아이는 타인도 존중하기 때문에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익힌다. 이 모든 과정을 지속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곳은 학교도 학원도 아닌, 오직 '가정'이고 이것을 할 수 있는 것도 주 양육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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