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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09. 2024

알아서 하는 중입니다.

관찰자의 자세에 대해 생각했다.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 습관 따위에서 벗어날 심산이던 나는 우선, 상황부터 바꾸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서로의 건강한 거리 확보를 위해선 새 마음을 일으킬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며칠 만에 돌아온 집은 최소한 살림살이를 유지해 준 사춘기 막내 덕에 떠날 때와 별반 달라진 것 없이 정돈 돼 있다. 그뿐 아니라 며칠 만에 나타난 집사를 보고, 고양이와 치와와가 동시에 배를 뒤집으며 저들대로 할 최선의 환대도 선물 받았다.


다소 즉흥적으로 사찰 템플스테이에 참가했었다. 그 시작에는 반복된 여러 불편한 상황과 문제가 포함됐다. 갈수록 제가 다 알아서 합니다! 주장하고, 실제론 그렇지 못한 아들과의 묘한 신경전이 도화선이 됐다. 감정적 서운함도 둘째였고, 양육자, 보호자, 책임자의 무게가 버거운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이거나 곧 터질 풍선처럼 위태로웠다. 마음의 공간이 절실했다.

원래대로라면 아침 기상이 고역인 아들의 등교 때문에 주중에 집을 비우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지만,  알아서 한다는 아들 말을 믿고(?) 주중임에도 과감히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얼마못가 달라질 이가 아들만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사찰에서 산책을 하다가도, 조용히 책을 읽다가도 아들을 깨워줘야 하는 거 아닌가? 지각하면 안 될 텐데. 염려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들 역시, 다 알아서 한다는 말에 책임 질 각오는 해야 했다. 그러려면 보란 듯이 제시간에 일어나 분주한 아침 등교 준비를 마쳐야 했다. 그게 아니면 결국 지각해 벌칙 수행을 하게 될 것이었다.


아들이 무엇을 경험하든 그것은 온전히 아들 몫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그저 흘러가도록 두고 보는 게 힘들 뿐 아니라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단 것을 온전히 느껴 볼 기회였다. 또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불가능한 일을 통제하려 했는지 느껴 볼 차례였다.

왼) 세상으로 자식을 떠나보내며 손 흔드는 어머니.

내가 머문 사찰의 법당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옆 벽화에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어머니 모습이 순서대로 그려져 있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긴 여정 중에 '원행억념은'이란 그림에 이르렀을 때 현재 아들과 내가 이 시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다른데서 생겼다. 안내해 주신 분이 보여준 다음 그림 앞에서 사춘기에 시달려 잔뜩 위축된 내 심리 상태가 여실히 드러나고 만 것이다.

이건 무슨 그림일까요? 안내자 질문에 나는 고민 없이 외치고 말았다. 고려장!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자식 키워도 소용없다는 식의 상처받은 허무함을 숨기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 그림은 부모은중경으로, 부모의 은혜는 부모를 업고 수미산을 백천번 돌아도 다 갚을 수 없단 뜻의 그림였다.


결국, 고려장 때문에 모두 웃고 말았지만, 좀 더 부모로서의 자존감을 가져야겠단 생각을 해 볼 기회였다.


내가 전화를 건 시간은 이미 아들이 학교에 등교했어야 할 시간이었다. 새벽 예불과 아침 공양도 끝내고 아름다운 경내를 몇 바퀴나 돌며 산책하던 중이었다. 예상은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아들은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잔다고? 마음에 잠시 균열이 일었지만, 얼른 준비하고 가렴.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들이 알아서 하는 중이야!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다음 내가 한 일은 템플스테이 예약 사이트에 접속해 원래 일정보다 하루를 더 연장 예약한 것이다. 우리에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경내의 산책로

다소 의도 적였으나 며칠 동안 만든 우리 사이의 거리는, 마음먹기 따라 얼마든지 다른 길을 낼 수 있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아들의 태도나 말투에도 기분이 상하면, 아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삶의 행복과 불행이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인가? 자문해 볼 일이었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그가 내 삶의 주체가 될 수는 없었다. 반대로 자식삶의 주체 역시 부모여도 안 됐으므로, 달라질 것은 부단히 닦은 내 마음뿐이었다. 마침내 나는 조금 자유로워져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결국, 우린 자기 몫의 삶을 산다. 금방 넘어질 듯 서툴고 위태로운 자식 모습에 전전긍긍하는 게 부모 마음이지만, 그것이 바로 아이 나름으로 알아서 하는 과정이었다. 넘어져 깨지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지금껏 우리가 알아서 그리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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