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고 돌보는 우리에게
사춘기와 포항에서 경주로 갈 때, 여행은 이제 시작이야! 호기롭게 말했었다. 하지만 혼란한 시국에 이미 지쳐버린 우리 여행은 춥고, 피곤하고 배만 고픈 상황이었다. 사춘기는 경주행 버스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고, 나도 그 곁에서 잠시 눈을 감고 분주했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여행 전 나는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글을 썼었다. 그 질문에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어머니를 떠올렸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온통 어머니로 점철된 삶이었다. 하지만 그건 몹시 쓰라린 기억이었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지 못한 경험은 성장하는 동안 나를 무척 혼란스럽게 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를 더 이해할 수 없단 사실이었다.
그런 탓에 내게 아이 셋을 키우는 과정은 그야말로 다짐과 노력의 시간이었다. 사랑받은 기억으로 사랑을 주기보단 내가 겪은 슬픔을 복기하며 그걸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과정말이다.
하지만 이젠 안다.
어머니란 존재는 이생은 물론 우주 밖으로 떠난 뒤에도 자식을 키우고 가르친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머니처럼 살길 소망하든,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서슬 퍼런 다짐을 할 때도, 결국 자식은 자신을 향한 빛을 따라 살았다.
나 역시 그랬다. 한때는 모두 어머니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했고, 나는 다르게 살 테니 두고 보라며 큰소리를 치는 동안에도 나는 성장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못 견딜 일도 참을 수 있었다. 덕분에 소소한 삶의 행복이 더 잘 보였고 감사할 일도 많아졌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삶의 결핍엔 언제나 뜻밖의 선물이 담겨 있었고, 내 결핍을 이해하자 비슷한 결핍을 가진 타인이 보였다.
어머니가 전해준 영향은 절대 내가 원한 방식이 아니지만, 삶이 전한 깨달음을 두고, 어머니가 나를 키운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나는 다정한 모녀의 인연으로 만나진 못했지만, 그것만은 분명했다. 어머니는 나를 낳은 이후 지금껏 한시도 쉬지 않고 나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또한,이 모든 이해와 깨달음이 결국 내 아이들을 통해 전해졌단 사실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춘기와 함께 경주에서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게 말해주었다. 이제 키우고 돌보는 이의 짐을 내려놓고 조금 가벼워져도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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