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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y 15. 2024

불안한 DNA

통제를 통제하는!

오늘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동생이 집에 왔어. 다행히도 너는 신기한 듯 동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예뻐해 줬지. 밤이 되자 네가 물었어.
"엄마, 동생은 우리 집에 놀러 온 거지? 동생은 집에 언제 간대?
2009년 7월 아들의 육아일기 중에서-

요즘 아들 병원 진료 후 검사와 양육자 상담으로 병원 갈 일이 많다. 그날도 신경과 대기실에는 앉을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대기 중이었다. 특이한 것은 청소년부터 청년, 중년과 노년의 여자와 남자를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세대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던 점이었다.


신경정신과 대기실이 흡사 환자가 몰리는 정형외과나 이비인후과의 대기실 풍경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무척 생경하게 느껴지며 변화를 실감했다. 그것은 내상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이가 부쩍 많아진 시대적 문제를 떠올림과 동시에 신경정신과의 높은 문턱을 넘은 사람들의 변화된 모습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이런 현상이 차라리 반가운 마음이었다.


내가 처음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기 시작한 것은 첫딸이 세 살쯤 됐을 때였다. 그 당시는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에 상당한 편견이 있던 때였다. 가급적 병원에서 누군가를 마주치지 않으려는 분위기였고, 마주친다 해도 대부분 어르신들이었다. 당시 나처럼 20대가 스스로 신경정신과를 찾는 경우는 심각한 증상을 동반하지 않곤 분명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특별한 증상이나 약처방과 상관없이 오랜 기간 상담을 거르지 않던 이유에는, 긍정적인 경험이 없는 양육자로써 경계할 것에 대해 알고 싶던 마음과 의논할 어른이 없던 상황이 한몫했다. 전문가의 객관적 조언은 실제로 롤러코스터 같던 내 불안을 달랠 중요한 방향키 역할을 해줬을 뿐 아니라, 나를 객관적으로 볼 눈을 갖게 해 준 게 사실이다.


불안은 DNA의 유전적 요소만으로 대물림되지 않았다. 마치, 아이라곤 한 명도 없는 세상처럼 온갖 자극적인 영상과 문구로 도배된 우리 사회가 끝없이 아이들을 흔들어 불안을 조장했고, 다음은 불안한 양육자의 태도를 통해 빠르게 옮겨갔다. 불안한 부모는 아이를 통제했다. 그걸 통해 자신의 불안은 가라앉힐 수 있었지만,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돕지는 못했다.


요즘,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스마트폰 사용 문제로 생긴 자녀와의 갈등은 이제 일반적인 일이 된 모양이다. 문제라면 그걸 말리는 부모 역시 손에서 스마트폰을 쉽게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변화와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에 빠르게 적응해야 되는 요즘 아이들의 잦은 좌절은 불안을 키웠고, 아이들은 쉽게 무력함을 느꼈다.


온라인 세상이 익숙한 요즘 아이들은 대상도 불분명한 타인의 시선이 몹시 중요해졌다.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갖고 싶어 했고, 원하는 만큼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쉽게 박탈감을 느꼈다.


그런 시절에 낀 채, 살아가는 아이와 부모의 불안과 상관없이 교육 목표와 사회적 기대치는 여전히 과거에서 큰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결국, 양육자의 주관에 따라 해결책을 모색하라는 무언의 요구를 받는 게 현실이다. 과연, 우리가 아이들 손에 스마트 폰 대신 쥐어 줄 다른 것은 무엇일까?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꺼내 보일 준비를 마친 이들에게서 나는 내일을 향할 문을 본 것 같았다. 우린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미덕인 문화에 살았나! 싫다고 말할 수 없도록 얼마나 강요받았던가! 본인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자신에 실망하고  얼마나 자책해 왔나!


이제, 더 많은 사람이 참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좋겠다. 당당히 병원 문턱을 넘어 꾹꾹 참았던 마음을 열고, 펑펑 울어버릴 때, 숨어있던 불안과 통제의 마음은 사라지고, 마침내 길이 보일게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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