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되거나 왜곡하지 않으며!
지난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 내내 창고를 뒤졌다. 내 앨범을 찾고 싶은데 보이질 않았다. 결국, 그것은 창고 가장 아래 박스에서 발견됐다. 이건 거의 땅에 묻는 심정이었군!
위에 쌓였던 박스를 모두 들어낸 뒤에야 앨범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동안 버릴 수도, 꺼내 볼 엄두도 나지 않던 그것을 이제야 마주 할 결심이 선 것이다.
새 앨범엔 내 성장 과정을 최대한 순서대로 정리했다. 중복됐거나 초점이 흔들린 사진은 버렸다. 갖고 있던 사진은 정리를 통해 앨범 한 권에 담길 만큼만 갖기로 했다. 그 외 사진은 세 아이 앨범에 나눠서 담아뒀다.
이젠 인연이 다했거나 잊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의 사진도 많았다. 끊어진 인연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부정적 감정을 불러오지만, 돌아보면 인연은 각자의 유통기한을 갖고 있었다. 사실, 각자 삶의 어떤 구간을 함께 한 걸로 그 의무를 다한 것이다.
이별이란 인연의 유통기한이 끝났을 뿐이지만, 몹시 상처받은 우리는 상대를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할 악연으로 결정짓는 과정에 더욱 큰 내상을 입었다. 돌아보면 모든 인연은 우리를 성장시켰다. 심지어 가장 악연이라 느낀 상대가 나를 더 많이, 더 강하게 일으켜 성장시킨 사실을 떠올려 볼 일이었다.
모두 없애야겠지? 잠시 생각하던 나는, 이내 마음을 바꿨다. 과연, 내 삶의 어떤 시기를 부정할 수 있을까? 부정한들 있던 일이 없던 게 될 수 있을까? 나는 내 삶의 여정에 관련 있는 사진 한 장씩을 이어 한 권의 성장 앨범 만들기를 완성했다.
이과정은 내게 무척 상직적 의미가 있었다. 거기엔 스스로 인정할 수 없거나 실패로 여겼던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인 의지가 담겼다. 그 시간의 결핍이나 상처, 그로 인한 미숙함과 실수, 자책을 피하거나 찢어 없앤 들 결코 없던 일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기도 했다. 마침내 그것마저 온전히 내 삶인 것을 인정한 것이다.
존재의 삶은 오랜 시간을 두고 여러 방식으로 진화했다. 현재 어떤 모습도 결코 단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는 만큼, 스스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겪은 삶의 여정을 외면하거나, 미화하는 걸로는 자신을 똑바로 알기 어려웠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끝없이 이어진 어두운 길을 걸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창고를 들어낸 참에 나는 일을 좀 더 크게 벌렸다. 대형 플라스틱 박스에는 앞서 몇 차례의 정리 과정을 통해 큰 틀로 분류해 둔 세 아이의 출산과 성장과정에 관한 대부분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이번엔 그것을 세 아이 몫으로 세 개 박스에 나눠 담는 작업이었다. 머지않아 독립할 둘째와 셋째를 위해서 각자의 성장 기록을 분류하려던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그곳엔 사진, 육아일기와 수첩, 아이들의 일기장, 성적표와 예방접종, 아이의 질병기록까지 연령마다 아이에게 있던 변화와 성장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겼다.
기록을 모을 때는 언젠가 좋은 자료가 되길 바란 게 다였지만, 그 기록은 그동안 양육자로 느낀 막연한 죄책감을 한결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 줬다. 미숙했지만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어서,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토닥여 위로할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을 말해 줄 사람이 없단 사실은 자주 정체성의 뿌리를 흔들었다. 근원을 찾아 헤맨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그 경험은 내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말해 줄 유일한 증인이란 사실을 깨닫게 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 셋이 모두 성인이 됐을 때, 아이들이 기억에 의존해 막연히 그리워하거나 원망하게 둘 수 없단 결심을 하자, 내가 해둘 일이 명확해졌다.
나중에 성인이 된 아이들 곁에서 내가 그 어린 시절을 말해 줄 수 없더라도, 남겨둔 기록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아이들이 흔들리다가도 결국 반듯이 걸어가게 할 나침반이 돼주길 기대한 것이다.
아이들 삶의 유일한 증인으로, 기록의 의무를 실감한다.
나는 기록의 본분에 충실하기로 한다. 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앓았던 질병과 가족력을 모두 정리해 파일에 담았다. 양육자인 나의 미숙함과 그에 따른 결과도 있는 그대로 담는다.
단, 얼마나 사랑했는지,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강조할 필요는 없다. 기록은 절대 미화될 필요가 없었고, 그것은 기록을 받아 든 당사자가 느낄 몫이었다. 그들이 남겨진 기록을 통해 자신을 올바로 이해하고 대비할 자료가 되기 위해 무엇도 왜곡되선 안 됐다. 원래, 기록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