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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Sep 20. 2023

아이의 입맛

오늘, 아이에게 무얼 먹일까?

처음 우린 목적 없이 그저 태어났다. 누군가는 세상에 던져졌다고도 했지만, 생명을 유지하려는 인간 본능은 우리 앞에 '살기 위해 먹으라'는 목표를 줬다.


목적은 순수했으나 우린 자주 처음의 순수성을 잊었다. '그저 먹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고 잘 먹으려'애쓰다 못해 다른 이와 내 식탁을 비교하느라 녹초가 됐다. 우리가 의도를 갖게 되고 욕심에 가까운 목표가 생긴 뒤부턴 스스로 가장 불행했고 자신에게 중요한 순서대로 힘들게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최대한 늦추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나는 아이들 '입맛의 변화'였고,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 사용'이었다. 스마트폰 사용이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 삶을 얼마큼 변화시켰는지를 모르는 이는 이제 없을 것이다. 지연시키고 싶을 뿐 언제까지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요즘도 스마트 폰 관련해 고민을 토로하는 저학년 학부모에겐 최소한 한글을 떼기 전까지라도 늦춰보자 권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부모 세대의 연령이 바뀐 만큼 부모조차 스마트 폰에 의지한 일상을 사는 현실에서 쉽지 않은 일이 분명했다. ‘스마트 폰’이 정신건강과 관련이 깊다면 '입맛'은 식습관을 좌우해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아이는 한 달 남짓 동안 키와 몸무게가 부쩍 늘었다. 오직 제때 자고 먹자고 시작한 일이지만 예상한 것보다 빠른 속도로 아이에게 변화가 생겼다. 짜증 한번 없이 오히려 허허실실 매일 밝음을 유지하는 것도 여유가 생 겼기 때문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이는 청소년 권장 수면시간인 9시간 이상을 지키고 있다. 스스로 맞춘 시간에 일어나 과일과 야채를 곁들인 아침 식사를 여유 있게 즐겼는데 그 시간에 우린 이런저런 대화를 하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물론 아이는 돌아오는 4월에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치를 예정이라 필요한 공부도 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통제 가능한 하루를 산다는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점을 바꾼 것만큼 주도적인 태도 변화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아이의 식단이 중요한 이유는 혀에 새겨지는'맛' 때문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중독성을 갖는 '맛습관'은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미 청소년들은 혀를 마미 시킨다는 뜻을 가진 '마라'가 든 음식에 열광하고 있고 맵고 아린 맛에 길들여진 혀는 더욱 자극적인 맛을 원할 수밖에 없다. 그 외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은 아이들 체형은 물론 성격을 바꿨고 더 나아가 성인병 발병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오늘, 우린 아이에게 무얼 먹일까?

미각은 중독도 잘 되지만 마음만 먹는 다면 한 두 달에 빠르게 개선될 수 있기 때문에 늦은 건 없었다. 가장 좋은 것은 식재료 본연의 맛을 알게 하고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닌 영양이 골고루 담긴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이겠지만, 최소한 끼니를 거르거나 '나쁜 식사'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일 것이다.


우린 가끔 가장 중요한 일의 순서를 놓쳤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한다 해도 나와 내 가족의 건강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육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의 중요성 또한 절실한 세상이 됐다. 요즘은 한참 식습관을 배우는 아이에게 스마트 폰이나 패드를 보면서 밥을 먹게 하는 부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육아에 지친 양육자 입장이 백번 이해되지만 스마트폰은 결국 아이의 입을 다물게 할 수단이 됐고 아이는 '나쁜 식사'를 하고 있다.


함께 식사하며 나누는 소통을 배울 수 없고 배는 채웠지만 음식 맛을 음미할 기회를 놓쳤다. 대부분 좋은 방법이 아닌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쁜 식사의 후유증은 한참 뒤 여러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지금 힘든 일이 나중에 내게 편한 일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요리가 완성될 즈음, 아이들을 불러내 맛 봐주기를 청한다. 수저에 올린 음식 한 점을 내밀면 아이들은 어린 새처럼 입을 벌려 받아먹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엄지 척을 해줬다. 음식의 간을 보는 것 때문이라면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이 짧은 행위에 얹히는 것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음식을 먹여 주고받는 순간의 눈 맞춤과 입안을 채운 교감은 공감하는 마음을 만들었다.

'사람 키우는 일'의 무게를 생각한다.

삶은 어느 날 화려하게 무대에 올려지는 이벤트가 아니었다. 매일이 모여 조용히 쌓이는 게 삶이었고 다정하게 쌓인 것 안에 신뢰가 담겼다. 생명 유지를 하기 위해 매일 끼니를 잇는 숙명의 우리에게 '먹는 것' 만큼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 어디에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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